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우중 Jul 09. 2024

  어쩔 수 없는 건 없다.

  무려 20년 전의 일이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윤리 선생님들은 다 이상했다. 당시 교육과정에서 과목명이 도덕이었나 윤리였나도 헷갈릴 정도이지만, 당시 윤리 선생님들이 다 괴짜였던 것은 분명히 기억난다. 당시 나는 문과 반이었는데, 문과 반 담당 윤리 선생님은 빨갛고 긴 곱슬머리를 자랑하는 풍채 좋은 아주머니 선생님이었고, 이과 반 윤리 선생님은 까만 피부 작은 몸집에 눈이 커서 요다처럼 생긴 남자 선생님이었다.


  문과 윤리 선생님은 진도에는 별 관심이 없고, 교과서에 있는 내용도 크게 개의치 않았으며, 주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정확히는 뭐랄까, 선문답식 수업을 했다. 고등학교에서는, 특히 주입식 교육을 특장점으로 하는 2000년대 초 한국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인문계였지만 전국 등수로 볼 때 공부를 참으로 못하는 우리 학교에서, 윤리에 관심이 있는 학생도 없었지만 그런 선문답식 수업에 관심 있는 학생은 더더욱 없었다.


  모르겠다. 그런 선문답식 수업은 윤리 선생님들의 공통점이었을까, 다른 학교 윤리 선생님들이 어땠는지 모르니 비교 자체를 할 수가 없다. 이과 윤리 선생님은 좀 다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름방학에 하는 특별 보충 수업이었고, 수능을 위한 보충 수업이었으니 고등학교 2학년 또는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방학 보충수업이었고, 보충수업이라 평소에는 우리 반을 가르칠 일이 없던 선생님들을 보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 고등학교 2학년 때 일 같다.


  이과 담당 윤리 선생님 수업이었다. 이 분도 선문답식, 혹은 소크라테스식 수업을 했다. 수업 중에 갑자기 날 호명하면서 일으켰고, 대뜸 나에게 "너같이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항상 하는 말이 있어."라고 운을 뗐다. 그 전후로 어떤 말이 있었던 것도 같지만, 이 부분부터 기억나니 그 이상은 쓸 수가 없다.


  그러더니 그는 대뜸 "잘 들어. 어쩔 수 없는 건 없는 거야. 너 같은 애들이 나중에 정치인 하고 높은 자리 올라가서 꼭 하는 말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이거든. 근데 아니야. 어쩔 수 없는 건 없어."라고 했다. 정확한 단어는 아닐 수 있어도, 이런 뉘앙스였다. 당시 나는 고2부터 고3까지 문과 전교 1등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 학교가 공부를 워낙 못해서 그런 것이니 자랑할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전교 1등이긴 했다. 이과 담당이었던 선생님은 아마 그래서 나를 일으켜 세웠던 것 같다. 지금이 아니면 이 말을 하지 못하니, 이번 기회에 똑똑히 기억해 두라는 뉘앙스였다.


  그의 의도는 성공했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시절이 어언 2004년이다. 정확히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말을 기억한다. "어쩔 수 없는 건 없다." 왜일까. 왜 기억할까. 그가 특이하게 생겼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 보충수업 시간에 날 일으킨 뒤에 모두가 있는 앞에서 위 말을 했기 때문에? 그것도 있겠지만, 그 말뜻이 아리송해서가 크다. 어쩔 수 없는 건 없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 뒤로도 나는 그 의미를 곱씹었다. 그는 나에게 일종의 '화두'를 던진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누군가에게 한 번쯤 말했을 수도 있지만, (내 기억으로는) 누구에게도 이 일을 말하지 않고 여태까지 살아왔다. 글로 쓰는 건 당연히 처음이다.


  물론 20년 내내 "어쩔 수 없는 건 없다."는 말만 생각하고 살았다는 것은 아니다. 살다가 어쩌다 가끔씩 불쑥 생각났다. 요즘에는 일과 육아에 바빠 잊고 있었는데, 나를 둘러싼 상황이 급변하면서 다시 이 말이 생각난다. 잘못을 저지르는 많은 사람들이 끝에 가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하는 걸 볼 때마다 생각난다. 진짜 어쩔 수 없었을까?


  "어쩔 수 없다"는 무슨 말인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말이고, 다른 방법을 선택할 방법이 없었다는 말이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내가 결정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의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말이고, 법적으로는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도 된다. 무언가 잘못해서 국가로부터 처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을 때, 도덕적인 잘못을 했을 때 당사자가 주로 하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어쩔 수 없는 건 없다"를 생각한다. 그때그때 나의 해석은 달라졌지만, 요즈음에는 끝까지 책임지고, 회피하지 말라는 말로 들린다. '나는 항상 선택할 수 있다'와 같은 말로도 들린다. 어려운 말이다. 나는 살면서 나의 모든 행동을 선택할 수 있을까, 책임질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지 말아야 할지 생각할 때마다, 오늘처럼  "어쩔 수 없는 건 없다"는 20년 전 말이 불쑥 떠오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매거진의 이전글 은하안전단을 아십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