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아래 글에는 영화 결말이 포함되어 있고 매우 주관적인 리뷰를 쓸 참이다.
작년에 코로나 터지고 「살아있다」 본 이후로 영화관은 처음이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로 보다가 어두컴컴한 상영관 안에서 쿵쿵 울리는 사운드 들으면서 영화 보니까 증말 좋더라.
맨몸 액션을 좋아한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비행기 납치 시퀀스에서 육중한 베인이 쿵- 떨어지던 장면에 마음을 뺏겼다. 10kg은 족히 되어 보이는 재킷을 걸치고, 어둠 속에서 강철같은 몸과 맨 주먹으로 싸우는 베인이 배트맨보다 좋다. 그런 의미에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액션은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OST도 Good.
데스틴 크리튼 감독은 "각 시퀀스에 내러티브를 부여했다. 액션 시퀀스도 감정적으로 많은 울림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성룡의 스턴트팀과 중국 안무가가 참여했다고 한다. 션에서 상치로 전환되는 버스 액션신에서는 쿵후의 힘과 유머가, 웬우와 리가 처음 만난 신에서는 정말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때 많이 보았던 중국 무협 영화의 그것이다.
영화를 볼 때 만듦새보다는 각 인물의 동기와 감정에 몰입하는 편이다.
그래서 샹치와 웬우의 동기와 감정을 상상해봤다.
샹치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샤링과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샹치는 7살 어느 날, 어머니의 죽음을 목도한 이후 암살자로 키워진다. 열다섯에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처단하라는 첫 임무를 받고 집을 떠나 그 길로 아버지로부터 도망쳐 샌프란시스코로 망명한다. 텐 링즈의 습격을 받은 후 위험에 처한 여동생을 구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그래서, 임무는 완수했어?"라고 묻는 케이티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 원수를 죽이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후에 고백한다. "난 네가 생각하는 그런 좋은 사람이 아니야."
열다섯의 샹치를 상상해본다. 영화에선 그가 어머니를 죽인 원수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샹치는 어머니의 죽음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어머니의 생과 사가 한 치 앞에 있었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속수무책으로 나약한 7살 샹치는 어머니의 죽음을, 어린 두 자식을 위해 끝까지 싸워내는 어머니의 강인함을 목도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버지의 분노에 가까운 슬픔에 압도되어 암살자로 키워진 우리의 샹치. 샹치에게 힘이 생겼다. 눈앞의 원수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그는 선택했다. 아버지의 임무를 완수했다.
샹치는 아버지가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살인했을까? 아니라고 상상해본다. 샹치는 그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 그리고 도망쳤다. 아버지로부터가 아니다. 아버지는 자꾸 내 안의 악을 들춘다. 그것이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 응당 필요한 것이라고 나를 부추긴다. 그래서 도망친다. 내 안에 아버지의 것과 동일한 악이 있음을 알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친다. 열다섯의 샹치는 그렇게 봉인된다.
웬우
아버지 웬우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텐 링즈의 힘으로 수 세기를 불로장생하며 어둠의 세상을 장악한 그는 끊임없이 목마르다. 더욱 강하게, 더욱 강하게, 더욱 강하게. 결국 고대의 신비를 간직한 '탈로'마을로 향하게 되고 미궁 숲 연못에서 장 리를 만난다. 용의 마법과 신의 무술을 연마한 장 리와 결투를 하게 된 웬우는 결국 진다. 수 세기 동안 어둠을 장악한 그가 졌다. 용의 마법과 신의 무술에 진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불가항력적으로 들어찬 사랑 때문에 졌다.
이 사랑이 웬우를 쉬게 했다. 급기야 텐 링즈를 해산시키고 자신을 위해 마법의 힘을 포기한 장 리의 사랑을 닮아 자신 역시 장 리를 위해 텐 링즈를 벗는다. 장 리가 죽고 난 후에도 이 사랑은 뒤틀리고 어긋날지언정 웬우 안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순애보에 마음이 아팠다. 텐 링즈를 재결성하고, 아들을 암살자로 키워내고, 장 리를 떠올리게 하는 딸을 쳐다도 보지 않고, 급기야는 환청에 이끌려 어둠의 존재의 봉인을 파괴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그의 동기에 뒤틀린 사랑이 있다.
"우리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웬우는 그립다. 죽을 수도 없을 만큼 그립다. 장 리, 샹치, 샤링 그네들과 함께했던 그 찰나의 순간이 그립다. 그가 살아온 시간에 비하면 정말이지, 섬광처럼 스친 그 몇 해가 너무 그립다.
웬우가 가진 힘은 텐 링즈에 있지 않다. 텐 링즈보다 가히 강한 힘이 이미 그 안에 있다. 악에서 선으로 돌이키는 힘. 수 세기 동안 끊임없이 갈망했던 그 힘이 이미 그 안에 있었다. 웬우는 자신의 그 힘을 발견해 주고 사랑으로 꺼내 닦아준 내 사랑, 리가 너무나 그립다.
"누구냐 너 Who Are you?"
션으로 알고 있던 샹치에게 케이티가 던진 말이다. 샹치는 열다섯에 자신이 누구인지 알았다. 완전한 선도, 완전한 악도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 샹치. 아버지의 '악에서 선으로 돌이키는 힘'과 어머니의 '선을 지키는 힘'을 모두 가진 샹치.
조지 오웰의 「1984」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은 어쩌면 사랑보다 이해를 바라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웬우를 이해한 장 리의 사랑, 샹치를 이해한 케이티의 사랑. 웬우와 샹치를 왠지 이해하게 된 나도 사랑. 우리 모두 결국 사랑.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끝.
나에게 양조위는 중경삼림 경찰 633.
"이 방이 점점 감정이 생겨난다.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
사람은 휴지로 끝나지만 방은 일이 많아진다."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