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본에서 이직하기 (4)
2022년에 써놓고 발행하지 않은 이야기.
아직도 꾸준히 1편에 좋아요가 눌리고 있어서 죄송스런 마음이지만 뒤늦게나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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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에 이어서 리크루터에 대한 이야기. 이번 편에서는 리크루터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해서, 그리고 짤막한 코멘트를 남기고자 한다.
1) 구직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인지
구직자의 이야기를 듣고 구인 중인 회사와 매칭시켜서 돈을 버는 리크루터인데, 설마 사람 이야기에 귀 안 기울이는 사람이 있겠어?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이 일정 비율 있었다.
채팅에서 이미 싹수가 노란 사람 - 답장이 느리거나 거절의 메시지를 보냈을 때 답이 없는 경우
면담 일정 잡는 연락이 일방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 - 이 경우 구직자의 입장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
면담 중에 구직자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 - 니가 무슨 말을 하든지 내가 보낼 구인 안건은 정해져 있기 때문이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나에 대해 안다는 듯 내려다보면서 말하는 사람 - 빛 좋은 개살구 혹은 사기꾼 타입
2) 구직자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서 구인 내용을 제안해오는지
내 이야기를 잘 듣는 것 같았는데, 정작 보내오는 구인 안건을 보면 그저 그렇거나 그냥 자기네 회사에서 취급하는 회사들을 패키지처럼 보내는 경우가 왕왕 있다. 전자의 경우 절대 택하면 안되고, 패키지의 경우 어느 정도 성공 확률은 있기도 하고 (얻어걸리는 느낌이지만) 비컨설팅에서 컨설팅으로 이직할 때는 선택해도 나쁘지 않고 생각한다. 컨설팅에서 컨설팅으로 가거나, 컨설팅에서 엑싯을 하려는 상황이거나, 혹은 일반적인 이직이거나 하는 경우에는 패키지로 지원하는 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본인이 원하는 커리어의 방향성이나 깊이, 원하는 회사의 문화 등은 고려하지 않고 뭐 하나라도 얻어걸려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일을 잘 하는 리크루터를 만나게 되면, 처음에 조금 시간을 들여서라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파악하려 하고, 그걸 기반으로 어느 정도 조건과 회사 핏을 필터링해서 구인 안건을 보내준다. 그렇게 필터링해서 보내준 안건들의 경우, 지원할지 말지는 한 번 더 검토하긴 하지만 대부분 지원해봐도 괜찮을 것 같은 회사였다. 이 사람을 통해 총 5군데 회사에 지원했고, 3군데에서 오퍼를 받았다. 한 곳은 부서 문화는 낫배드였는데 회사 문화가 너무 경직되어 있는 것 같아서 서류 통과 단계에서 드랍했고, 한 곳은 회사 문화도 괜찮을 것 같고 직무도 재미있어 보였는데 회사 내부에 문제가 생겼다고 지금 합격해서 입사해도 분위기가 안 좋을 것 같다 해서 드랍했다. 결국 면접 진행한 3군데는 모두 오퍼를 받았으니 실질적 승률은 100%였다.
3) 구인 중인 회사의 사람들 (채용 결정권자 혹은 인사팀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인재소개업은 인적 네트워크에 기반한 산업이다. 회사가 원하는 인재를 찾아서 소개해주고, 구직자가 원하는 회사를 찾아서 소개해주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리크루터가 해당 회사의 채용 결정권자나 인사팀 직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여부. 몇 번 얘기 나누다 보면 대충 보인다. 회사 대 회사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서 이 사람의 의견이 반영되기는 어려운 상황인지, 아니면 진짜 개인이 그 회사 담당자랑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 전자의 경우도 회사 대 회사로 실적이 있고 일처리를 제대로 해준다면 괜찮다. 피해야 할 케이스는 이제 막 독립해서 채용자와의 커넥션이 영세한 경우. 말은 그 사람이랑 친하다고 하는데 별로 그래보이지도 않고, 독립한지 얼마 안되어서 실적도 없고. 피하자.
4) 여러 건을 동시에 진행할 경우 구직자와 구인중인 회사 양쪽을 다 배려하면서 면접 일정 조율 등을 스무스하게 해주는지
이것도 겪어보면 대충 느낌이 오는데, 진짜 기계적으로 일처리 하는 경우는 별로다. 상황에 따라 프로세스를 스피디하게 진행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탈출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일이 바빠 내 일정에 프로세스를 맞춰주길 바라는 사람도 물론 있지 않나.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하면서 진행하는 일인데 웬만하면 구직자 쪽 일정에 맞춰주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기계적으로 일처리 하는 경우, 그런 느낌을 초반에 받은 경우 일단 거르자. 그게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진 않는다. 구직자는 리크루터들에게 있어서 원오브뎀이겠지만 그걸 상대방이 알게 하느냐 모르게 하느냐의 차이. 중요하다.
5) 최종적으로, 오퍼를 여러 개 받은 상황에서 연봉 교섭을 최대한 잘 해주는지
사실 오퍼 받은 연봉은 자신의 시장가치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액수를 불러서 네고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 실제로 연봉이나 직급을 부풀려서 입사한 경우 본인의 능력에 비해 커다란 책임과 결과물을 요구받기 때문에 결국 그 상황을 잘 헤쳐나가기 어렵게 된다.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사항과 현실을 적당히 타협하면서 최종 오퍼 금액을 조정할 필요는 있다. 리크루터 입장에서는 높은 금액을 부르면 그만큼 자기에게 떨어지는 몫이 커지기 때문에 오퍼 금액이 높아질 수록 좋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적정값~낮은값을 부르면 회사측에서 오케이 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단가는 조금 낮아져도 건수를 늘리면 그들의 매출에는 문제가 없다. 괜찮은 리크루터라면 그 상황에서 최대한 줄다리기를 하거나 적정한 시장가치를 제안해서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할 것이다. 터무니 없이 높은 금액을 불러보자고 하거나, 터무니 없이 낮은 금액으로 후려치려고 하는 리크루터는 살포시 걸러내자.
안타깝게도, 이직 시장에 발을 들이는 초보 이직러들, 특히 외국인 입장에서 괜찮은 리크루터를 가려내기란 하늘의 별 따기 못지 않게 어렵다. 이 경우에는 이미 이직 과정을 겪었으며, 꽤 괜찮은 이직 경험을 한 이직 선배에게 리크루터를 추천 받는 것이 최선일 수 있다. 리크루터에 따라 다루는 구인 안건이 특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무조건 지인에게 추천받는 게 좋다고 하기도 어렵긴 하지만, 서로 비슷한 업계에 있거나 비슷한 스펙/잠재력을 가진 상황이라면 추천 받는 편이 평균 이상의 만족도를 기대할 수 있는 소위 "안전빵"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이번에 리크루터 두 명한테 의뢰했다. 결과를 놓고 보자면, 지인에게 소개받은 리크루터가 일도 잘 하는 사람이었고 결과도 좋았다. 두 명에게 의뢰한 이유는 다른 회사에도 폭 넓게 지원하고자 하는 욕심과 추천받은 리크루터보다 더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검증된 남의 말도 내가 검증하지 않으면 쉬이 믿지 못하는 일종의 직업병이 도져서 사서 고생한 셈이 되었다. 간만에 이력서를 업데이트 하고 약 3주 동안 거의 매일 면접을 봤던 것보다, '일 잘 하는 리크루터'를 찾으려 리크루터들이랑 컨택하고 면담일정 잡고 면담하는 과정이 더 지쳤다. 검증된 '일 잘 하는 리크루터'를 소개받았다면, 웬만하면 그냥 소개해준 사람을 믿고 진행하는 편이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이직이 급하지 않은 경우라면 내가 원하는 다음 직장/직무에 대한 이미지를 그려가면서, 그와 동시에 나랑 핏이 맞는 리크루터를 찬찬히 찾아나가기를 권하고 싶다.
이직 사이트나 링크드인에 프로필/이력서를 오픈하고 본인이 원하는 조건을 올리자.
그리고 연락오는 리크루터들을 훑어보고 1차적으로 걸러내자.
조금 쓸만해 보이는 리크루터가 있다면 답장을 보내 면담 일정을 잡자.
(면담 중에 바로 지원할 거냐고 물어본다면 즉답하지 말고 무조건 생각해본다고 하라)
면담을 하고 나면 면담 내용을 바탕으로 몇 개 구인 안건을 보내줄 것이다. 그걸 보고 또 한 번 걸러내자.
정말 수고스럽고 시간이 많이 들긴 하지만, 이 과정을 반복하다보면 정말 일 못 하는 리크루터는 어느 정도 거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직을 꿈꾸는, 본인과 핏이 맞는 리크루터를 찾고 싶지만 어떻게 찾아야 할지 갈피를 못잡는 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