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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선 Mar 30. 2023

존재한다는건 아름답다는 뜻이구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며칠 만에 나간 개천 물에 갈색 가루들이 둥둥 떠다녔다. 평소보다 더러워진 물을 보면서 걱정이 들었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풍경을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텐데……꽤 오랫동안 집 앞 개천을 별로라고 생각했었다. 가꾸는 사람 하나 없는 것처럼 억새풀이 무성한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잘 꾸며진 산책로와 비교하면서 이사 오기 전 동네를 그리워했다. 여가 시간에 가고 싶은 곳이 모두 우리 동네가 아닐 정도로 가까운 곳을 놓고 늘 멀리 다녔다.
 

 그러다 우연히 집 앞 개천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풍경은 아쉬웠지만 꾸준히 달리기에는 제일 좋은 코스였다. 그곳을 달리면서 꾸며지지 않은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억새풀을 보면서 자연스러움을 느꼈고 제멋대로 핀 꽃과 수풀 사이에서 꽃다발을 발견하기도 했다. 서로 다른 높낮이를 가진 존재들을 보면서 달리는 일은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자연은 마치 나에게 “너만의 높이는 따로 있어. 너만의 고유한 뿌리와 모양이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처음 달릴 때만 해도 다른 사람과 비교를 했다. 나는 한참 느렸다. 내 뒤에 오던 사람이 내 앞으로 쌩쌩 달려가며 멀어졌다. ‘내가 너무 느린 건가?’ 계속 추월을 당하자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나보다 조금 앞으로 달려갔고 또 어떤 사람은 점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갔다. 나 혼자 느린 거 아닌가 싶었지만 달리기 스승님의 말을 믿고 내가 달리기 좋은 속도로 꾸준히 달렸다. 나보다 빠른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빠르네’하고 말았다. 나의 속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을 때 오히려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온 나로부터 멀어져 갔다. 한 여름에는 햇볕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둥근 얼굴을 가리기 위해 평소처럼 머리를 길게 내려뜨리고 달리기도 힘들었다. 어떤 날은 느닷없이 내린 소나기에 그려 넣은 눈썹이 온데간데없이 지워지고 머리는 미역처럼 헝클어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달리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았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가 중요했다.
 
  달리는 풍경을 보면서 이제는 ‘좋다’ ‘별로다’라는 생각보다 궁금한 마음이 먼저 든다. 물이 더러워진 날은 무슨 일이 일었는지 궁금하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은 왜가리들이 어디서 지내는지 궁금하다. 비 온 뒤에 풀 냄새는 왜 더 진해지는지 궁금하고 잘 모르는 풀들의 이름이 궁금하다. 관심이 생기니까 더 자세히 알아보고 싶고 자주 나가 머물고 싶다. 
 
  머무르니까 다른 세상이 보인다. 바다에만 있는 줄 알았던 윤슬을 개천에서 본다. 왜 나는 윤슬이 바다에만 있는 줄 알았을까? 가까이에 이 반짝이는 곳을 두고…… 이제는 크고 멋져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 걸 안다. 작을 때나 클 때나, 멋있어 보일 때나 허름해 보일 때나, 빛을 받으면 모든 존재가 반짝인다.

 

존재한다는 건 아름답다는 뜻이구나!’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반짝임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나는 여기,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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