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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월날씨 Aug 06. 2019

베이스 드럼

시끄러워도 아름다운 소리가 존재한다

만약 누군가 내게 드럼에서 어느 소리를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숨에 대답할 것이다. 베이스, 무조건 베이스라고. 베이스 드럼이란 ‘쿵쿵탁, 쿵쿵탁, 위윌 위윌 롹유’에서 쿵을 담당하는 악기고, 드러머의 오른발이 내는 소리며, 드럼에서 가장 커다란 구성품이다. 온몸이 진동하는 묵직한 이 소리를 당신도 분명 들어보았을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어둑한 공연장에서, 스피커가 당신과 가까이 있다면 더욱 강렬하게 울리는 둥, 둥, 소리가 당신의 가슴을 울린 적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시끄러운 걸 잘 견디지 못한다. 드럼 연주를 좋아하고 베이스 드럼 소리에 미치는 사람으로서 할 만한 말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렇다. 나는 추위라든가 건조함과 같은 감각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몸을 갖고 있다.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건 고통을 심하게 느낀다는 뜻이다. 나의 신체 조건은 굉장히 취약하다. 그래서 가늘고 길게 살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스스로 불어넣긴 하지만 일상에 다양한 제약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코인노래방에서 한두 곡 부르고 나면 목에 모래가 낀 듯하고 약간 쌀쌀하네 싶으면 그날 밤 어김없이 종아리가 쑤셔 잠을 못 이룬다. 대부분의 자극에 예민한 사람이 소리에 민감하다는 건 무척 자연스러운 일로 느껴진다. 그러니까 나는 소리에 취약하다. 지속적으로 시끄러운 소리, 일시적으로 강하게 시끄러운 소리, 모두 괴롭다. 누군가에게는 전혀 시끄럽지 않은 소리도 내게는 시끄럽다. 사무실에 자리를 배정받고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유선전화 벨소리를 가장 작게 내리는 것. 집에 있을 때 휴대폰은 무음 모드. 예상치 못하게 초인종이 울리면(초인종 소리는 언제나 예상할 수 없다는 게 비극이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다. 아무리 깊이 잠들어 있어도 알람 진동 한 번에 잠이 깨며 그 진동조차 큰 소리라 불만이다. 그러니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른 사람이 맞춰 놓은 벨소리 알람을 듣는 일은 고문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알람을 벨소리로 설정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잠결에 소리를 못 듣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침대에 누워 영원히 울리는 알람 소리를 들으며 알람을 몇 개씩 연이어 맞춰놓고도 일어나지 못하는 얼굴도 모르는 그를 원망하는 것이다.


그렇게 괴로운데 어떻게 드럼 소리를 좋아할 수 있는 걸까. 원치 않는 음악 소리에는 귀를 막아버리는 게 나라는 인간이기에 더 신비로운 일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몸서리를 치기 때문에 시끄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소리에 더 강하게 매혹되는 걸까. 눈앞에서 드럼 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게 얼마나 큰 소리든 견딜 수 있다. 고통이 없는 건 아니지만 더는 견딜 필요가 없어진다. 견디지 않아도 나는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으니까. 드러머의 몸짓에 영혼을 빼앗긴 마냥 한없이 서 있다.


확실히 드럼 소리에는 뭔가가 있다. 어쩌면 내가 내면에 화가 많은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나도 전해 들은 이야기인데 ‘내면에 화가 많은 사람은 북을 쳐야 한다’고 어느 심리 상담가가 말했다고 한다. 오래전에 들은 말이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정말 심리 상담가의 말이 맞는지 내면의 화와 북을 연결한 게 맞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나는 이 말이 무척 마음에 든다. 덕분에 드럼을 치고 나면 진짜 화가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이유를 의식적으로 찾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건 수월하지만은 않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 보면 먼 곳까지 다다르는 법. 유명한 심리 실험이 떠오른다. 본능적으로 긴장되는 상황, 그러니까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를 탄다든가 높은 절벽과 절벽을 잇는 다리를 건넌 직후에 만난 사람에 대해서 성적 매력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발견되었다. 물리적으로 심장이 뛴 것을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하게 되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드럼에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될 수 있겠다. 드럼 소리가 심장을 쿵쿵 울려대는 탓에 내가 드럼을 좋아하는 걸로 착각한 건 아닐지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아마 내 심장은 남들보다 더 심하게 울렸겠지, 워낙 소리에 민감하니까. 그게 드럼에게 갖고 있던 약간의 호감을 어마어마하게 증폭시킨 건지도 몰라. 내 심장을 이렇게까지 뛰게 만든 건 네가 처음이었어, 같은 느낌으로. 베이스 드럼의 진동은 다른 구성-하이햇, 스네어, 탐, 심벌-보다 훨씬 강하게 심장을 두드린다. 심장을 지나 내장까지 도달하겠다는 패기로 묵직하게 온몸을 관통한다. 이토록 강렬한 물리적 힘이 심리적으로 바뀐 거라면 그것 나름대로 수긍이 간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항상 연결되어있고 몸이 마음에 끼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강렬하니까. 게다가 이쯤에서 중요한 건 내가 그 힘에 기꺼이 굴복하고 싶다는 점이다.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나는 점점 더 드럼이 좋고, 드럼 연주를 볼 때마다 황홀한 기분이 들며, 직접 드럼을 치는 순간에는 말로 할 수 없이 개운하고 짜릿하다. 그렇게 드럼 소리는 아주 오랫동안 내 심장을 뛰게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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