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정말 다들 그렇게 산다니까...!
미니멀리즘을 주제로 여러 이야길 했지만, 아직도 물건의 정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필자라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완벽하게 통달한 것은 아닌지라, 일상 속에서도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이놈의 집구석은 다시 물건들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주말마다 몰아서 집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습관이 있다. 물론 대부분이 쓰레기통 행이지만, 우리의 삶이란 게 생각보다 거추장스럽기에 완벽한 비움이란 쉽지 않다. 그 난관에는 반드시 이런 물음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것만 남기고 싶어도, 과연 당장의 내가 그런 판단력이 있을까?
정리를 하면서, '이건 자주 쓰는 것이기에 책상 위로', '손이 닿을 거리에', '욕실용품이니까 화장실~' 이렇게 쉽게 판단이 떨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일 테지만, 당최 감이 안 서는 물건들도 있는 법이다. 상비약 같은, 사용 빈도 자체는 높지 않지만 꼭 필요한 종류의 물건도 있다. 그런 것들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또 버리면 6개월이나 1년 안으로 사용할 날이 돌아올 것들. 우리를 괴롭히는 건 그런 물건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물건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를 원하면서도 이런 과정에서 고민하는 것 자체가 미니멀리즘의 아이러니다. 깔끔하게 정리를 한다고 마음먹었는데, 어째서 내가 하면 뭔가 어설퍼보이고 찝찝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대체 이걸 어떻게 버리고, 남겨두고, 또 정리하고 사는 걸까? 이건 미니멀리즘을 시작하고서 든 필자의 생각이자 독자 여러분 모두가 가졌던 생각일 것이라 믿는다. 글쎄, 내가 생각했을 때 이런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딱 하나다.
완벽한 미니멀리즘은 없으니까!
정말이다. 많이 버린 사람은 버린 만큼 후련해지면서도 가끔은 고통받는다. 그럴 때면 이제 미니멀리즘이 잘못된 것인지 내가 미니멀리즘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유성매직펜을 버리면 테이프로 칭칭 감은 택배 상자 위에 메시지를 못 적는다. 인터스텔라처럼 답을 찾더라도, 이미 당신에게 1차적인 '무슨 집에 유성매직도 없냐'라는 스트레스와 2차적인 '그럼 어떻게 한담'이라는 고민이 찾아온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단적인 예시였지만 그만큼 정리와 버림에 대해서는 미니멀리스트의 딜레마가 꽤 크다. 이 딜레마의 해결 방법 역시 방금 전의 문장, "완벽한 미니멀리즘은 없다"에서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계형 라이프스타일을 이야기했던 저번 글에서처럼, 우리 모두 각자의 생활에 미니멀리즘과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조절하며 살아야지, 남들이 보여주는 스타일을 본떠 만든 틀을 몸에 끼워선 안 된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정리할 때도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게 중요하며, 그 기준은 생각보다 관대해도 좋다는 게 미니멀 라이프 유지의 핵심이다. 나 역시 버리고 또 버리는 생활 중에서도 '이걸 버려 말아'하면서 잠깐 고민하는 타이밍이 오면, 그땐 나만의 방법을 사용한다. 오늘 소개할 그것은 바로
애매한 것을 모아두는 쓰레기통.
나 역시 책상 위도 깔끔하게, 집 바닥도 부엌도 최대한 필요한 것만 놓으려고 하지만 이것이 당장은 필요 없다고 느껴지면 이 상자에 보관한다. 이곳에 담긴 물건들은 이러한 죄목으로 잡다한 곳에서 끌려왔기에 상자 안은 정말로, 아무런 구분과 정리 없이 물품들이 쌓여있다. 얼핏 보면 잡동사니를 쌓는 것처럼 보이는 이 모습은 우리가 추구하는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유연한 탈출구가 없다면 '정리와 분류'에 고민하는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커진다. 이러한 판단의 위기를 살면서 몇 번씩은 반드시 마주치게 될 거라면, 이러한 쓰레기통 또한 꼭 필요한 것 아닐까? 다만, 이런 상자를 너무 크게 설정하지 않으면서, 나 나름대로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길 수 있는 능력은 사실 그 누구에도 '없기에', 나는 나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미니멀리즘은 이렇게, 잘 어기는 것도 이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남들에게는 나의 라이프스타일도, 외모도, 성격도 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게다가 남들에게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라고 소개한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힙하고 세련된 모습만을 더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이란 게 언제나 완벽할 수도 없고, 끝끝내 쿨하기만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자기 방 한구석에는 나만의 찌질함을 모아두는 공간을 만들어 스스로에게 선물해주면 어떨까. "아니 21세기에 이 정도는, 요 정도는 물건 좀 쌓아두고 살아도 괜찮잖아?"
그렇다. 누가 뭐라 하겠는가.
이미지 출처 : naver 웹툰, 금세 사랑에 빠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