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유명 미니멀리즘 에세이 번역 연재 #1
더욱 풍성한 브런치 매거진을 만들기 위해, 미니멀리즘에 대한 해외 인기 에세이들을 번역해 싣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사이 사이에 다시 필자 본인의 생각과 이야기도 쓸 예정입니다만.
※ 저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에 번역상 작은 오류들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해외 유명 미니멀리즘 에세이 번역 연재 #1
제목: 실리콘밸리의 그녀가 시도한 노마드 라이프
원제: Why a Tech Entrepreneur Got Rid of All Her Possessions and Lived as a Nomad for a Year
출처: http://www.vogue.com/article/prerna-gupta-songify-got-rid-of-possessions-lived-as-nomad
남편과(Parag)과 저는 침실이 4개나 연결된 긴 복도를 걷고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로스 알토스 힐에 위치한 집이지요. 운동하는 공간으로 써왔던 방에 도착해서는, 제가 빠르게 그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세어보기 시작했어요. 러닝머신, 싸이클, 계단형 운동기구, 웨이트 세트들. 벽에 거는 것조차 관심 갖지 않았던 액자형 벽걸이 거울은 벽에 기댄 채로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손님들에게 “다림질 방”이라고 소개한 작은 공간 안에는 다림질 판, 손님용 침대, 그리고 한 무더기의 서랍장들, 바닥형 램프, 빵빵한 쿠션 콜렉션까지 있었습니다. 남편과 나는 이걸 다 기부해버리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 목록들엔 우리가 이사했을 때 개조한 식사 공간도 있었는데, 거기엔 고해상도 프로젝터와 벽 사이즈만 한 스크린, 그리고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사운드 시스템과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다고 알려진 L자 모양 쇼파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나를 쳐다보았고, 우린 함께 놀라워했죠. '대체 우리가 어떻게 이 많은 물건들을 모아댄 걸까?'
2년 전, 우리는 애틀랜타의 평범한 수제 스타일의 방갈로에 살고 있었습니다. Parag는 조지아 기술대학의 미개척 분야 교수로서 인공지능과 음악을 조합해내는 일을 했죠. 그리고 저는 봉급도 없는 기업가로 애쓰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저희 집은 도로에 고장난 차들이 즐비한 걸로 유명한 올드 포스 워드(Old Fourth Ward : 애틀랜타 주, 조지아의 지명)라는 곳에 있었죠.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위험함을 느끼지 않고 잘 살았습니다. 왜냐면, 우리에겐 훔칠 물건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죠. 이케아 스툴과 낡은 TV, 그리고 온라인 중고로 구해낸 빈티지 스타일의 쇼파 정도?
아무튼, 어느 쪄 죽을듯한 6월의 아침, 저는 긴장으로 엉망이 된 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저희 부부가 최근 창업한 스타트업이 며칠 전 새로운 아이폰 앱을 출시했었거든요. Songify라 불리는 기괴하고 작은 앱인데, 사람이 한 말들을 노래로 바꿔주는 것이었죠. 나는 제 폰으로 이게 앱스토어에서 몇 등이나 하고 있나 체크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몹시 쇼킹했죠. 저희 앱이 1등이었고, 전 세계 아이폰 무료 앱 중에서 가장 많은 다운로드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제 메일함은 TV 방송사와 신문사의 인터뷰 의뢰로 꽉 차있었죠. 투자 회사들이 우리의 성장계획을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말입니다.
그렇게 갑작스레 인생의 모든 부분들이 바뀌었죠. 6개월 만에 회사는 실리콘밸리의 거물인 Bay Area에 인수되어갔고, 그곳의 이 사진으로서 저흰 페이가 어마어마한 직업을 얻게 된 것입니다. 돈을 만진 것은 정말 인생에서 처음이었어요. 저흰 재빠르게 멋진 경치를 가진 캘리포니아 동네의 집을 리스했습니다. 이게 바로 앞서 말한 집안 가구 大홍수의 물꼬를 튼 결정이었죠. 우리는 이웃들의 유리창으로 멋진 가구들을 훔쳐보았고, 도로 위의 비싼 차들도 함께 점찍고 다녔습니다. 저희 집 건너편에 위치한 집은 끝을 모르는 거대한 수영장을 가지고 있기도 했어요. 작은 포도밭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자리 잡고선 말이죠. 닷컴 붐 시대를 타고 수억 달러에 자신의 회사를 팔아버린 한 이웃은 자신의 아이들이 바깥에서 더 시간을 보내도록 격려하고자 케이블 썰매(zip line : 흔히 케이블을 타고 하강하는 레저 스포츠 기구를 생각하면 된다)를 만드는 중이기도 했습니다.
저희 부부도 질세라 사고 사고 또 사 제꼈습니다. 페르시안 러그와 에스프레소 머신, 엄청난 장식이 달린 램프까지... 게다가 샌프란시스코의 사교클럽에도 가입했습니다. 귀한 Napa 와인 한번 먹어보겠다고 입맛까지 고치며 애썼어요. 결국 그렇게 가다가 저희 부부는, 갖고 있던 낡은 검정 현대 소나타를 새 지위와 걸맞은 차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테슬라나 마세라티. 그것들이 이웃들 사이에서 가장 대중적인 모델이었으니까 골랐습니다. 거기에 우린 뭘 사야 하나 말다툼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테슬라가 더 기술적이며 친환경적이라고 나는 말했고, 남편은 마세라티가 더 간지 난다고 반박했죠. “네가 신경 쓰는 건 간지나 보이는 것 뿐이냐!”라고 남편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뭔 일일까요 대체? 저희는 단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었던 사이인데... 우리를 이처럼 불행하게 만든 게 뭘까라고 생각하는 과정 안에서 우리는 옛날에 함께 여행하던 때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애틀랜타에서 살던 그때, 코스타리카 해변으로 편안한 서핑 여행을 갔던 그 순간을요. 거기서 저희는 여기저기 여행 다니는 사람들을 만났었습니다. 그들은 한 번에 몇 주 단위로, 혹은 몇 개월 단위로 여행하고는 그들이 순간 꽂히는 변덕에 따라 움직이곤 했죠. 그런 발상은 너무나 매력적이었습니다. 더 많은 걸 소유하고 싶은 열망을 동력 삼는 인생이 아니라, 경험과 모험에 이끌리는 삶이라니!
만약 우리가 가진 걸 현저하게 줄여버리면 아마 그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몇 년 간의 생활할 돈 정도는 충분히 모아놨었 거든요. 저희 부부는 함께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서핑을 배우는 것도 논의했습니다. 이 모험의 시간은 결국 노마드처럼 사는 것에 대한 야망을 추구하는 시간이 되겠지요. 물론 우린 다시 직장인의 세계로 돌아오거나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혹은 간단하게, 우리는 아까 말한 것처럼 노마드 인생이 되고, 책을 팔면서 밥벌이를 하게 될지도 모르죠.
이런 풍요 속에서도 우린 직업을 그만두고, 비행기표를 예약했습니다. 그리고는 몇몇 질문들과 마주하게 되죠. 이젠 우리 물건들은 어떻게 처리하나? 우린 하나의 보관함을 만들어 짐을 쌌습니다. 몇 안 되는 가구들과 우리가 차마 버릴 수 없는 것들로. 그것들은 일 년 열두 달 늘 갖고 있는 것이죠. 우리의 소나타 자동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깃든 물건들 - 사진들과 책들과 음악들은 우리가 결국 디지털화시켜서, 모든 걸 몇 개의 외장 하드에 저장했죠. 근데 그 외장하드는 여권보다도 작습니다.
우리가 끌고 다닐 물건들은 하나의 여행가방, 그리고 두 개의 작은 백팩, 2개의 컴퓨터 가방, 그리고 남편의 하드 기타 케이스가 답니다(그는 인도 전통 어쿠스틱 악기인 샤로드를 연주합니다). 우리는 여행의 특정한 루트를 고정시키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 저희의 짐들마저 더 가볍게 해줄 따뜻한 해변가를 상상하긴 했죠. 비키니가 공간 차지를 많이 하진 않잖아요?
그렇게 11월부터 집 떠나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여행지는 코스타 리카의 서핑 타운이었습니다. 우리의 모험심을 자극해왔던 곳이죠. 적절한 가격대의 호텔을 예약해놓고, 우리는 해변가 근처에서 머물 집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찾은 집을 묘사하는 건 아마 너무 길어질 것 같은데... 일단 언덕 꼭대기에서는 끝내주는 뷰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딸려있는 게 침실뿐? 식사 공간과 욕실, 부엌 - 부엌이라고 해봤자 두 개의 접시와 두 개의 그릇, 두 개의 머그잔과 와인잔, 그리고 라쿤(너구리 같은 야생동물)이 못 열게 문을 보호하는 잠금장치가 있는 냉장고 하나뿐인 그곳 - 까지, 침실 빼곤 모든 공간이 폭풍우 같은 비바람에 노출되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희가 너무나 빠르게 적응해가는 것에 놀랐습니다. 우린 알람도 없이 일출과 함께 일어나 모닝 서핑을 가곤 했죠. 아침 식사 후엔, 친환경 리조트 근처의 해변을 따라 걸어 다녔습니다. 그 리조트는 앉을만한 흔들의자와 코코넛 워터가 딸려있는 곳이었죠. 그리고 거기서 집필 작업을 했습니다.
흔들의자에서 일하는 건 느낌부터 다르더군요. 오후의 더운 날씨가 찾아오면 오랫동안 글쓰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업무량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많고 훌륭했죠. 제 머릿속은 차분해지고 동시에 청명했습니다. 끝없는 사회적 수다들로부터 엉겨붙지도 않았거든요. 또한 집중력도 쉽게 찾아옵니다. 이런 오후의 시간들 속에서 우리는 채소를 사거나 몇 안 되는 옷가지들을 빨래했죠. 남편은 해질 무렵의 서핑을 좋아했고, 저는 요가를 하러 다녔습니다. 이곳의 나날들은 이렇게 휙휙 지나가고, 몇 주가 넘게 흘렀습니다. 우린 이 작은 언덕 위 집에서 3달을 머물렀죠.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한 공간에서 가장 오래 머물 수 있는 기간이 3달 정도는 된다는 걸 이곳에서의 시간들이 입증해준 것이죠.
이제 우리는 엘 살바도르와 파나마를 여행했고 스리랑카와 인도까지 가는 긴 여정을 계획했습니다. 서쪽인 스위스 알프스부터 크레타 섬까지 경유했죠. 이렇게 싸돌아다니는 건 어마어마하게 쉬웠습니다. 우린 에어비앤비로 한두 주 전부터 집을 예약했습니다. 모든 짐을 싸서 출발하기까지 1시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즉흥성이란 정말 스릴 넘치는 것이죠.
인터넷이야 전 세계 어디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뭐, 물론 그 연결 상태가 몹시 느린 경우도 있긴 했죠. 그러나 그 <빠른 인터넷>이란 개념은 우리가 살면서 딱히 없어도 된다고 느낀 또 다른 개념이기도 했죠. 매일 밤마다 아이폰을 충전해야 한다는 그 사실마저도 전 까먹기 시작했습니다. 이 코스타리카의 한 달 간의 생활 중에 말이죠. 그리고는 제 컴퓨터 가방과도 한 번에 몇 주 가량씩은 떨어져 살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다른 여행자들과도 쉽게 친구 먹었죠. 특히 우리가 한 달가량 해변가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문 스리랑카에서는 더더욱 쉽게요. 인간관계라는 게 더욱더 두근대고 즉흥적인 것으로 변모해가는 게 느껴졌을 정도니까요. 이건 우리가 수년간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입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몇 주씩이나 전부터 힘들게 계획해야 하는 저녁 식사 자리에 대한 관념이 어느 날 멍청한 짓거리였다고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우린 스리랑카에서 몇몇 커플 혹은 가족들과 만나서 술을 먹거나 저녁을 먹었죠. 그리고 전 배웠습니다. “그래서, 어디서 왔습니까?” 혹은 “직업이 뭐죠?”라고 묻는 걸 멈추고, 그저 가벼운 것을 이야기하는 것을요. 그 날의 서핑의 퀄리티나 석양의 색깔 같은 것을 물어보는 걸로요.
알프스 초목을 기가 막히게 하이킹했던 스위스 뮈렌의 한 마을, 그리고 올리브 나무와 사탕무들로 정원 벽을 이룬 크레타의 이동식 집 사이 어딘가였을 겁니다. 그곳을 지나가는 10달가량의 여행 중에 제 마인드가 차분해졌음을 진심으로 느꼈던 거죠! 일종의 자기 명령을 깨달았다고나 할까요. 자유는 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이 세상에 내가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그 무엇들보다도요. 물론 이것들은 내가 굉장히 중요한 것들이라고 한때 굳게 믿고 있었던 것들이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내야 한다고 충동질하던 엄격한 할 일 목록들과 같은 것들은 모두 다 사라졌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행복으로 가는 가능성'이 생긴 것이지요.
단 하나의 문제가 있다면, 우리 부부가 함께 쓰고 있던 책이었습니다. 책이 우리가 희망했던 대로 나오지는 않았어요. Parag와 나는 수백 페이지를 함께 작업하고, 개정작업을 하고 플롯과 캐릭터에 대해 토론했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책은 꼬이고 통제불능이었습니다. 우린 4만 개의 단어들을 친구들에게 보냈고 친절하지만 단호박인 비판들을 수용했죠.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또한 알고 있었죠. 이런 패턴이 흔한 것이며, 소설이란 것들은 이런 더듬거리고 반복하는 작업 안에서 써진다는 걸. 그리고 저는 일각에선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뭔가 혁신적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요. 저는 소셜 픽션 앱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냅챗 세대에게 스토리텔링이 먹히는 그런 걸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리콘밸리 회사에서 이 아이디어를 테스트하길 멈추기로 했습니다. 몇 주간 우린 에어비앤비에서 머물면서, 처음 만난 친구들을 붙잡고 펀딩에 관해서 물어볼 생각이었습니다. 우린 크리스마스에 코스타리카로 돌아가길 원했죠. 그런데 제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 익숙한 압박들이 들어차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사람들이 새 아이폰을 들고있었죠. 그해 샌프란시스코의 겨울은 추웠고 모든 친구들이 멋져 보이는 부츠를 신었습니다. 저는 스스로가 다시 쇼핑을 하고 싶어 하는 걸 눈치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는 반대 타입의 새로운 친구들을 발견할 수도 있었죠. 그 친구는 최근에 자동차를 자전거로 바꿔버린 친구였습니다. 또 한 명은 그녀의 소유물 대부분을 버리고 공유 주거 공간을 10개나 넘게 돌아다니며 살았다는 겁니다. 어쩌다 알게 된 한 부부는 2명의 아이들과 함께지만, 그들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 대신 그들 지출을 절반으로 줄이며 살아가기로 한 것이죠. 저희 부부는 저희가 정말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즉흥적이고 사회적 부담이란 게 없도록 살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해 궁금해졌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는 또 가버렸습니다. 저희 부부는 제 아이디어를 미디어 스타트업으로서 출범시켰고 투자자들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투자액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어느 샌프란시스코의 끝내주는 봄날에, 저는 금융 자치구역 안의 몹시 큰 회색 빌딩에 들어갔죠. 발레 파킹 직원이 제 차문을 열고 저를 온화한 웃음으로 반겨주었습니다. 표정은 그랬어도 아마 그는 먼지 낀 소나타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게 익숙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정말로 저를 기억하지 못했죠. 이곳이 저희 부부가 한때 회원이었던 클럽이었는데...
빌딩 안으로 들어가서, 저는 응접원에게 제가 여기서 만나야 할 투자자의 이름을 알려줬고, 그녀는 제게 그가 앉아있던 긴 목재 테이블을 가리켜 줬습니다. 우린 악수하고, 안부를 물었죠. 그러나 그 순간부터 투자자의 눈빛은 지루해 보였습니다. (그는 아침부터 스타트업 필딩을 뛰었기 때문이겠죠) 그는 우리가 기대했던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디 사십니까?” 저는 우리 부부가 머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이름 모를 어느 동네를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대신에 저는 더 진실로 여겨지는 말을 질러버렸죠. “딱히 사는 곳은 없습니다만”
그게 그의 집중을 끌어냈습니다. “우린 노숙자죠 뭐. 에어비앤비로 여기저기 삽니다. 우린 1년 간 여행 중이었고, 그래서 우린 이 순간도 노마딕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펀딩을 끝내면 어딘가에선 정착하실 거죠?” “글쎄요...” 저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그해 봄의 펀딩을, 작은 팀 하나가 돌아갈 만큼으로 충분히 키워냈습니다. 그리곤 약간의 망설임과 함께, 어느 아파트의 1년 임대 계약에 사인했습니다. 이 집에서는 가구들이 조금 부족하게 갖춰져 있도록 유지하자고 약속도 했죠. 그리고 어떤 걸 살 때 두 번 정도 생각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지금, 바로 그런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아, 여전히 한 가지 작업이 남아있군요. 우리가 끔찍이도 싫어하던 작업 하나! 우린 산 호세의 옛 창고로 가서, 삐그덕 소리가 나는 차고 문을 열어 올렸습니다. 커다란 박스 더미 위에 얹어진 먼지 쌓인 램프등을 땅바닥으로 내렸죠. 우리는 오후를 통째로 바쳐서 거기 있던 것들을 정밀하게 선별했습니다. 저는 부츠 한 짝을 거기서 꺼냈지만, 사실 그 부츠의 존재마저도 아예 잊고 있었습니다. 제 남편은 와인잔과 커피병들만 골라 꺼냈습니다. 그리곤 문을 닫고 떠났죠. 남은 모든 건 기부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