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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태웅 Apr 30. 2016

평범한 우리에게 진단하는
생계형 라이프스타일

변명이 아닌 새지평입니다만.

이는 잡지 Chaeg no.16(2016년 5월호) [opinion] 란에 기고된 필자의 글임을 밝힙니다.


생계형 미니멀리스트?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인생의 불필요한 요소를 남들보다 한 뼘 더 고민하고 줄여가는 걸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대충 필자의 모습이 그려질 것 같다. 실제로 오늘날에 심플한 라이프스타일을 갖춘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삶을 소개하면서 한국에도 그런 생활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필자도 그 기류에 편승해 미니멀리즘을 접한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에, 내가 미니멀리스트에게 품던 환상은 여타 국내 독자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 환상을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그들은 볕이 잘 드는 깔끔한 방에 매트리스 하나, 옷장에는 똑같은 린넨 셔츠 4벌, 작업실에는 애플 컴퓨터를 두며 산다. 서두에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고 당당히 소개했으니 필자의 모습도 그런 세련된 모습으로 그려주었다면 감사하겠지만, 현실은 다르다. 나는 ‘생계형’ 미니멀리스트이기 때문이다.


    생계형 미니멀리스트인 내 옷장에는 린넨 셔츠 4벌만 걸려있지는 않다. 살다 보면 가끔 단체행사 때 입어야 할 유니폼도 있고, 경조사 때는 정장도 입어야 한다. 한가락 한다는 미니멀리스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생과일 하나 갈아 마시고 출근한다는데, 글쎄 나의 부모님은 여전히 다 먹지도 못할 반찬을 아들 몰래 자취방 냉장고에 채워 놓으신다. 그게 부모들의 낙이라는데, 아들로서 감히 이겨 먹을 수가 없다. 아침에는 사흘 내내 미역국 냄비를 데워 밥만 말아 먹고 출근한다. 배고픈 건 못 참는데 8시 반까지 출근하려면 별수 없지 않은가. 미니멀리스트라더니, 읽다 보면 참 시시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가끔은 자리에 맞게 셔츠도 다려 입어야 하지만, 평소 옷차림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의 맨투맨 티로만 구성해서 아침에 뭘 입을까 고민하지 않는다. 옷에서 시작해 사람에서도 나는 심플한 관계를 조성하곤 한다. 집중할 사람에 최대한 집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다짜고짜 지인들 중에서 90%가 넘는 사람들과 절교 선언을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땐 소심하게 메신저에서 친구 숨기기를 누르는 것에 만족한다. 언제 일터에서, 부탁할 일이 생겨서, 물건을 사고팔 일이 생겨서 연락 올지 모르는 것이 사람 일이니까. 시시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게 내가 선택하고 추구하는 생계형 미니멀리즘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생계형 라이프스타일들’이 나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생각한다. 채식주의자인 누군가도 가끔은 채식보다 중요한 접대나 회식 자리가 존재하고, 물건을 적게 소유하고자 하는 누군가도 육아의 문제가 닥치면 아이 건강과 교육에 필요한 각종 물품을 사야 한다. 손편지나 필름 카메라 등 아날로그 감성을 되찾고 싶어도 오늘날 스마트폰 없이 살기가 쉬운가. 이때 생계형 라이프스타일은 나에게 놓인 피할 수 없는 환경에 가끔씩 양보할 줄 아는, 그런 넉넉한 삶의 선택지를 제공한다.



    좇아가던 라이프스타일이 위기를 맞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는 잡지나 인터넷에서 본 이상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생계라는 제법 강력한 핑곗거리를 대도 좋다. 필자 역시 삶의 매 순간 위기를 느끼고 핑계를 대니까.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미니멀리스트라는 사실과 이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했던 이유를 잊지 않으려한다. 미니멀리스트들은 SNS에 인증샷을 올리려고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다. 내 삶에서 더 중요한 게 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잡다한 선택지를 없애나가는 게 본래의 취지였다. 채식주의는 과한 육식으로 병든 몸을 건강하게 가꾸는 것이지, 몸속에 채소를 채워 넣는 것이 본래 목적이 아니다. 채식주의자도 밥벌이에 급할 때는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지만, 늘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려는 마음가짐을 버리지 않는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인다. 저탄소 라이프를 꿈꾸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늦잠 자면 자전거 말고 택시를 타야한다. 하지만 그 택시 한 번에 무너지는 친환경주의보다, 한 달에 보름 정도는 거뜬히 자전거를 타고 통근하는 시민이 지구의 건강에는 더 기여할 것 같다. 그러니 가끔은 어긋나도, ‘나는 역시 안 되나’ 혹은 ‘역시 한국에서는 불가능해’ 라고 체념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생계형 @@주의자’라고 칭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지향하는 곳으로 끌고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 다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생계형 미니멀리스트다. 아무리 남들따라 사는 걸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라지만, 5천만 사람들에게는 5천만 개의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모두가 각자의 삶에 맞춰서 고유의 라이프스타일을 갖춘 사회를 꿈꾸지만, 적극적으로 갖춰나가려 할수록 어려운 점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여러 시행착오 끝에, 라이프스타일을 잘 갖추는 방법은 오히려 그 스타일을 ‘잘 어기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 여기며 산다. 조금은 어긋나도 유연히 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돌아오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생계형 @@주의자로서 각자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길 바란다. 오늘도 그런 생각을 하며 한 생계형 미니멀리스트는 맨투맨에 청바지 차림으로 늘 가던 카페를 가서 고민 없이 늘 같은 커피를 주문한다.




이미지 출처 : daum 웹툰,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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