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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너무 특별했던 시할머니

보고싶습니다

by 연필소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향년 92세 조정숙 님.

내게 가장 따뜻하고 든든하고 정겨웠던 분.

여름에 시골집에 가면 집 앞 감나무 아래서

수박을 쪼개 먹고 누워 함께 볕을 쬐던 분.

시골에 오더라도 이쁜 옷을 입고 오라고 하시던 분.

배탈이 나면 친손주처럼 배를 문질러 주시던 분.

일 년에 두 번밖에 못 가는 손주며느리에게

매번 착하다고만 하시던 분.

그렇게 착한 손주며느리 되고 싶게 만들던 분.

자식은 꼭 낳아야 한다, 하시다가 언젠가부턴

자식 안 낳았다고 누가 뭐라고 하면 나한테 데려와라,

너는 내가 지켜주마, 하시던 분.

요양원에 몸이 반쪽이 되도록 누워만 계시면서도

늘 내 손을 잡으며 밥 챙겨 먹었는지만 묻던 분.

친할머니, 외할머니도 아닌 시할머니.


코로나 때문에 가족 누구도 임종은 지키지 못했다.

큰아들이 먼저 하늘에 가 있는 동안,

장손이 상하이에 있는 동안,

손주며느리가 제주도에 있는 동안,

코로나로 자식 손자 손녀가 면회 한번 가지 못하고

일 년이 지나는 동안,

할머니는 홀로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외국 나간 손주 얼굴을 너무도 보고 싶어 했을 마음과,

가족 없이 홀로 눈 감으셨을 순간과,

너는 내가 지켜줄 테니 걱정 말라며

내 손을 잡아주던 목소리가 떠오를 때마다

천식이 재발한 것처럼 가슴이 막혔다.

슬퍼서가 아니라 보고싶어서.


제주-김포

1월 31일 11시 20분 비행기.

그렇게 서울을 일 년 반 만에 왔다.


할머니를 볼 수 없는

할머니 계신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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