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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IONIONION Oct 22. 2018

줄 없는 삶

가전 제품에서 사라지는 줄과 일상의 변화

첫 경험은 아무래도 가정용 무선 전화기

손가락으로 말랑하게 튀어 나온 숫자 하나 하나를 누르며 걸던 전화기들.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 요리하다가도, 청소하다가도, 자다가도 벌떡벌떡 마루에 설치된 전화기로 뛰어가던 엄마가 떠오르곤 한다.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아, '오히려 얼마나 편했을까'라는 물음이 맞겠다. 전화기 이전엔 즉각적인 원거리 의사소통이 불가했던 시절이니까. 그래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기술은 생각의 한계를 넘어선 놀라움을 매년 들고 찾아왔다. 다양한 패턴이 있겠지만, 나는 '선'에 집중해 현상을 바라봤다. 과학 기술은 언제나 선과 함께 놀라움을 가져왔고, 그 다음은 선을 회수해 가면서 진짜 자유를 선사했다.

지금의 중년층이 처음 가정용 무선 전화기, 시티폰 등을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삶의 질이 차원을 뛰어넘는 진화를 했다는 느낌을 받았을까. 생각난 김에 엄마한테 물어봤다.


"엄마, 핸드폰 처음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어?"
"글쎄? 편했지 뭐."
"...그게 다야?"
"이상한거 묻지 말고 니 방이나 치워 종나시키야"
"...응..."

아... 그렇구나. 청소나 해야지.


선 없는 삶이 주는 자유

-샤오미 무선 선풍기-

나의 첫 경험은 샤오미 무선 선풍기였다. 왜 핸드폰이 아니냐면, 핸드폰 대중화가 한참 지난 20살에 첫 핸드폰을 샀기 때문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랄까. 우리 집은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에어컨 없이 살아왔고, 오래된 선풍기 여러 대를 각자 찜뽕!해서 방으로 들여다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찜뽕한 선풍기가 드디어 사망했고, 너무 더워서 맥반석 오징어가 되기 직전, 뀨텐에서 샤오미 선풍기를 질러버렸다.

이런 일 겪어본 적 있는가. 엄마가 전기세 아낀다고 멀티캡 전원을 꺼버려서 선풍기가 꺼지는 일, 부엌에서 밥먹는데 종나 더워서 선풍기를 켰는데 콘센트가 종나 멀어서 강풍이 미풍처럼 불어오는 일. 샤오미 무선 선풍기는 저런 종같은 일을 경험하지 않게 해준다. 언제 어디서든 향긋한 바람을 느끼게 해줬고, 그 때 난 '생활 기술 발전의 궁극은 무선이다 바밤바!'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 선풍기는 미니멀리즘 디자인이라, 전원을 어떻게 꺼야 하는지 어른들은 직감적으로 알기 어렵다.

그래서 엄마가 전기세를 핑계로 선풍기를 끄지 못하는 장점도 보유하고 있다. 심지어 무선이라 코드 뽑기 스킬도 통하지 않는다.

쫑풍기 ><

여러모로 무선 선풍기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는, 이 녀석에게 내 이름의 중간 글자를 따서 네이밍을 해줬다. 쫑풍기라고.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무선 이어폰까지-

두 번째 경험은 이어폰이었다.

타고난 손이 똥손이라 아무리 좋은 이어폰도 1년을 채 못 버티고 사망하기 일쑤. 한쪽 귀로만 들으며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결국 이어폰에만 꽤 큰 지출을 해왔다. 어디 이런 경험이 나뿐이겠는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이어폰 줄꼬임으로 적잖은 불편을 느꼈으리라. 그런 시기에 찾아온 엘지전자의 톤플러스 제품은 줄로 묶여있던 우리의 손을 자유롭게 해줬다. 대신 목을 졸랐지.

모노로만 제공됐던 기존의 통화 전용 블루투스 이어폰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멀쩡한 블루투스 이어폰의 세계를 열었달까. 그러나, 선풍적 인기를 끌던 톤플러스는 개목걸이, 택배기사 변신 템이라는 오명을 쓰고 쓸쓸히 시장 구석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초창기 톤플러스의에 대한 사용자의 반응은 어마어마했다. 한 번 줄없는 자유를 느끼면 다시금 그 족쇄로 돌아갈 수 없는 법. 블루투스, 와이어리스에 대한 시장의 니즈는 폭.발했고, 최근 몇 년 간 유수의 기업들이 훌륭한 블루투스, 와이어리스 이어폰을 출시했다.


처음 구매했던 제품은 양쪽 이어폰이 하나의 줄로 연결되어 있는 3만 5천원짜리 중국산 블루투스 이어폰이었다. 비록 줄이 있긴 했지만, 톤플러스처럼 개목걸이처럼 생기지도 않았으며, 얇고 가벼웠다. 진심으로 삶의 질이 좋아졌다고 느꼈다. 이걸 내가 왜 이제야 샀을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인간이란 어떤 동물인가. 적응의 동물 아니겠는가. 금새 목 뒤로 닿는 그 얇은 한 줄이 너무나도 거슬려졌다. 결국 와이어리스 이어폰을 구매하기에 이르렀다. 


대충 이렇게 생긴 이어폰이었다.


확실히 와이어리스 이어폰은 아직 줄이 남아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과는 다른 차원의 경험을 선사했다. 걸리적 거리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진정한 자유. 하지만 아직 기능적으로 불완전함이 더러 있다. 블루투스 연결의 불안정성, 양 측 이어폰을 각기 페어링해야 하는 점, 기존 하이엔드 이어폰의 성능을 100% 따라 잡지 못했다는 점, 매번 충전해야 하는 점 등. 그래도 뭐, 조금 불완전해도 줄 없음이 전해주는 사용자 경험은 모든 불편함을 뛰어넘는다.


그렇게 난 와이어리스 이어폰 오른쪽을 분실했다.
그렇다. 이 글은 와이리스 이어폰 오른쪽을 분실한 한 사용자의 소리없는 아우성이었다...

어디 있는거니... 보고, 아니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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