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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물개 Mar 18. 2024

No more Nomad

워케이션에 대한 단상

코로나가 점점 완화되기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너도 나도 할거 없이 여행을 떠났다. 아파트 렌트가 만료되자마자 3개월간 캠핑카를 빌려 호기롭게 미주 10개 도시를 찍고 온 회사 친구 B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친구 A는 하와이에서 한 달을 살고 왔다. 내가 번아웃으로 바닥까지 떨어졌다가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는 동안 재택근무를 하는 많은 이들이 말로만 듣던 워케이션 (Work+Vacation)을 하고 있었다.

여행을 결심한 계기는 달랐지만 어쨌든 나도 비행기를 타고 다른 도시로 날아왔으니 뉴욕으로 워케이션을 온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휴가를 많이 낼 생각도 없었어서 43일 중 딱 2주를 내는 걸로 했다. 주말을 포함하면 그래도 약 2주 조금 넘는 시간은 온전히 일을 해야 했던 셈이다.


나는 행복한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온 힘을 다해 충실히 만끽했다. 아무도 없는 집에 처박혀서 하루 종일 머리도 감지 않은 채로 일 하다가 다른 도시, 다른 공간에서 일을 하니 하루하루가 당연히 새롭게 느껴졌다. 일이 끝나면 부리나케 약속 장소로 이동하거나 뉴욕에서 하고 싶었던 위시리스트를 실행하러 다녔다. 미술관부터 2층버스 타고 돌아다니기, 새로 생긴 전망대 가기, 당시 뉴욕에서 핫했던 운동인 Pure Barre 배우기 등, 매일이 도파민 천국이었다. 이 좋은 걸 왜 안 하고 살았나 싶었다. 바쁘게 쏘다니느라 우울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베이에 있을 때보다 빠른 속도로 활기를 찾아갔다. 뉴욕에서 만난 그 누구도 아마 나를 불과 몇 달 전까지 우울했던 사람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나를 집에 틀어박혀 세상 사는 게 부질 없다고, 온 우주에 나 뿐이라고 생각하며 지낸 줄 상상이나 했을까. 그래서 좋았다.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상상 속의 워케이션


문제는 그게 딱 2주 갔다는 거다. 시간이 흐를수록 생각지 못했던 노마드 생활의 단점들이 스멀스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건 바로 급락하는 생산성. 일과 여행을 병행하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고난도의 집중력과 시간관리가 필요한 영역이었다. 더군다나 이 도시는 어찌나  재밌어 보이는 게 많은지, 그 많은 유혹거리를 물리치고 일에 집중해야 하는데 업무 퀄리티가 떨어지기 쉬운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솔직히 머릿속엔 빨리 끝내고 놀러 갈 생각만 하느라 제대로 일이 안 된다고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이아가라폭포가 보이는데 일이 어떻게 되느냔 말이다


3주 차부턴 방법을 바꿨다. 성공적인 노마드 라이프를 위해선 결국 일과 휴식 둘 중의 하나 비중을 과감히 줄이거나, 강도를 줄여야만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평일엔 가급적 회사+운동을 가고 몸에 무리가 가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되니 비로소 이제 현지인 다운 삶= 회사, 집을 반복하는 일상을 살게 되는데, 이때부턴 여기가 뉴욕인지 샌프란시스코인지, 여의도인지 모르겠는 웃픈 상태에 도달한다. 집 나간 생산성을 끌어올리겠다고 기를 쓰고 뉴욕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기를 며칠 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여의도에서 일하는 거랑 뭐가 달라!". 새로움을 찾아 떠나온 곳에서 어느덧 현지인 비슷 무리하게 생활하게 되는 순간 느끼게 된다. 직장인의 삶은 사실 어딜 가나 별거 없구나. 그렇게 새롭지도, 그렇게 자유롭지도 않다.

여행지가 아닌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나는 집에서 일을 잘 못한다. 나의 짧은 초단기 집중력도 문제지만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집보다 카페, 오피스 등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는 곳에서 일이 훨씬 잘 된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주는 힘 덕분인 듯. 그래서 샌프란으로 돌아온 이후부터는 오피스를 더 자주 나가려 한다. 요즘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무료 주 4회 오피스 출근을 하고 있다. 누가 보면 회사 진짜 사랑하는 줄.


아무래도 나는 노마드가 적성에 맞지 않는가 보다. 일도 잘하고 싶은데 노는 것도 빼먹지 않고 싶은, 능력은 부족하면서 욕심만 많은 나는 슬프게도 워라밸 찾으러 왔다가 둘 다 없어진 것 같은 희한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적어도 최소한의 프레임에서 어디 갈지, 뭐 먹을지 고민할 필요 없이 한 가지에만 몰입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일할 땐 일만, 쉴 때는 랩탑은 쳐다도 안 보고 오로지 휴식하기가 속 편하고 깔끔하다. 디지털 노마드? 개나 줘라. 나는 그냥 열심히 소처럼 일하다 제대로 휴가 쓰고 한량처럼 즐기련다. No more,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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