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주차]#인텔 #파운드리 #겔싱어
안녕하세요. 서진욱 기자입니다.
지난달 초 인텔의 위기를 총정리한 뉴스레터를 보내드렸는데요. ([169호] 파운드리 덫에 갇힌 인텔) 인텔이 위기 극복을 위해 대규모 인력 감축에 이어 추가적인 자구책 마련에 나섰습니다. 팻 겔싱어 CEO가 주도한 파운드리 사업을 매각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제기된 상황입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인텔이 검토 중인 자구책에는 어떤 내용이 있는지 정리하고, 인텔의 행보가 가져올 후폭풍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파운드리 재진출로 위기를 자초한 겔싱어 CEO는 계속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레터를 여러 통로로 공유하고 있는데요. 구독자가 기대만큼 늘지 않아 고민이 큽니다. 이 글을 보고 지인들에게 추천해주시면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레터는 추석 연휴를 보내고 23일에 보내드리겠습니다. 행복한 한가위 보내세요!
인텔 추가 자구책 준비… 고강도 구조조정 나선다
①IPO 하려던 유망 자회사 알테라 매각 검토
②비용 감축 위해 독일 대규모 팹 건설 포기하나
③파운드리 축소 불가피, 매각까지 검토?
파운드리 1위 TSMC 입지 더 강화된다
1000억달러 국내 투자 약속 지킬 수 있을까?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인텔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와 함께 고강도 구조조정 방안을 논의 중인데요. 지난달 초 2분기 실적 때 발표한 직원 1만5000명 해고, 배당금 미지급, 연간 자본지출 20% 감축으로는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 같습니다. 2분기 순손실 규모는 16억1000만달러(약 2조1600억원)에 달했는데요. 구조조정 없인 흑자전환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팻 겔싱어 CEO는 이달 중순 열리는 이사회에 추가 자구책을 보고할 예정입니다.
가장 먼저 올해 3월 자회사로 분리한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기업 알테라를 매각하는 방안이 거론됩니다. 인텔은 기업공개(IPO)를 위해 알테라 분사를 단행했는데, 빠른 현금 확보를 위해 매각으로 선회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IPO보다 매각이 더 많은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점도 고려했겠죠.
인텔이 2015년 알테라를 인수하면서 지불한 금액은 167억달러(약 22조3700억원)에 달합니다. 당시 인텔 역사상 최대 규모 M&A(인수·합병)였죠. FPGA는 생산 이후 추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도체인데요. 인텔은 CPU(중앙처리장치) 시장 침체에 대응하는 동시에 데이터센터, 자율주행차 등 신사업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알테라를 인수했습니다.
AI 가속기로 활용되는 FPGA 반도체 시장은 지속해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요. AI 주도권 경쟁이 극심한 상황이기 때문에 알테라가 매물로 나올 경우 인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인텔 입장에서는 기업가치를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거죠. 물론 미래 경쟁력을 팔아넘긴다는 비판은 감수해야죠.
알테라의 유력 인수 후보로는 AMD, 마벨 테크놀로지 등이 거론되는데요. 2020년 AMD는 FPGA 1위 기업 자일링스를 인수했기 때문에 알테라까지 손에 넣으면 FPGA 시장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확보합니다. 인텔이 최대 경쟁자인 AMD에 유망 자회사를 넘기는 일이 실현된다면 반도체 역사의 중대 사건으로 기록되겠죠.
인텔이 알테라뿐 아니라 자율주행 시스템 자회사인 모빌아이의 지분 매각도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인텔이 2017년 153억달러(20조5000억원)에 인수한 모빌아이는 2022년 나스닥에 상장했는데요. 올해 주가가 73% 떨어지면서 현재 기업가치는 102억달러(13조7000억원)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인텔은 지난해 모빌아이 지분 일부를 매각해 15억달러(2조원)를 조달했었죠.
자본지출 감축의 연장선상으로 대규모 팹(반도체 생산시설)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표적으로 독일 작센안할트주의 주도인 마그데부르크에 건설하려던 팹이 유력한 백지화 대상으로 꼽힙니다. 2022년 3월 인텔은 170억유로(25조원)에 들여 마그데부르크 팹을 짓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당시 발표로는 지난해 상반기에 공사를 시작해 2027년부터 반도체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었는데요. 하지만 독일 정부와 보조금 협상이 지연되면서 착공 시점이 미뤄졌죠.
지난해 6월 이뤄진 보조금 합의에 따르면 인텔의 투자 규모는 300억유로(44조원)로 2배 가까이 늘었고, 독일 정부는 100억유로(15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텔이 받는 보조금이 크게 늘긴 했지만, 인텔 입장에서는 200억유로(30조원)에 달하는 투자 집행이 필요합니다. 현재 인텔의 재무구조를 고려하면 감당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죠. 인텔이 마그데부르크 팹 건설 계획을 폐기할 경우 독일 정부와 약속을 저버리는 것이어서 비판 여론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마그데부르크 팹을 유럽 생산 거점으로 삼겠다는 청사진도 무산됩니다.
인텔은 마그데부르크 팹 발표 당시 아일랜드 팹 확장, 프랑스 R&D(연구·개발)센터 건설, 이탈리아 포장 및 조립시설 건설 등 계획도 내놨는데요. 올해 6월 팹 지분의 49% 매각해 110억달러(15조원)를 유치한 아일랜드 팹 확장 외에는 보류되거나 폐기됐습니다.
투자 규모가 가장 큰 마그데부르크 팹까지 폐기한다면 유럽연합(EU)와 미국 간 외교갈등으로 번질 여지도 있습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인텔의 투자 결정에 "마그데부르크에서 인텔의 반도체 생산은 독일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외국인 직접투자다. 마그데부르크와 독일, 유럽 전체에 좋은 소식"이라며 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죠.
위기의 근원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합니다. 겔싱어 CEO는 2021년 'IDC(종합 반도체 기업) 2.0' 전략을 내걸고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했는데요. 유의미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채 막대한 적자만 내는 골칫거리로 전락했습니다. 파운드리 영업손실은 2022년 52억달러(7조원), 2023년 70억달러(9조4000억원)에 달했는데요. 올해 상반기에 벌써 53억달러(7조1000억원) 적자를 냈습니다. 인텔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죠.
일각에서는 인텔이 파운드리 부문 매각을 위한 분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는데요. IDC 2.0 전략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어서 당장 실현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바이든 정부로부터 195억달러(26조원)에 달하는 보조금 및 대출 지원을 확약받고서 파운드리 사업에서 철수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에 휘말릴 수 있죠. 이미 확정한 대규모 해고와 비용 감축만으로도 파운드리 사업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추가 자구책에도 막대한 적자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파운드리 매각이라는 초강수를 둘 여지도 존재하죠.
겔싱어 CEO가 2022년 영입한 립부 탄 이사의 이탈은 방향성을 잃은 인텔 파운드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3대 반도체 설계 기업 중 하나인 케이던스 디자인 시스템즈 CEO를 역임한 탄 이사는 반도체 업계의 베테랑으로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영입된 인물입니다. 탄 이사는 돌연 인텔을 떠나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는데요. 주요 외신들은 탄 이사가 사내 정치에 몰두하는 중간관리자들을 내보내 관료주의를 타파하자는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사를 떠났다고 보도했죠.
인텔이 파운드리 부문을 매물로 내놓는다면 미국 글로벌파운드리가 유력한 인수 후보라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2021년 인텔이 파운드리 재진출을 선언한 직후 글로벌파운드리 인수 협상을 벌인 점을 되돌아보면 3년 만에 두 회사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인텔이 파운드리 부문을 팔든 안 팔든 업계 1위인 대만 TSMC 지위는 더욱 공고해질 전망입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세계 10대 파운드리 기업 매출은 320억달러(42조7000억원)로 집계됐는데요. TSMC 점유율이 62.3%로 1분기 61.7%보다 0.6%p 높아졌습니다. 2위 삼성전자(11.5%)와 점유율 격차가 50%p를 넘는 독보적 1위입니다. 인텔은 10위 내에 진입조차 못했는데요. 바이든 정부를 등에 업은 인텔 변수가 사실상 사라지면서 TSMC의 압도적 경쟁력이 새삼 부각됐습니다. 아직 적자인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인텔과 마찬가지로 자사 반도체를 함께 생산하는 IDC라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죠.
지난달 TSMC는 독일 드레스덴에서 유럽 첫 팹 건설을 시작했습니다. 투자 규모는 100억유로(15조원)로 절반을 독일 정부의 보조금으로 조달합니다. TSMC는 드레스덴 팹을 연간 48만개의 실리콘 웨이퍼를 제조하는 유럽의 생산 거점으로 삼을 방침입니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웨이퍼 팹을 신설하는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착공이 이뤄진다면 TSMC는 애리조나주에서만 3곳의 웨이퍼 팹을 운영하게 됩니다. TSMC는 그 어떤 기업보다 빠르게 생산 역량을 강화하고 있죠.
지난 레터에서 언급했듯이 인텔이 바이든 정부와의 미국 내 투자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올해 3월 인텔은 칩스법(반도체 칩과 과학법)에 따른 정부의 보조금 지원을 확약받으면서 5년간 1000억달러(134조원)를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대부분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한 팹 확충에 투입할 예정이었죠. 아직까지 이사회에 보고할 자구책에 국내 투자 감축도 포함될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인텔이 막대한 국내 투자금을 계획대로 조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의견이죠.
대선이 불과 2개월 앞으로 다가온 민감한 시점을 고려하면 인텔이 국내 투자 계획 변경을 자구책이 넣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텔이 국내 투자를 줄이겠다고 말을 바꿀 경우 칩스법에 비판적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훌륭한 먹잇감이 될 수 있습니다. 정권교체가 이뤄진다면 정부 지원이 약속대로 이행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게 최선이겠죠. 만약 인텔의 국내 투자 규모가 축소될 경우 2030년까지 세계 첨단 반도체의 20%를 자국에서 생산하겠다는 바이든 정부의 목표는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큽니다.
겔싱어 CEO는 2021년 인텔이 밥 스완 CEO를 1년 만에 경질하고, 위기 극복을 위한 구원투수로 영입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위기 극복은커녕 그가 주도한 파운드리 재진출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촉발했습니다. 아직은 인텔 이사회가 CEO 교체를 검토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구원투수의 패전이 불보듯 뻔한데 계속 공을 던지게 두는 건 이해가 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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