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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Jun 15. 2024

해서 뭐 하긴요, 선이 되지요

숲의 일기

금요일 밤에 잠든 아기 옆에서 숨죽이고 일기를 쓸 수 있어서 감사하다. 곤히 잠든 아이가 기특해 박수라도 짝짝짝 쳐주고 싶지만 박수 치면 깨니까, 깨면 그야말로 불금을 보내게 될 테니 텔레파시에 고마움과 칭찬을 잔뜩 담아 전했다. 

육아를 하며 전보다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육아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체 벌려놓은 일들이 많다. 스터디, 독서 모임, 라디오, 운동 챌린지... 지난주에는 커피를 배우고 싶었고, 이번 주에는 번역을 배우고 싶어졌다. 주변에 멋진 분들이 많은 탓이다. 

바쁜 않은 날을 보낸 게 언제였나 떠올려보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대학생 때는 연극 동아리를 극단 생활하듯 열을 올려 했다. 졸업 즈음엔 '나'를 탐색하겠다며 일기 콘텐츠와 소모임을 만들었고 취업을 후엔 우당탕탕 일을 배우고  퇴근한 밤엔 혼자 글을 끄적이고, 끄적인 글을 보고 좌절하기를 반복했다. 집에 오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게 기본이고, 침대엔 밤에 잘 때만 누웠다. 주말에 낮잠이나 늦잠이라도 자면 하루를 망친 기분이 들어 괴로웠다.

누가 시켜서 그런 건 아니었다. 꼭 이뤄야 하는 대단한 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시간의 공백이 생기면 습관처럼 무언가를 채워 넣었다. 때론 구멍 난 항아리에 물을 막듯 다급하게, 때론 퍼즐에 조각을 맞춰나가듯 흥미롭게. 왜 이렇게 하고 싶은 게 많고 궁금한 게 많은지... 아무래도 취미 부자 아빠에게서 온 유전자인 것 같은데 아빠보다 내가 심하다. 뭔가... 진화한 건가? 

보통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래도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좋겠어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나는 "그게 또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라며 나름의 고충을 설명한다. 하고 싶은 게 많다고 다 할 수는 없으니, 늘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들'이 쌓여있다. 게다가 '하고 싶은 것'이 대체로 '잘하고 싶은 것'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욕심만큼 잘하지 못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된다. 잘하지 못하는 애매한 취향만 늘어가는 기분에 우울해질 때면 초대하지도 않은 못된 손님이 마음에 찾아온다. 

그는 바로 '해서뭐해' 씨! 내가 들뜬 표정으로 '이거 해보면 어떨까?' 하면, 그는 세상 무기력한 표정으로, 세상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거 해서 뭐해..." "커피의 세계란 놀랍구나! 배워보고 싶다!"라고 하면 "커피 배워 뭐해? 바리스타 될 거야? 지금 한가하게 그거 할 때야?" 하는 식이다. 해서뭐해씨의 말로는 돈이나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는 건 다 쓸데없는 것이란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이 대게 그런 것들이어서, 해서뭐해씨 앞에서 난 철 없는 어른이 된 기분이다. 

분 단위로 꽉꽉 채워 넣었던 바쁜 일상은 이런 해서뭐해씨에 대한 나름의 저항이었구나 싶다. 저항한다. 그가 바라지 않는 방식으로. 해서 뭐 할 무언가를 찾는 것이 아니라 해서 뭐 할지 모를 것들을 하는 것으로. 물론 그의 말대로  '해서 뭐 할까 했던 그것들'이 쌓여 돈이나 성공이 되지 않았다. 다만, 선이 되었다. 내가 전혀 모르던 세계의 사람들과 나를 잇는 연결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삶의 궤적은 해서뭐해씨의 말을 무시하고 열심히 뭐 한 결과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은 절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선이 모여 면이 되고 입체가 되듯 새로운 경험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으로 나를 이끌고 내가 알던 세계를 넓혀나간다. 사람들을 겉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숫자로만 재단하지 않고 그들에게 내가 모르는 다양한 면이 있음을, 내가 감히 들어가 보지 못할 마음속 공간이 있음을 짐작하게 된다. 

입체적인 삶이 더 행복한지는 모르겠다. 쉽게 판단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머리 아픈 인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확실히 '사랑'에 유리하다. 사랑하기 위해 산다면, 누군가를 섬기고 돌보는 것이 삶의 의미라 생각한다면, 입체적인 삶은 의미 있다. 

해서뭐해씨에게는 유감이지만 나는 앞으로도 선을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 꼬부랑 선을 그릴 때까지 인생이라는 스케치북에 이리저리 선을 긋다 보면 어느새 흰 종이는 온통 검게 채워질 것이다. 나중에 천국에 가게 될 때, 나를 데리러 온 천사가 내게 물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무슨 그림이죠?"

예상치못한 질문에 나는 당황해 우물쭈물 대답한다.

"아... 이건... 그... 검은 것이...밤을 표현한 것입니다." 

"밤이라고요?"

"네.. 선을 계속 긋다 보니까... 검게 되었네요."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허허 웃는 내 앞에서 

그림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것을 한참 보던 

천사의 한마디는 이랬다.

"밤이 아니라 삶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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