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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숲 9시간전

사진이 흔들렸을 땐 웃기로 해요.

노래의말들 - 숲의 일기

하루에 아기 사진 한 장, 일상의 풍경 한 장을 찍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사진을 봤을 때 "네가 모빌 볼  때, 아빠는 이런 걸 봤어, 네가 뒤집기를 한 날 아빠가 이런 걸 했어" 뭐 이런 대화.. 라기보다는 대사를 하고 싶어서다. 하하. 


유품으로 카메라도 남기고 싶다. "아빠가 보고 싶을 때 이 카메라로 세상을 보렴, 그럼 아빠도 함께하는 거야" 같은 유언...이라기보다는 대사를 하기 위함이다. 하하. 


기록의 특별함을 더하기 위해 필름 카메라로 찍기로 했다. 신혼 때 아내와 '각자 자신을 위한 선물을 하자'라는 핑계로 산 고가의 필름 카메라다. 이 녀석의 아름다운 외관에 대해 설명하자면 끝이 없으니 넘어가고, 필름 카메라로 찍는 즐거움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예쁘다! 아.. 외관에 대해 넘어가기로 했지만 이쁨을 빼먹을 수 없다. 책상에 올려놓아도 멋진 인테리어 소품 같고, 바깥에 들고나가 사람들에게 "어머! 필름 카메라에요?" 한마디씩 들으면 어깨가 올라간다. 뷰파인더로 보는 세상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왜 이 뷰파인더를 그대로 구현한 디카는 없는 거지? 의문이 든다. 우리 눈에 모두 뷰파인더가 달렸다면 아마 세상은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글로 넘쳐날 텐데. 


그러나 필카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다. 배송비를 포함하면 한 장에 천 원 정도 하는 셈이니 팡팡 찍어댈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한 장 한 장 찍을 때마다 고민하게 된다. 이게 찍을 만한 걸까? 지금 찍어야 할까? 조금 있다가 노을이 질 때 찍으면 더 예쁠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 건물 앞에 핀 무궁화를 출근할 때 보고는 '퇴근할 때 찍어야지!' 했다가 매번 까먹어 일주일 만에 찍었다. 

조금 더 예쁜 장면을 찍겠다고 숨을 참고 있다가 숨이 차서 장면을 놓치기도 하고, 하트 모양 구름이 떴다거나 예쁜 풍경을 발견한 날에는 어김없이 카메라를 두고 오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찍혔다고 생각한 것과 찍힌 것의 차이도 상당하다. 예술가인 양 신중하게 찍은 필름을 스캔해보면 흔들려서 초점이 나가거나 어두컴컴하게 나온 사진이 반이 넘는다. 


그럼에도 이런 것이 필카의 '매력'인 이유는 이런 변수들 덕에 찍은 사진이 더 귀해지기 때문이다. 잘못 나온 사진들 사이에서 잘 나온 사진 몇 장은 디카로 따라잡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인데도 오래되고 소중한 추억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느낌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얼마 전에도 사진을 맡겼다. 아기 사진 프로젝트 4롤, 1년 전에 찍은 사진 4롤 정도였다. 스캔 한 사진을 보니 역시나 흔들린 사진들이 많았다. 특히 아기 사진은 아기의 왕성한 꿈틀거림(?) 덕분에 대부분 초점이 나갔다. 그런데 그 사진을 보다가, 나는 웃었다. "이것 봐 완전히 심령사진이야" 하고 아내를 보여주니 아내도 웃었다. "이때는 왜 또 눈을 감았어" 말하며 또 웃었다. 이 실패한 사진들이 어떻게 웃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카메라가 선물하는 '순간'은 사진을 찍는 순간뿐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사진을 보는 순간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셔터를 눌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보는 순간의 가치는 완벽함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때로는 통제를 벗어난 흔들림이 미소를 짓게 한다는 것을 배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고,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다고, 사랑도 그렇다고 얘기한 시인이 있다. 흔들리는 인생은 어떤가? 실수가 많은 인생을 두고, 예기치 못한 일들로 가득했던 시절을 두고,  웃을 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그럴 사람과 함께이면 좋겠다. 무엇이든, 둘이 볼 때 더 웃긴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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