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른세 살의 너는 아내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뉴질랜드로 훌쩍 이민을 떠나왔다. 남태평양 섬나라에서 인생의 후반기를 보낼 것이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생처음 와 보는 나라다. 지도를 찾아보고야 그 나라의 위치를 알았고, 운전석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도 모른 채 준비 없이 덜렁 날아왔다. 젊음과 도전이라는 엄청난 무기처럼 여겨지는 두 개의 정열을 양손에 꽉 쥔 채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한다는 기대감에 부푼 채일 것이다. 잘 안다. 새벽 두 세시에 퇴근하는 지긋지긋한 일간지 기자 생활을 내던지고 네 딴에는 탈출을 감행했다는 걸.
뉴질랜드의 비공식 주제가라고 불리곤 하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는 노래에 불과하다는 걸 곧 알게 될 것이다.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선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을 해야 할 것이다. 먹고사는 걱정을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계획하지 않았던 많은 직업을 거쳐야 할 것이고, 여행 신고서의 직업 란에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한동안 머뭇거리게 될 것이다. 당분간 질척거리는 바닥을 훑어야 한다. 7년 후엔 올 크리스마스를 못 보게 될 것이란 의사의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진단도 받을 것이다. 깜깜한 어둠 속에 주저앉아 하느님이 나를 구해줄 것이란 유일한 희망에 기댈 수밖에 없다.
올라가면 내려가고 바닥을 치면 올라갈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경험과 색다른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때론 즐거움이자 기쁨도 되지만 자주 아픔과 후회가 된다는 것도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당시엔 그것이 왜 일어났고, 무슨 이유에 일어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될테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때와 그 이유를 가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해주려고 한다. 서른세 살의 네가 당시에 알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그것들은 평범한 가치다. 블로그나 인스타,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문구들이다. 안다고 해서 서른세 살부터의 네 인생이 크게 달라 지거나 현저히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너는 여전히 별반 다르지 않은 30대의 너일 테이고, 똑같은 일들이 똑같은 상황에서 발생할 것이다. 배울 것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면 견디기가 쉬워진다. 참을성이라곤 일도 없는 네가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 겸손과 연민이라는 흔해 빠진 인간의 가치가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너의 아집을 깨부수는데 얼마나 훌륭한 도구가 되는지 배우게 될 것이다. 성숙해지고 성찰하는 남자로 서서히 깊이 바뀌어질 것이다.
가장 먼저 네가 너 자신에게 쉼 없이 해줘야 하는 말이 있다. 가끔씩 가슴에서 울려오는 그 작은 목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힘들 때마다 헷갈릴 때마다 지쳐하는 너에게 쉼 없이 그 말을 꼭 해줘야 한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