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살고 싶어서, 오늘은 아날로그 (3)
모든 문제의 원인은 회사, 해답은 퇴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오늘 당장 때려치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계속 지금처럼 살고 싶지도 않았다.
이 끔찍한 만원버스에서 일단 내리고 싶었다. 내렸다가 곧장 다음 버스를 타야 한대도, 잠시나마 숨을 돌리고 싶었다. 단 하루라도 이 시끄러운 세상을 벗어나 혼자, 조용히, 평온하게 있어 보고 싶었다. 그러면 내 머릿속 흙탕물에서 흙이 좀 가라앉고, 맑은 머리로 내 삶을 다시 정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남의 소리 속에서 살고 있었다. 직장에서는 물론이고, 퇴근할 때도 사무실을 나서는 즉시 이어폰부터 꽂았다. 지쳐 돌아온 집에서는 스마트폰으로 떠들썩한 예능과 드라마, 유튜브 등등을 시청하며 치킨을 뜯고 과자를 먹었다. 분명 재밌고 맛있는 시간이었는데도, 일요일 저녁이면 허무함과 자괴감이 밀려오곤 했다. 이렇게 평생 남이 시키는 일을 하거나, 남이 만든 것만 구경하며 살게 되면 어쩌지?
나는 내 자제력을 믿지 못하는지라, 술, 담배, 게임, 주식, 코인 등 중독성이 있는 것은 되도록 멀리해 왔다. 그럼에도 여러 번 특정 음식, 특정 드라마, 인터넷 서핑, 모바일 게임 등등에 꽂혀 한 메뉴로 5kg을 찌우거나 한두 달을 꼬박 날리곤 했다. 이런 성향을 알기에 스마트폰도 최대한 늦게 샀고, 산 뒤에도 시간제한 앱을 설치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잠기도록 설정해두었다.
그럼에도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업무 스트레스가 강도를 더해 가면서, 스마트폰은 점점 내 삶의 유일한 낙이 되어갔다. 숏폼 콘텐츠를 넘겨보며 슬펐다가, 웃겼다가, 놀랐다가, 귀여웠다가, 화났다가, 신기했다가, 감동했다가 등등 오만가지 감정들을 초단위로 널뛰어다녔다. 드라마는 한번에 몰아봐야 직성이 풀렸고, 시간제한 앱이 실행되어 영상이 끊기면 ‘피씨방 전원 차단’ 실험을 당한 것처럼 짜증이 솟구쳤다. 스마트폰이 잠기면 아이패드를 꺼내 유튜브를 봤다. 잠금앱 설정을 바꿔 하루종일 폰만 보기도 했다.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나는 ‘폰질’이라고 불렀다. 폰질은 너무 쉽고 편하고 재미있고 다채로웠다. 네모난 화면 속의 벼라별 콘텐츠, 인터넷 게시판에 쏟아지는 글들은 나를 꽉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그중에는 정말 훌륭한 작품도 많았고, 유익한 정보와 기발한 유머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를 혼자 있어도 혼자 있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가만히 누워서 남들 사는 모습을 보거나, 남들이 하는 말만 듣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주인이고 폰은 도구인데, 도구가 주인 멱살을 잡고 끌고 다녔다.
이것 없는 삶을, 아니,
이것 없는 단 하루를 상상해본다면?
직장에서 혼자 조용히 있기는 불가능하다. 모니터 위에 ‘집중하고 있으니 00시까지 말 걸지 마시오’ 팻말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감히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휴일만큼은 조용히 지낼 수 있지 않을까? 모든 소음을 끄고 뜀박질을 멈추고 안정을 취할 수 있지 않을까?
몇 년 전 양평 용문사에서 2박3일간 템플스테이를 한 적이 있었다. 핸드폰을 수거해가진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카메라 이외의 모든 앱을 잠그고 디지털 디톡스를 시도했다. 깊은 산속 캄캄한 새벽 공기를 울리던 범종 소리. 잔디마당에서 겨울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던 오후. 삼시세끼 규칙적인 웰빙 절밥. 그야말로 힐링 그 자체였다. 또 가고 싶었지만 허리가 나빠 좌식생활이 어려운 관계로 다시 찾지 못했다.
꼭 템플스테이가 아니라도, 낯선 도시의 저렴한 비즈니스호텔을 잡아 스마트폰을 금고에 처박아두고 아날로그 여행을 즐겨보면 어떨까? 그러고 보니 요즘엔 디지털 디톡스에 특화된 숙소나 카페도 있다던데. 어느새 나는 스마트폰으로 몇 시간 동안 ‘템플스테이’, ‘북스테이’, ‘디지털 디톡스 숙소’ 등등을 검색하고 있었다.
아니면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도 좋을 것 같았다. 집 안에서도 세상사를 잊고 조용히 지낼 수 있게, 수도원처럼 침대와 책상만 있는 텅 빈 방을 만들어 하루종일 틀어박히는 거다. 그리하여 나의 검색어에는 ‘투룸’과 ‘2000-40’, ‘미니멀리즘’, ‘대형폐기물 수거’ 등이 추가되었다.
휴일 오전을 그렇게 검색질로 보내고 나니 현타가 찾아왔다. 고작 내 물건 몇 개를 안 쓰기 위해서, 숙박비·교통비를 들여 집을 떠나야 한다고? 심지어 이사를 가야 한다고? 이게 맞아?
기본적으로 여행이란 일회성 이벤트다. 여행을 매주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당장 휴가를 낼 상황도 아니었지만, 어렵게 시간을 내서 2~3일쯤 잘 보내도 그때뿐이다. 다시 배낭을 꾸려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내일의 출근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지속 가능한 휴식을 원했다. 해법은 단순할수록 좋다. 실행이 복잡하고 비용이 클수록 접근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여행도 이사도 아닌 제3의 방법은 ‘공간분리’였다. 집 안을 최대한 아날로그 공간으로 만들면, 속세를 떠나지 않고도 수시로 템플스테이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사는 1.5룸에는 방과 부엌이 나뉘어 있는데, 그중 주생활공간인 방을 ‘아날로그 존’으로 만들기로 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나누는 기준은 ‘화면·인터넷·검색기능’이었다. 방에 있던 데스크톱·스마트폰·태블릿·이북리더기·VR기기 및 이들과 연결된 프린터·이어폰·충전선·거치대를 죄다 들어냈다. 디지털피아노와 미러리스 카메라, 손목시계용 워치(제일 단순한 모델)는 아날로그 물건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방에서 꺼낸 디지털 기기들은 부엌 구석 책상에 몰아넣어 ‘디지털 존’으로 정했다. 다이소에서 사 온 압축봉과 커튼으로 책상을 덮어 검은 화면들을 가렸다. 필요할 때만 커튼을 열어 필요한 만큼만 쓰자는 취지였다. 물론 커튼에 자물쇠가 달린 건 아니니 얼마든지 쉽게 열 수 있지만, 늘 눈에 보이는 것과 한 겹이라도 가려놓는 건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효과가 있을지는 해봐야 알겠지만.
이렇게 공간을 분리하니, 절에 들어가거나 호캉스를 떠나거나 이사를 가지 않고도 아날로그 휴가가 가능해졌다. 폰을 꺼서 컴퓨터 책상에 두고 커튼을 닫으면 디지털 기기가 없는(보이지 않는) 집이 되는 것이다. 간단하지 아니한가?
모든 환경을 세팅한 뒤, 다가오는 토요일을 대망의 첫 아날로그 휴일로 정했다. 전날 밤 가족 단톡방에 내일은 연락이 안 될 거라고 메시지를 남겼다. 폰을 끄고, 폰케이스에 끼워둔 체크카드를 빼내고, 무선이어폰까지 책상에 내려놓은 뒤 비장하게 커튼을 닫았다. 과연 이 커튼을 열지 않고 내일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계획은 없었다. 꼭 뭔가 보람찬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도 버리기로 했다. 뭘 하든 다 괜찮다. 아날로그 상태로 있기만 하면 성공이다. 이제 곧 타임머신을 타고 낯선 세상 낯선 시간에 도착할 것이다. 새로운 자유가 펼쳐진다. 내일 하루만은 그 누구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거나, 현란한 화면으로 유혹해 시간을 빼앗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문득 내일의 날씨가 궁금해졌다. 다시 핸드폰을 켜서 일기예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일 날씨 까짓거 자고 일어나면 알게 될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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