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잡JOB생각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관용을, 모든 일에는 사랑을.”
- 어거스틴
<자비의 원리>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저는 2018년에 ⟪기획자의 습관⟫이라는 책을 읽으며 이 개념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은 자비의 원리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어요.
“상대의 말을 받아들일 때, 상대가 합리적이라는 가정 하에 그의 논증이 참이 되는 방향으로 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태도”
당시에 이 문장 아래에, 이런 메모를 남겨두기도 했네요.
메모 : 논리적인 흠이나 비약이 있더라도, 상대에게 유리하게 그 의도를 이해하는 것. 요즘 뉴스를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이 이슈가 되고 논란이 된다. 혹여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문맥 상 충분히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상대의 말의 의도를 이해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굳이 아니꼽게 이해하는 악플러들도 많다. 서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또는 비난이 아닌 발전적인 무엇인가를 꾀한다면, 대화에 자비의 원리가 필요하다.
<자비의 원리>는 일터에서도 꽤 많은 도움이 됩니다. 만일 <자비의 원리>와 거리가 먼 상대방과 미팅을 한다고 상상해 보세요.
대화를 할 때 사소한 것으로 꼬투리 잡고, 문제 삼는 경험
말의 맥락과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 하나에 집착해서 문제 삼는 경우 보신 경험
조언도 아니고, 공감도 아니고,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의견으로 피곤해진 경험
때로는 비아냥인가 의심이 들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의 지식을 뽐내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말로 인해 논의의 줄기가 끊어지는 경험
그래서 결국 정작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것을 다루지 못하고 진척 없이 시간만 낭비한 채 회의가 끝난 경험
상상이라고 했지만, 사실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이기도 하죠.
이런 모습은 때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역량이 뛰어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대화의 큰 줄기와 맥락>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시야가 좁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기도 합니다. 말의 본뜻보다는 중요하지 않은 표현에 집착해 일의 속도를 늦추게 만들기도 합니다.
세부적인 표현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원활한 소통을 위해 동일한 시작점을 가져야 하고, 때문에 서로 같은 정의에서 출발하는 것은 물론 필요한 일이라고는 생각합니다. 또 신은 디테일에 있다고 하기도 하는 만큼, 디테일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 모든 걸 부정하거나 나쁘게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닙니다.
일을 진행하거나 대화를 나눌 때 모든 디테일을 따지면 오히려 피로해집니다. 그게 생산성을 보장하지도 않고요. 대세에 영향 주지 않는 건 그냥 넘어가는 태도도 필요합니다. 사소한 것에 너무 집중하기보다는 일의 맥락, 논의와 대화의 맥락,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 기반에서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일잘러에게 필요한 태도가 바로 이 자비의 원리가 아닌가 합니다. 이건 커뮤니케이션 역량이기도 하고, 동료에 대한 배려이자 협업 능력이기도 하고, 논의 주제와 대화에서 큰 맥락을 파악하는 역량이기도 합니다. 또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중에, 중요한 것에 포커스하고 대수롭지 않은 건 넘길 수 있는 판단력이기도 합니다.
또 동료 관계에서 사소한 말에 상처받지 않게 자기를 지키는 데도 도움이 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동료의 말이 다소 투박하고 거칠게 들리더라도, 그걸 나를 향한 적대감으로 받아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자비의 원리>를 기억하면, 동료의 선의를 믿고 그의 말의 의미와 핵심만 취하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