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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nurfavoritesong Dec 21. 2015

노인이 왜 청춘이에요?

1장. 2015년 대한민국에서의 노인

 요즘 우리 사회 속에서 부정적인 신조어들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특히 자주 보이는 단어들이 헬조선, 지옥불반도, 수저계급론, ~충, 극혐과 같은 것들이다. 헬조선이나 지옥불반도는 대한민국을 비판 혹은 비하하는 신조어로 지옥보다 살기 힘든 현실을 비유하는 말이다. 헬조선, 지옥불반도의 현실은 의무는 산더미인데 권리는 없는 국가, 원자재 가격은 낮지만 가공품 가격은 높은 국가, 나이가 서열이 되는 국가, 보수라고 하면 일베 취급을 받는 국가, 진보라고 하면 빨갱이 취급을 받는 국가, 열정, 노력만 있으면 뭐든지 해결될 것이라 말하는 국가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을 기반으로 새로운 계급론이 생기기도 했는데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 계급이다. 말 그대로 집안이 풍족하면 금수저, 가난하면 흙수저라는 것인데 이 수저계급의 특징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계급을  벗어던지기 힘들다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만은 개인에게도 표출된다. 각박한 사회 속에서 특정 집단을 비판하거나 비하하는 용어인 ~충이 여러 방면에서 적용되고 있다. 자세하게 설명하는 사람들을 설명충이라 부르는가 하면 일부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부모,  그중에서도 젊은 엄마들을 맘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러한 말들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사회에 깔려있는 불만이나 분노가 혐오의 감정으로 전이되어 나타나게 된 것들이다. 그 덕에 극혐이라는 신조어도 나타났다. 극한의 혐오라는 뜻이다.

모 커뮤니티 사이트의 노인관련 게시글과 댓글

 수많은 충들이 살아가는 헬조선에서 노인들도 예외일 순 없다. 취업난과 실업난 등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청년들은 노인을 자신들의 세금으로 부양해야 할 부담으로 인식하고 장년들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에 개개인이 경험한 노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이 SNS를 비롯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퍼지고 공유되면서 노인들은 그들의 이름을 잃고 세금충, 노인충이라 명명되며 혐오의 대상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정동영 전 국회의원 트위터 게시글

 노인에 대한 이러한 정서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이미 꽤 오래전부터 일부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사용자들이 자신의 조부모 사진을 올리며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 집에나 박혀 있어라는 식의 글을 올리거나 노인들의 병약한 이미지를 조롱하는 글을 올리는 일은 빈번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공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익명으로 글을 올리는 일반인들만큼 패륜적인 내용은 아니었으나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전 국회의원 정동영은 청년층의 투표를 독려하려는 트위터 게시글에 경솔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가 쓴 트위터 게시글 중 꼰대들, 늙은 투표라는 표현에 대해 노인을 비하한다는 입장과 표현은 개인의 자유이다, 틀린 말도 아니지 않으냐 등 다양한 의견으로 갈리며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들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에 전통적으로 존재해왔던 노인공경, 장유유서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것으로 오래전부터 사회 밑자락에 깔려있던 노인에 대한 불만이 혐오와 결합되어 극단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당연시되었던 노인에 대한 예우와 존경이 이제는 뒷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원인이 앞서 말했던 청년층, 장년층의 문제뿐이라고는 할 수 없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고지식한 사고나 고집 등이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한다. 허나 전제가 어찌 되었던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글을 조금만 뒤져봐도 우리에게 노인은 민폐, 잉여, 소멸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으며 폭력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울시 서대문구 청춘극장 외관


꿈꾸는 청춘예술대학 소개 이미지

 물론 당연하게도 모두가 노인에 대해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인터넷에서 표출되는 불만이나 비난이 현실세계에서 적극적으로 드러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사회 전반에 노인들을 위한 복지사업과 실버사업들이 발달하고 여러 방면에서 그들을 위한 혜택이 생겨나는 추세이다. 대표적으로 몇 가지 소개하자면 가장 유명한 ‘청춘극장’이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위치한 실버전용 극장으로 노인들의 취향에 맞춘 고전영화를 상영하는 사업이다. 노인들에게 맞는, 그들에게 익숙한 문화생활을 제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꿈꾸는 청춘예술대학’도 있다. 노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다양한 문화예술을 직접 감상하고 체험하며 동시에 창작해온 결과물들을 공유하는 문화예술교육 시스템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페이스북 프로필 이미지

 뿐만 아니라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도 확대되고 있다. 기존에는 복지센터나 정부의 차원에서만 이루어졌던 노인 일자리 창출이 2005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설립되면서 체계적이고 폭넓은 정보를 공유하고 실행할 수 있게 시스템화 되었다. 단순하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창업, 인턴을 통한 취업 등 젊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경제활동에 뛰어들 수 있게끔 돕는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많은 사업들은 보통 문화생활 향유와 경제활동 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사업 이름이나 슬로건, 홍보문구를 보다 보면 공통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키워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로 젊음, 청춘이다. 청춘으로의 회귀가 수많은 노인사업이 추구하는 공통적인 방향인 듯 청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업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이다. 추측해보건대 아마 청춘이라는 이름 속에 담긴 역동성과 활동성, 도전성을 노인에게도 부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노인들에게 청춘이라는 키워드가 문화생활, 경제생활 등 사회적인 역할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이것이 과연 옳은 방식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보통 노인을 청춘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콘텐츠들은 무언가를 배우거나 생산하는 형식이다. 그 외의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위에서 언급한 청춘극장처럼 영화나 공연을 보는 정도가 전부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인에게 청춘의 옷을 입히려는 마케팅 혹은 인식을 마냥 노인들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되찾은 청춘, 꿈꾸는 청춘, 제 2의 청춘, 청춘 청춘 청춘……. 노인복지, 실버사업에서 왜 이렇게 청춘이라는 단어가 강조되는 것일까. 그리고 노인들은 도대체 왜  또다시 청춘이 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한쪽에서는 집에나 처박혀 있으라고 하고 한쪽에서는 자꾸 나와서 무언가를 배우고 활동하라고 한다. 한쪽에서는 산송장 취급을 하는데 한쪽에서는 청춘이란다. 이 상반되는 입장은 아이러니하게도 공통된 뿌리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노인을 잉여의 존재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는 그 자체에 대한 환멸이 담겨 있고 후자는 그에 대한 대책을 촉구하려는 노력이 있다. 여기서 잉여의 노인에 대한 반응을 무엇이 옳다 그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왜 노인의 잉여를 환멸이나 대책의 대상, 즉 부정적으로 바라보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결국 그 이유는 돈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현재 우리에게 있어 노인들은 말 그대로 세금충이다. 단어가 자극적이고 굉장히 부정적인 면만 강조되어 있어 별로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근본적인 의미가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를 비롯한 여러 사회복지기관들이 노인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노인의 잉여스러운 생활 자체가 그들의 선택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일 수 있다는 점에서 터치하고 싶지 않지만 고령화 시대임을 감안했을 때 노인들 삶의 지루함, 따분함 또는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러 사업이 진행되고 발전되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판단된다. 문제는 그러한 활동들을 통해 노인을 자꾸 청춘이라는 프레임 안에 억지로 넣으려 하는 느낌이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측면에서 노인복지와 실버사업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런 것들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에게 제공할 콘텐츠가 없거나 한정되어 있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청춘이라는 키워드를 끊임없이 표면에 내세우면서 마치 무언가를 배우고 돈을 벌지 않으면 뒤떨어지는 것처럼, 사회를 축내는 세금충이 되어버리는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또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잉여를 탈피하고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생활을 즐기는 노인이 있다면 응당 이제는 집에서 쉬고 말 그대로 여유로운 잉여를 즐기고 싶은 노인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 허나 지금 주류는 고령화 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65세부터가 인생의 시작이다, 청춘이다라는 식의 주입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나는 청춘이라는 프레임 안에 노인을 끊임없이 넣으려는 사회적 현상에 대해 나름대로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생각해보려 한다. 표면상으로는 노인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모순을 찾아내 보는 것이 목표이다. 동시에 이러한 모습을 통해 청춘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있어서의 불편한 지점도 함께 짚어볼 예정이다. 부족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어떠한 현상이나 문화에서 무의식적으로 수용되는 메시지를 곱씹어볼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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