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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nurfavoritesong Aug 05. 2019

비주얼 가이드에 대한 고찰

가우디 건축물 <카사바트요>의 비주얼 가이드를 중심으로

 미술관이나 박물관, 유적지와 같은 곳은 우리가 지식과 경험을 소비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소비자들은 특정한 작품이나 유물, 유적의 정보를 습득하며 인지적, 감각적 고양을 추구한다. 하지만 방대한 양의 정보를 스스로 알아내기란 쉽지 않은데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이드가 형성되었다. 설명자나 관련 작품 옆 코멘트, 팸플릿과 같은 원초적인 방식의 가이드부터 가장 많이 쓰이는 오디오 가이드까지 미술관이나 박물관, 유적지마다 꽤 많은 형식의 가이드들이 존재한다.

 그중 가장 최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이드는 단연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가우디 건축물 <카사바트요>의 비디오 가이드일 것이다. 디지털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를 통한 디지털 사이니지인데 증강현실을 기반으로 가우디의 건축물을 설명하고 있다. 2015년 스페인 여행을 할 때 관광객이라면 으레 그렇듯, 유명한 유적지는 당연히 봐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카사바트요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독창적인 가우디의 건축만큼 흥미로운 것은 백발의 노인부터 어린아이들까지 가이드 디바이스를 허공에 대고 집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핸드폰 크기의 가이드 기기는 해당 번호를 입력하고 특정한 공간을 내장 카메라로 비추면 증강현실을 통해 그 공간의 과거 모습과 의미, 상징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동시에 카사바트요의 신비로운 느낌을 배가 시키는 배경음악을 제공하면서 공간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응접실을 비추면 클래식에 맞춰 화면에 과거 응접실을 재현해 만들어내고 거북이 등껍질을 모티브로 한 조명을 비추면 효과음과 함께 조명에서 튀어나온 거북이가 실내를 헤엄치는 식이다. 텍스트는 아예 없고 멘트는 많지 않다. 정보전달의 80%가 시각적 형태로 이루어진다. 스마트 기기에 익숙한 현대인들을 겨냥한 것이다.

 사실 스마트 시대가 도래하면서 스마트 가이드, 디지털 가이드 등 다양한 이름으로 기존의 가이드 방식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시도되어왔지만 카사바트요처럼 적극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여전히 오디오 가이드의 방식에 머물면서 일차원적인 사진이나 텍스트를 화면에 보여주는 형태였다. 카사바트요의 비디오 가이드는 기존의 지점에서 또다시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이는 기술의 발달을 토대로 생겨난 것이지만 단시 기술적인 발전에 의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더 이상 특정 작품이나 유물 유적을 관조적인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고하게 팔짱을 끼고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작품을 관람하는 방식을 고리타분하거나 지루하다고 느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지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우리는 감각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 수백, 수천 번 스마트폰과 태블릿 PC를 터치하고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텍스트와 이미지, 영상을 마주한다. 출퇴근을 하거나 등하교를 하는 길엔 LED나 LCD, CRT를 이용한 광고가 즐비해 있고 장을 보거나 쇼핑을 하러 나간 대형마트나 쇼핑몰에는 지도 대신 터치가 가능한 키오스크가 위치하고 있다. 수많은 디바이스로 제공되는 촉각, 시각, 청각의 자극을 통해 우리의 오감은 지루할 틈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접근성이 쉬운 디바이스 속 다양한 콘텐츠들은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특히 언제 어디서나 무궁한 용도로 쓰일 수 있는 스마트 기기의 정보제공은 다양한 콘텐츠로 다방면의 지식, 문화 접근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러한 일상생활 속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에게 미술관이나 박물관, 유적지의 기존 가이드 제공은 다소 따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어 한다. 똑같은 정보의 가이드를 받더라도 익숙한 방식이되 새롭게 제공받기를 윈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이러한 욕구에 발맞추어 여러 미술관, 박물관 유적지들은 스마트 세대에게 다양한 방식의 가이드를 제공하고 있다. 이미 많은 곳에서 몇 년 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송암미술관처럼 인포메이션 창구를 없애고 키오스크나 DID를 사용하고 있으며 서울역사박물관이나 안동 콘텐츠박물관처럼 전시물 바로 앞에 키오스크를 설치하여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다양한 색채, 소리, 움직임 등을 수반한 디지털 사이니지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나 콘텐츠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역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인 메시지를 자극한다. 이러한 노력은 현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여 해당 미술관이나 박물관, 유적지의 새로운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도 한다. 그러한 연유로 국내외에서 신기술을 접목시킨 가이드를 계속해서 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러한 방식의 가이드는 트렌트를 넘어 필수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일상생활에서의 스마트 생활과 같이 과도한 디지털 사이니지의 노출은 불쾌한 감정을 경험하거나 부정적 인식을 형성하기도 한다. 역기능적인 특성의 대표적인 개념이 '짜증'이다. 짜증의 경우 해당 디바이스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나 서비스의 구조 등이 지나치게 성가시고 혼란스러움 등의 부정적 반응을 유발할 때 생길 수 있다. 제공되는 정보가 혼란스럽거나 원하지 않는 내용일 경우 짜증을 경험할 것이다. 특히 소비자의 지적 능력을 넘어서는 경우나 과도한 정보처리 능력을 필요로 할 경우에 그러하다.

 또한 숭고의 측면에서 새로운 가이드 방식은 지명적인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의 욕구와 편의를 위해 고안해냈지만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원본의 가치를 하락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4년 전 카사바트요를 관람할 때에도 자극적인 화면과 소리에 매료되어 정작 건축물의 세심한 부분들을 놓친 것 같아 아쉬운 지점이 있었다. 관람을 끝내고 나와서 뒤돌아보았을 때 생각나는 것은 건축물의 원본보다는 이미지나 영상, 배경음악이었다. 가우디의 건축물 속에서 가이드 기기를 허공에 대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모습이 어쩐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휘황찬란한 플랫폼으로 꽉 차 있는 디바이스를 손에 쥐고 원본의 아름다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최근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유적지들은 일방적인 가이드뿐만 아니라 상호작용을 지향하는 인터렉티브 미디어 콘텐츠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소비자들의 오감을 이용한 체험도 중요하지만 이 때문에 원분의 아우라를 훼손한다면 이는 제고되어야 한다. 고요하고 지적인 미술관, 박물관, 유적지의 분위기가 현대 스마트 시대에 동떨어지고 지나치게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르겠으나 유비쿼터스를 쫓다 원본의 본질을 무시하게 된다면 이것은 오히려 모순일 것이다. 기존의 미술관이나 박물관, 유적지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많은 이들을 수용하며 폭넓은 체험과 경험의 장소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도취되어 단순한 오락의 공간으로 전락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앞서는 바이다.

 결국 변화하는 가이드의 세계는 대중적인 소비자를 중점으로 할 것인가 원본을 중점으로 할 것인가라는 상반된 기준에서 갈등을 겪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디지털 사이니지니 디지털 인포메이션이니 콘텐츠 비즈니스니 경험 비즈니스니 하며 기술과 정보의 경험을 중시하고 확대시키는 분위기 속에서 그 적정선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이제 막 스마트 정보화 기술이 점진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추세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조금이나마 희망적인 것은 이러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현재가 정보와 스마트 기술 결합의 과도기라는 점이다. 스마트 시대가 열린지는 20년이 채 되지도 않았다. 스마트 기기가 필수품이 된 지 이제 막 10년 남짓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우리는 분명 발전의 질주 속에서 뒤를 돌아보며 재정비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한낱 학부 수료생의 글에서 이러한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내외 미술관, 박물관, 유적지는 혁신과 발전이라는 환상에 치우치지 말고 스스로 자신들의 토대가 인문학과 예술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소비자들에게도 그러한 지점을 강조하고 인지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이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정보가 아니다. 정신적 영감으로부터 창조된 무언가 일 수도 있고 역사로부터 내려오는 무언가 일 수도 있다. 즉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체험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깊은 사유와 고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쾌락적 감각 때문에 그것들이 무시된다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다.

 결국 문제의 답은 기술의 발전은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단은 수단일 뿐 본질을 덮어버리면 안 된다. 그것을 제공자와 소비자 모두가 깨닫는다면 복잡한 갈등은 해소되고 적정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발전에는 시행착오가 있기 마련이니. 문제 인식과 해결의 과정에서 우리는 더 나은 또 다른 발전을 이룰 것이다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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