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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nurfavoritesong Aug 05. 2019

아직은 어머니의 품입니다

제 이름은 불가사리입니다 오늘도 신도시의 공사판을 산책합니다 제 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건물이 지어지고 남은 철근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몸집이 커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제 어머니의 몸집이 커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도망갑니다 어쩌면 저의 어머니를 보고 도망가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추운 겨울을 나는 일보다 힘든 것은 공사장의 부자재를 들키지 않고 먹는 일 누군가 저를 알아보면 안 됩니다 저는 신원불명의 사람이니까요 아니 불가사리입니다


저는 죽지 않습니다 다만 배고플 뿐입니다 저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은 아직 없습니다 저는 밥풀떼기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의 손끝에서 비벼졌지요


호각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들이 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도망갈 시간입니다 맨홀 뚜껑을 엽니다


퀴퀴한 냄새가 올라옵니다 그렇지만 맨홀은 생각보다 불쾌한 곳이 아닙니다 몸을 욱여넣습니다 점점 더 깊숙이 아래로 맨홀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어제보다 어렵고 그제보다 더 어렵습니다


울지 마세요 어머니 이곳에서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배가 됩니다 어머니의 흐느낌이 점점 가라앉고 있습니다 서서히 보이지 않는 땅을 찾아서


그들은 저를 불가사의한 존재라고 부르지만 저는 불가사리입니다 저는 바다에 살지 않습니다 지하에 살지도 않지요 하지만 땅에서 살고 싶습니다 먹을 것을 주세요 배가 고픕니다 맨홀 뚜껑은 여전히 굳게 닫혀있고


아침이 밝아오면 밥풀떼기들은 사라집니다 빛을 잃습니다 진동소리에 눈을 뜨면 내 앞에는 빠루를 든 순백의 왕자님이 그리고 어머니의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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