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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 Lee Jun 23. 2016

디자인 읽기

디자인 읽기



디자인 그거 포토샵 하는 거 아니야?  


이것은 오래전 얘기 같고 요즘은 뭐라고 할까?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디자인을 딱 이거라고 얘기하기도 힘들다. ‘제가 디자이너라 당신들보다 눈썰미가 좋아요. 표현도 잘해요.’ 이런 말이 통할 리 없고, 취향에 대한 논박과 트렌드 타령도 별로 도움이 되질 않는다.


디자인에 대한 생각의 깊이와 방향은 디자이너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하물며 디자인과 관련이 적은 사람들에게 왜 여기에 테두리가 있어야 하는지 왜 행간이 더 넓어야 하는지 이해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자꾸 그런 얘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이 글은 대강 그 정도의 내용이다.


나는 주로 UI 디자인과 코딩을 한다. 어설픈 기획도 했다가 PM도 하고, 개발자들에게 우리 모두 그로스 해커가 되어야 한다며 선동질도 한다. 잘 아는 사람이 보면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보이는? 디자이너고,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신은 직업이 무엇입니까? 라고 물어볼 것이다.


UI 디자인에 대한 고급 정보는 구글 신이 알고 있다. 구글에 검색해 보라는 말이다. 요즘은 마케터도 코딩을 해야 하는 시대이니 코딩에 대한 주옥같은 글도 많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구글 신은 공짜 아닌가? 적극 활용을 하자. (사실 나도 찾아서 링크 거는 게 귀찮긴 하다.)



잘 읽히도록 조율하는 과정


나는 이것이 내가 하는 디자인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상업 디자인의 목적은 고객과 기업이 긴밀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다리가 되어주는 것에 있다. 기업은 고객이 필요한 것을 적절한 순간에 제공해야 하고, 고객은 기업이 제공하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인지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럼 잘 읽힌다는 것은 무엇인가? 유시민 작가님의 글쓰기 강의 내용을 빌리자면 이렇다.

“생각 말 글이 있죠.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에요. 좋은 글은 읽는 사람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에요. 자극적인 단어나 표현이 많으면 어떤가요? “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보기 편해야 한다. 그래야 읽힌다. 물론 좋은 생각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러나 읽히지 않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쉽게 접하는 것일수록 더 그렇다. 쉽게 소비하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디자인의 출발은 보기 편안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기업의 좋은 생각을 잘 읽히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여기 빨갛게 해주시면 안 돼요?


그런데 디자인을 하다 보면 읽히는 것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읽히게 하려고 애쓴다. 당신이 디자이너든 디자이너에게 요구하는 사람이든 ‘난 아닌데?’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구글 디자이너도 불타는 버튼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그 정도로 이런 일이 많다는 얘기다.


이런 요구의 목적은 대부분 읽힘보다 발견됨에 더 가깝다. 다른 것보다 먼저 발견되고 싶은 욕구는 디자이너가 더 자극적인 방법을 선택하게 한다. 왜 발견되고 싶은 욕구가 앞서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그 이유는 잘 읽히는 것과 보기 편한 것에 대한 무관심에 있다.



텍스트와 콘텍스트


글을 포함해 모든 시지각 콘텐츠는 읽은 다음 해석이 필요한데 이것들을 텍스트라 부른다. 그림도 사진도 조각조각 나누어진 정보들도 모두 텍스트에 속한다. 그런데 이 텍스트가 잘 읽히고 해석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황, 상황, 흐름, 감정 등의 배경을 담당하는 콘텍스트가 필요하다.

1974 Pulitzer Prize, Feature Photography, Slava Veder, Associated Press

잘 읽히고 해석이 쉬운 사진은 콘텍스트가 잘 표현된 사진이다. 문자 없이도 잘 읽히는 사진은 글보다 더 좋은 텍스트가 되기도 한다. 그런 사진은 좋은 콘텍스트를 담고 있고, 백 마디 말이나 글보다 더 다양한 정보를 전달한다. 예를 들면 감성, 정서 등이 이에 해당한다.


디자인은 정보라는 다양한 텍스트를 담은 그릇이다. 결국, 잘 읽히기 위해서는 콘텍스트가 읽혀야 한다. 그런데 한 화면에 정보도 많고 질서도 없다면 콘텍스트가 읽힐 수 있을까? 정보의 맥락이 뒤죽박죽이고 약한 관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두 강조되어 있다면 어떨까? 당연히 사용자는 혼란에 빠진다.


이 때문에 디자이너는 읽히는 콘텍스트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정보들에 우선순위, 질서, 동작 등을 부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들을 가리켜 UI라고 부른다. 그러니 UI는 특정 버튼 하나만의 콘텍스트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디자인은 UI의 ‘부분’을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조율’하는 일이다.



통일은 크게 변화는 작게


이제 보기 편한 것에 관해 이야기할 차례다. 앞에서 말한 우선순위, 질서, 동작 등을 조율하는데 기준이 되는 기본 원리는 ‘통일은 크게 변화는 작게'다. 통일은 질서를 의미하고 변화는 다양성을 의미한다. 좀 어려운가? 그렇다면 이 작업을 연극무대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해보자.

pz-c-us.blogspot.com

디자이너는 우선 레이아웃 이란 것으로 무대를 만든다. 공연할 장소와 관객이 정해지면 관객석과 무대를 어떻게 만들지 정한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따라 무대의 크기와 배우들의 등장 순서 동선 등을 계획한다. 그리고 일부 몸이 불편한 고객을 위한 무대를 만들기도 한다.


그다음에는 본격적으로 무대를 꾸민다. 무대에 어울리는 배경과 소품을 만들어 조화롭게 균형을 맞춘다. 관객석과 배경은 배우가 등장하는 무대가 잘 보이도록 어둡게 만든다. 각 장면의 무대 조명과 분위기를 조율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통일시킨다.


이제는 변화를 줄 차례다. 이것은 배우 중 주인공과 조연들을 정하고 돋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작은 이야기에도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다. 주인공은 주인공답게 강조하고 조연과 대비시킨다. 관객은 멀리서도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조연인지 잘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려고 애쓰는 연극을 기대하는 관객은 없다. 기업의 좋은 생각을 잘 읽히는 텍스트로 만들려면 콘텍스트가 잘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과 변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무대와 배우들이 필요하다. 디자인은 이런 과정들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디자이너가 하는 일은 더 더 있다. 흔히 얘기하는 ‘멋있게 예쁘게 막 그냥 막’ 이런 거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본질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정리해 보았다. 너무 긴 것은 나쁘지만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이 글이 내가 하는 디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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