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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 Oct 10. 2019

포르쉐 타이칸 IAA 시팅벅 작업기

UX Seating buck 제작 그리고 모터쇼에 관한 이야기

2019년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개최된 IAA 모터쇼에 포르쉐 타이칸이 공개됐다. 공개됐다고 바로 대리점가서 살 수 있는 물건도 아니지만, 지금 예약해도 2년 후에나 받을 수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다. 한국 인증은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도 모른다는데, 우리는 과연 언제쯤 강변북로에서 타이칸 볼 수 있게 될 것인가. 


아무튼 이런 그림의 떡을 그래도 먼길 달려 모터쇼까지 왔는데, 정말 외관만 물끄러미 훑다가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럼 뭐라도 공들여 찍어볼까 싶다가도, 내일이면 유투브에 아주 상세하게들 올라올텐데 굳이... 라는 생각도 든다. 환경문제, 예산 문제로 기념품도 잘 안 준다. 프레스데이에는 부스마다 공짜 커피도 나눠주더니, 그마저도 프레스데이가 끝나자마자 싹다들 치워버렸다. 대체 무슨 재미로 모터쇼에 오는데! 


바로 이런 분들을 위해, 우리는 내부 인테리어를 좀더 쉽게 경험하실 수 있도록 따로 인테리어 모델만을 끄집어내 전시장 내에 설치해두었다. 이걸 보통 Seating buck(시팅벅)이라고 부르는데, 인테리어 디자인을 보려는 목적으로 만드는 것도 있고, 우리처럼 UX 전시용으로 만들어서 쓰는 경우도 있다. 

2019년 IAA에 공개된 타이칸 시팅벅


모터쇼에서 시팅벅(Seating buck)은 이제 트렌드!

사실 이런 시팅벅을 내놓은 브랜드가 포르쉐만은 아니고, 우리가 처음도 아니다. Mercedes 는 이미 몇해 전부터 MBUX를 밀면서 이런 시팅벅을 계속 찍어내고 있었고 올해는 확인한 것만도 여섯대. 이미 어느정도 표준화를 거쳤는지,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았다. 

IAA 에서 선보이는 다양한 UX시팅벅들

그 외에도 중국 브랜드들이 이런 시팅벅들을 가져온 케이스들이 있었고, 아우디도 종종 이런 시팅벅을 가져오는데, 올해는 자그마한 인터페이스 모듈만 따로 전시하고 있었다. 


솔직히 모터쇼에 서 있는 차들 밖에서 한바퀴 휙 둘러보고, 안에 들어갈 짬이라도 나면 그냥 가죽냄새좀 맡다가 나오는게 전부 아니던가. 밟는다고 나가는 차도 아니고, 괜시리 트렁크도 한번 열어보고 뒷좌석도 한번 타보고 하면 더 해볼 것도 없다. 


하지만 요즘 차가 그냥 달리기하는 기계가 아니니 만큼, 사람들은 차 내부에서 재미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다들 대형 터치 스크린이 차 안에 들어오는 추세. 그것만 만져보고 있어도 솔찮이 시간이 잘 간다. 그렇다고 마냥 차 안에 눌러앉아 있다가는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따갑고, 차를 만드는 우리 입장에서도 사람들이 좀 더 차의 매력을 알았으면 하는게 바람인데,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그저 아쉬운 것이다. 시팅벅은 이런 제약들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대안이 된다.  


또 시팅벅은 모터쇼 외에도 딜러 교육이나 대리점 설치용으로도 쓸 수 있다. 우선은 당장 눈앞에 놓인 IAA를 타겟으로 전시에 나가자는 것이 첫번째 과제였고, 이제 여기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리는 게 우리의 소박한 목표인 것이다. 


왜 양산용 소프트웨어를 그대로 쓰지 않는가?

타이칸 양산에 들어가는 스크린 모듈

하드웨어는 양산용 부품을 그대로 썼다. 들어간 스크린이며, 핸들이며, 기어 조작 스위치 등등은 모두 양산에 들어가는 부품 그대로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얘기가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면, 시팅벅에 들어간 소프트웨어는 일종의 레플리카다.

왜 이런 두 벌 일을 하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양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란 그 양과 깊이가 실로 어마어마해서 그걸 그대로 가져다 쓰기가 곤란하다. 우리도 관련 부서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해보지 않은 것 아니나, 오히려 그쪽에서도 

"그냥 새로 짜는게 더 빠를거야" 라는 충고를....

실차가 내보내는 신호들(CANBUS)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양산형 소프트웨어는, 제대로 된 차가 없이는 뭔가 변경을 하기도 어렵고, 또 안전성, 보안 등의 이유로 구조 역시 복잡해서 우리가 원하는 사용씬을 보여주기가 어려웠다. 

일례로, 실차 없이는 배터리 정보를 줄 수가 없으니, 양산 소프트웨어는 시작하자마자 배터리가 없다며 온갖 경고가 화면을 뒤덮는다. 기존 소프트웨어를 우리가 다 받는다 해도, 구조를 파악해서 이런 예외들을 모두 피해가는게 첨부터 새로 만드는 것보다 품이 더 드는 일이다. 


웹을 기본 플랫폼으로 두고 만들었고, ReactJS + Typescript 을 사용했다(양산은 웹만 아니라 여러가지 플랫폼의 짬뽕. 일부 스크린은 Angular 기반이다). 통신을 위해서 MQTT를 썼고, 이때문에 각종 부품들에서 뿜어져나오는 CAN신호를 MQTT로 바꿔주는 컨버터 작업이 별도로 필요했다. 개발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다음 기회에....


OS

웹 기반으로 만든거라, 딱히 운영시스템을 가리지는 않는다. 웹이 가진 아주 훌륭한 장점 중의 하나.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리눅스 아니면 윈도우였는데, 윈도우는 갑자기 훅 들어오는 업데이트가 가장 눈에 들어오는 단점 중의 하나다. 내부적으로도 이런 시팅벅들을 여럿 운용하고 있는데, 가끔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다 해놨다가, 리부팅 한번에 업데이트의 덫에 걸려 몇 십분을 허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방심하면 훅 들어오는 업데이트

사실 업데이트는 어떻게든 막아볼 수 있었는데, 더 큰 문제는 터치 스크린이었다. 타이칸의 경우 직접 터치로 조작하는 화면이 3개(중앙, 조수석, 콘솔)인데 윈도우에서는 동시에 두 개 이상의 화면을 조작하는게 불가능하다. 잘 이해가 안 되면, 두 모니터에 구글맵을 띄워놓고 동시에 제스처를 해보시기를. 둘 중에 한 쪽만 작동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우분투는 하나의 PC에서 동시에 여러 계정으로 로긴이 가능하다. 즉, 모니터 A는 홍길동의 계정으로 들어가고, 모니터 B는 김수한무의 계정으로 들어가는 식이다. 같이 부팅은 했는데, 여러 계정으로 동시에 여러 화면에서 각자의 포인터를 갖게 되는 것. 리눅스 너 참 용하구나. 


Car PC

자동차 전용 PC라는걸 만드는 데가 있다. 나도 자세한 스펙은 들여다보지 않았지만, SIM카드도 직접 들어갈 수 있고, 발열 관리도 잘 되고, 내구성도 차량에 맞춰 나온 그런 PC다(그러나 우리는 혹시 몰라 열이 잘 배출되라고 팬을 하나 따로 붙여놓긴 했다). 가장 유용한 기능은 전원관리인데, 전원이 끊겨도 알아서 종료 시퀀스를 밟아 안전하게 종료하는 기능이 있다. 전시장 같은데서 강제로 셧다운을 해야하는 경우가 생겨도 시스템에 큰 무리 없이 종료가 되는 점이 아주 맘에 든다. 이전 모터쇼에서는 일반 PC를 사용했기 때문에, 전원차단을 감지해서 종료시퀀스를 돌리는 별도의 장치와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하루 10시간 쇼쇼쇼.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개발하는 동안에는 모터쇼에 놓일 상황을 100% 시뮬레이션 해볼 수 없었다. 물론, 아주 예상 못할 일들은 아니어서 이를테면 음성입력씬은 제외했고 (어차피 시끄러워서 제대로 될 리 없다!), 사람이 많으면 네트웍 문제가 있을 수 있으니 인터넷을 사용해야하는 상황(지도 데이터 불러오기)도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외에도 어느 공간에 놓이게 될지, 누가 옆에 앉아서 계속 시팅벅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을지 없을지 (그게 혹 내가 될지 어쩔지도) 등등이 한참 뒤에나 결정되었기 때문에, 막판에 허겁지겁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느라 동분서주했다. 


리모콘

시팅벅이 100% 완벽하게 아무탈 없이 돌아가면 좋겠지만, 종종 문제가 생겨서 화면이 꺼지거나 시스템이 먹통이 되면 어떻게든 재빨리 복구를 해야한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재부팅이나, 강제 스크린 업데이트 등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자고 '잠시만 자리좀...' 이러면서 갑자기 어디서 키보드랑 마우스를 들고 나타나, 시팅벅 뒷구석에 가부좌를 틀고앉아 작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를 대비해서 몇 가지 주요 명령들을 모아놓은 리모콘을 디자인했다(간단히 MQTT명령들을 보내는). 하지만 이것도 우리가 전시 상황을 온전히 예측하지 못한 에러였다. 


막상 닥쳐보니 에이전시에서 파견나온 호스트가 그걸 손에 들고 계속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모바일폰을 하나 주고 거기서 접속할 수 있을만한 웹페이지를 하나 만든 건데, 사전에 에이전시와 조율된 것도 아니고, 모바일 기기는 어떻게 지급할 것이며, 그럼 와이파이는 뭘 접속해야하고, 그 보안은 누가 책임지며 등등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급하게 이미 시팅벅에 달려있는 몇가지 버튼을 비밀스럽게(?) 눌러서 명령이 실행되도록 프로그램을 짜넣었고, 호스트에게는 그 버튼 시퀀스를 교육시키는 것으로 몇 가지 주요한 명령어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결국 멀리서 무선으로 리모트 컨트롤을 하겠다는 건 현장 상황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한 발상이었다. 

아침조회(?)를 하는 쇼호스트들(좌) 시팅벅에 앉아 친절한 설명을 하고 있는 쇼호스트(우)


데모모드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옛날 LG TV들은 메뉴 안쪽에 보면 '매장모드' 라는게 있어서, 대리점 매장에서 아무것 없어도 그것만 틀어놓으면 자기 스스로가 제품을 설명하는 멋진 데모가 들어있었다. 기본적으로 같은 아이디어다.  

쇼에서는 적극적으로 앉아서 이것저것 눌러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멀찌감치 팔짱끼고 빙글빙글 돌면서 구경하는 사람도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그런 한적한 상황을 고려하고 저 혼자 이 화면 저 화면 보여주는 일종의 데모를 돌리자는 것이 아이디어였다. 

그럼 이건 언제 어떻게 돌아가게 해야할까? 우리는 사람들이 버튼이나 터치스크린 조작을 멈추는 시점으로부터 대략 1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그 사이에 아무런 입력이 없으면 데모모드로 들어가는 로직을 만들었다. 해서, 좀 한가한 시점에도 멀찌감치 봤을때 그저 정지된 화면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새로운 화면으로 바뀌고 혹여 누구라도 시팅벅에 올라 뭐라도 만지기 시작하면, 데모모드는 자동으로 끝나게 설계됐다. 

하지만 타이칸 시팅벅에 1분이나 사람이 없는 일이 정말 드물어서, 이 아까운 데모모드는 과연 몇 번이나 돌았는지는 나도 의문이다. 


리부팅

아주 가끔은 리부팅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이 역시도, 전시장에 직접 가서야 문제점을 깨달았는데 부팅스크린이 몇 십초동안 여기저기서 드러나는게 영 보기가 안 좋았다. 마치 지하철 안내 화면에 블루스크린 뜬 것마냥 볼썽 사나운.... 그래서, 리부팅되는 시간 동안에는 모니터도 같이 꺼서 이런 지저분한 화면들을 가릴 수 있도록 해야했다. 


하루 몇 백명이 만지고 가는 물건을 만든다는 것

사실 가장 도전적인 부분은, 우리가 만든 이 시팅벅이 모터쇼라는 아주 험난한 환경에 놓인다는 것이다. 호스트가 계속 상주하면서, 한 사람씩만 앉혀보는 것도 아니고, 이 사람 저 사람 하루에 수 백여명이 와서 앉아보고 만져보고 눌러보고 하는 시팅벅이 하루 10시간씩 2주간의 전시를 온전히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부품이야 양산용을 쓰니까 그 정도의 내구성은 당연히 갖춰야 하겠다만(그런 부품을 훔쳐가는 사람들도 있다!), 소프트웨어도 그만큼을 버텨줄 수 있을지는 사실 전시 당일이 되기까지도 우리 모두 손가락을 꼬며 핑거크로오우쓰! 를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메르켈 총리가 들이닥치자 이성을 잃고 시팅벅에 올라서는 독일인들


아주 순탄하기만 했으면 좋았겠지만, 하드웨어도 소프트웨어도 종종 말썽을 일으켰다. 전시 둘째날, 모니터 퓨즈가 나가는 바람에 화면이 안 들어와서 급하게 슈투트에서 테크니션이 달려와 고치기도 했고, 메모리 누수 현상도 없잖아서 대 여섯 시간이 지나면 터치가 안 먹거나 전체적인 시스템이 버벅이는 현상도 있었다. 이런 미진한 부분은 다음 버전에서 분명히 개선될 것이다. 


어찌보면 이 모터쇼가 우리로서는 거대한 테스트였다. 여기서 얻은 레슨들을 가지고, 또 업데이트를 거쳐 다음 전시로, 또 다른 모델로 차근차근 업그레이드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포르쉐의 UX를 편안하게 경험해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차 가격은 편안하기가 어렵다는 거. 저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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