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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ne Aug 28. 2018

취미를 가진다는 것에 대하여

 나는 사실 아직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기를 낳아 키우는- 아기엄마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힘겹다. 내가 결정한 것에 대해 그 다음 순서의 것들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매 순간 허겁지겁, 꾸역꾸역 꾸려나가게 되는 것이다. 아기를 사랑하고 양육하는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이 가끔은 너무 외롭고, 이렇게 외로워하는 내 자신이 또한 비난받아 마땅한 그 무엇이 되는 것 같아 무서워진다. 아마도 나와 다른 삶도 대부분 어떤 방식으로든 외롭고 무서운 순간들이 올 것이다. 결국 이렇게 감내해야 하는 삶을 매 순간 끊어내고 싶어서- 사람의 인생을 조각내어 매 순간 정의 내리고 판단하고 평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난 지금 잘하고 있어, 난 지금 행복해, 적어도 이런 면에서 남들보다 더 나은 삶이야... 

 인생은, 가끔은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있다. 나는 의식적으로 내가 선택한 삶이 내가 선택하지 않았거나 혹은 못했던 삶의 갈래보다 더 낫다거나 못하다고 평가내리지 않고, 그저 그런 삶을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으로 인정하려고 애쓰고 있다. 인생은, 단정짓고 평가하기에는 너무 길고 너무 많은 것이 있고 너무 복잡하고 너무 지저분한 것이라서, 순간의 우위를 따져 스스로를 위로해봤자 그 다음에 따라오는 자기비하를 벗어나기 어렵다. 우리는 순간의 즐거움만을 기억 속에 남기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내가 감내해야 하는 삶과 별개로 순수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가상의 서사 혹은 순간들-음악이나 영상이라던가-는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은 사실 대단히 지지부진해서, 삶 속에서 발견하는 즐거움은 아주 찰나의 것이기 때문에, 이 찰나의 즐거움이 영원히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내가 사랑하는 쓸모없는 아름다움은 계속해서 무용하기 짝이 없고, 그래서 내 인생의 거짓 즐거움이 되고, 그래서 더 아름다워지기에, 그래서 사랑한다. 추적추적 젖어 검은 물이 드는 추저분한 삶이 묻어나지 않는 가짜이기에 더 아름답다.  


내 인생에서 맞서 싸우고 투쟁하고 그 와중에 조금이라도 승리하는 현실이 소중한만큼, 아무짝에도 쓸데없이 아름다운 조각들 또한 내 삶을 버티게 한다. 취미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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