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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ne Mar 18. 2019

2019년 핀테크의 최전방은 “결제 불가”

Money 20/20 Asia 2019 불참에 부쳐

머니 20/20 이라는 핀테크 컨퍼런스 행사가 있다. 글로벌리 가장 큰 금융 관련 이벤트이며, 각 지역별로 행사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이번에 내가 참관하려고 했던 행사는 머니 20/20 아시아로, 싱가포르에서 3월 중에 열린다. 중국을 제외한 (동남아 확장을 시도하는 중국 업체들도 물론 참석한다) 아시아 지역의 어지간한 이름 있는 금융 관련 업체들이 참석하며, 다채로운 세션을 마련하여 각 회사의 이름을 알린다. 


근데…결제가 안 된다…


1. 사건의 시작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은 스폰서 회사들과 직접적인 유관 부서가 아니기에, 나는 별도로 조직예산을 헐어 티켓을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정가가 무려 3350달러나 한다! 싱달러도 아니다! USD이다!) 참관비가 생각보다 비쌌지만 "World's leading innovators in one place"라고 하는데 큰 맘 먹고 신청했다. 

Wow...So 거창... 출처: money/2020 asia homepage



관련 결재와 비행기 티켓과 호텔 예약까지 착착 잘 진행되나 싶었는데, 이런! 정작 티켓 결제가 안 된다. 


암호화폐마저 이미 한 번 지나갔다는 2019년 핀테크 행사에서.... 출처: money/2020 asia homepage


처음에 카드 결제가 안 되었을 때는 설마 이게 이렇게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일단 카드를 종류별로(아멕스, 마스터, 비자) 결제를 해보고, Issuing 국가를 바꿔가며 시도를 해봤다. 그 다음에는 모바일과 웹, 운영체제와 기기를 바꿔가며 다시 시도했다. 당연히 로그인 계정 이메일도 회사 메일 지메일 외국직원메일 골고루 섞어서 해봤다. 하지만 카드 회사에서는 결제 요청 자체가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해외 결제 혹은 결제 단가에 의한 Fraud Detection 거절이 아니라는 뜻이다. 


회사 부서에 리포팅하던대로 열심히 경우의 수를 따졌다. 온라인 결제가 붙은 서비스 회사 다녀본 분들이라면 느끼실 이 진한 동지의식, QA 본능이여



2. 연락도 없고

처음에 이메일 답변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그래 뭐, 본사가 영국이라는데 시차가 있겠지, 했다. 전화를 안 받는 것에 대해서는 그래 뭐, 단일 회선이니까 담당자 연결에 시간이 걸리나 했다. 스폰서십과 스피커 위주의 행사니까 결제 조직이 헤비하지 않은갑다 했지. 그동안 열심히 구글링 해봤지만, 스피커로 참여한다거나 회사에서 부스 참석한다는 사람들만 나올 뿐이지 티켓을 샀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이 세상에 티켓을 제 돈 주고 사는 사람은 있는 것인가..?


티켓 판매 잘 해보겠다고 “Convince your boss” 패키지도 만들어놓은걸 보면 팔고 싶긴 한 거 같은데.. 출처: money/2020 asia homepage


아무튼 며칠을 더 기다린 끝에 담당자에게서 메일 답장이 왔다. 미묘하게도, 내가 온라인 플랫폼에 영어로 #M2020 해쉬태그를 달고 “핀테크 행사라는데 결제가 안된다.”라는 글을 올린 바로 다음 날이었다. 


보고 계시나요?


3. 응답하라 1992

물론, 머니 20/20 담당자는 자기들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뭘 확인했는지, 에러코드는 뭐가 떴는지, 결제 승인이 결제 시스템에서 어디까지 가다 떨어진건지 아무것도 확인해주지 않았지만 아무튼 자기들은 아무~ 문제가 없단다. 그리하여 제시된 대안은 무려. 은행 계좌 송금. 


내가 지금 해외에 나와있는데.. 여기선 주거래은행이 아니니까…아니 온라인으로 송금을 하면..내 OTP가 어디에… 결재 올릴만한 영수증은.. 송금 비용은 누가 책임을 지고.. 여기는 은행이 몇시까지 문을 열지.. 영어는 알아듣나.. 내가 은행 갈 시간이..환율 차이가…증빙은..


21세기 핀테크 컨퍼런스 행사 참여를 위해 은행에 가야 한다니요.. 출처: merdeka.com




대략 정신이 혼미해져가는 와중에 두 번째 대안으로는 전화 카드 결제를 제안해왔다. 아 내가 90년대에 맥컬리 컬킨이 전화로 아빠 카드 결제를 하는걸 봤던거 같은데. 

네 전화받았습니다~ 출처: 나홀로 집에 2
카드 번호를 불러주세요~ 출처: 나홀로 집에 2
어릴 때 이 장면이 정말 신기했다. 뭘 믿고 결제를 해주는거지? 30년 뒤 내가 그러고 있다. 세상 참 안 변하네요. 출처: 나홀로 집에 2


4. 오지 말라는거니?

아무튼 그래서 전화 결제를 하기로 했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5시 정도가 영국 시간으로도 맞아서, 그 시간에 전화를 해서 결제하는 걸로 세틀 다운! 

하지만 전화는 오후 4시 15분에 딱 3번 울리고 끊겼다. 그리고 날라온 메일. 


당신의 시간 약속 개념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때부터 나는 미저리가 되었다. 

내가 전화를 못 받았는데, 우리 원래 오후 5시에 전화하기로 했잖아. 지금부터 오후 5시까지는 전화 받을 수 있게 자리 안 비우고 미팅도 안 갈테니까 이 메일 보자마자 전화 다시 해주겠니? 

메일 확인 좀 해줄래? 연락 좀 줘. 

15분 더 기다릴게. 

아직도 확인 안 됐니?


야 내가 헤어진 남친한테도 안 이랬던거 같다



5. 제가 한 번 쪽을 팔아보았습니다.

연락은 없었다. 돌아버린다. 결재 올려야하는데. 싱가포르에서 온갖 약속 다 잡아놨는데. 컨퍼런스 항공과 비행기는 다 셋업되었고 취소도 안 되는데 이게 무슨 사태란 말인가. 아니 그건 다 됐고 21세기 핀테크 행사인데 결제가 안 되어서 내가 못 간다고? 그리고 행사 주최는 내가 결제를 하건 말건 신경도 안 쓰고 있고? 


아 내가 정말 창피하게 내가 아는 업계인들에게 혹시 머니 20/20 담당자 아냐고 연락까지 돌렸다. 원래는 싱가포르에서 만나자고 돌린 연락이 어느 새 "결제가 안 돼요ㅠㅠ"로 바뀌는 이 쪽팔림. 

 그런데 대부분 회사 스폰서십으로 티켓이 생기거나, PR 차원에서 직원들을 보내는거라서, 해당 행사에 진지하게 관여하는 사람은 없었다. 


“싱가포르는 A가 가고요, 저는 XX행사 대신 갈거에요” (A 하고 안 친함)

“저는 휴가 고고씽” (잘 다녀오세요…)

“PR팀이 알아서 하는거 같던데…물어봐줘요?” (PR팀에 아는 사람 없음)

“아 저희는 XX 회사에서 티켓을 준거라.. 일단 물어볼게요” (대민폐)

“어머니가 아프셔서.. 제 세션은 B가 대신 발표하실거에요” (B가 누군지 모름)


처음에는 싱가포르에서 만나요~라고 하려고 말 걸었는데...


6.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VC 쪽 인맥으로 일단 머니 20/20 의 다른 업무 담당자 이메일을 받았고, 일단 그 쪽으로 메일을 보내보니 호들갑을 떨며 담당자 연결을 해주겠단다. 그리고 다시 같은 담당자가 전혀 새로운 사람과 얘기하는 것처럼 같은 얘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나는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쳤고.. 


“네 카드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 확인했는데 결제요청 자체가 안 들어갔다고 4번 메일을 써서 보냈다.
“아 나는 네가 이 메일 보낸 사람하고 아는 사이인 줄 몰랐어.”
< 메일 첫 문장에 “나는 A의 동료이며 너하고 이미 연락했었는데 제대로 결제 진행 안 됐대” 라고 써있었다.
“내가 전화했는데 안 받던데?”
< 내가 5시에 전화하라고 했는데 4시 15분에 전화했잖소. 이 얘기를 메일로 6번 정도 반복해서 보냈다..


7. 21세기 핀테크 행사는 다른 언어를 쓰나요?

아무튼 결론적으로. 3350 USD 짜리 행사에 내가 이렇게 구걸까지 해가면서 가야하는가, 하는 진한 현타가 와서 출장을 취소했다. 출장을 취소하면서 이런저런 복잡한 결재나 취소 수수료 처리를 하는 귀찮음도 귀찮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결제를 테마로 하는 행사에서 결제 문제로 이렇게까지 한다는게 21세기 핀테크의 현주소인 것 같아 씁쓸했다.


아, 그리고 머니 20/20 은 아직도 내 메일에 답하지 않았다. 


바쁜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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