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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ne Apr 17. 2019

유튜브 시대의 소비선언 #4

3. 지금 시대의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이전 편: 

#1:  서문 & 0. 모바일 네이티브와 꼰대 https://brunch.co.kr/@kimstone/127

#2:  1. 유튜브 세대에게 커뮤니케이션이란 https://brunch.co.kr/@kimstone/129

#3:  2.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https://brunch.co.kr/@kimstone/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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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포스트에서도 언급했지만, 기성세대들이 요즘 밀레니얼 및 포스트-밀레니얼들을 일컬을 때 ‘외로움’이란 단어를 많이 쓰는 것을 본다. 미디어에서 요즘의 어린 세대를 묘사하는 것을 볼 때, SNS에 화려한 겉모습을 자랑하지만 실속은 없고, 현실에서 혼밥, 혼술을 하고 자리에 앉아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는 외로운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실한 소통은 현실에서만 가능해요" 출처: 스포츠경향 박상미의 고민사전



이런 걸 보면, 기성세대는 정서교류라는 것이 온라인을 통해 이루어지면 진짜가 아니라고 믿는 것 같다. 핸드폰과 PC를 통해 오가는 교류는 진정성이 없으며, 오프라인에서 얼굴을 맞대지 않으면 공허한 관계라고 보는 것이다. 왜? 왜라고 하면 답이 없다. 순환논리이다.  

진짜는 오프라인에 있기 때문에, 온라인은 가짜이다.  
왜 온라인이 가짜인가? 오프라인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기성세대에게는 놀랍게도(!) 지금 세대에게 진짜가짜 구분은 처음부터 없었다. 지금 세대에게 각종 SNS 계정은 진짜이고 실제 존재하는 현상이다. SNS를 접고나서 현실로 돌아오는 On/Off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의 소통해요란 댓글을 구 세대는 얄팍하다 여기지만 신 세대는 정말 소통하는 의미일 수 있다. 왜냐하면 다른 곳에서 댓글을 대체하는 행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요즘의 밀레니얼 및 포스트-밀레니얼들은 댓글로도 소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핸드폰을 만진 아이들-디지털 네이티브-은 어쩌면 알림창이나 추천동영상 목록을 스크롤하는게 교류일 수 있다. 요즘 어린 아기들은 수조의 물고기를 보면 유리에 손가락을 대고 긋는다. 이 아기들이 커서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의사소통은 구 세대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일상 #소통 #팔로우 #daily 이게 정말로 소통입니까? 네. 출처: 인스타그램


고독한 박명수방 출처: 한국일보


오프라인의 행위를 온라인으로 옮겨오던 기존의 세대와 달리, 태어날 때부터 온라인과 모바일이 존재하고 옹알이를 할 때부터 스크린이 존재하는 세대의 커뮤니케이션은 원형이라는 것이 오프라인에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모바일 네이티브의 커뮤니케이션은 처음부터 모바일이었다. 그런 세대에게 오프라인 인간관계가 무조건 온라인 인간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진정성이 높을 수는 없다.


고독한채팅방이 인기를 끌고, 말없는 팬미팅을 하는 (유병재는 왜 고독한 팬미팅을 했을까?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7136183&memberNo=28980604) 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을 기성세대는 '혼자' 뭐든지 한다며 고독을 즐긴다고 우려를 보내기도 하고, 반대로 무작정 새롭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은 혼자 있지 않다. 위에 링크된 고독한 팬미팅 기사에서는 이런 문단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상의 공간에 집중하는 현상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선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팬미팅’도  800명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대부분 스마트폰에 집중하며 정작 옆자리 사람과는 소통하지 못했다. 같은 스타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소통 가능한 매개체가 될 수 있었지만, 이들은 온라인에 집중하느라 정작 옆자리 ‘동료’에게는 무심했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대체 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갑자기 '동료'가 된단 말인가? 내가 왜 옆자리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소통해야 하는가? 공간의 한계가 극도로 시험받는 초고속 통신망 시대에서는 근거리 공간을 함께 점유하는 것이 큰 의미를 지니지 못 한다. 지금은 동네에서 끼리끼리 놀고 누가 어디 사는지 뻔히 알던 시대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해 상대방을 스토킹하면, 상대가 모르는 사이에 비행기를 타고 그 앞에 나타날 수 있는 시대인데 어떻게 동시공간을 점유하는 것에 함부로 신뢰를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이 시대의 외로움은 공간이 정의해주지 못한다. 방 안에 혼자 있는 것 자체가 과거 세대의 외로움을 보여준다면, 방 안에 혼자 있어도 모바일 세대는 외로울 수도 있고, 안 외로울 수도 있다. 그들에게 외로움이란 다른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와이파이가 끊어지는 순간이 가장 외로운 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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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뒤에 #5: 4. 전국민 덕후시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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