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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ne Jun 22. 2018

이게 다 엄마 때문이야

미안해요. 또 엄마 타령입니다.

 왜 또 엄마 이야기라고요? 사실 최근 매일 글을 짧게라도 쓰는 연습을 하려고 글쓰기 그룹에 들어갔는데 오늘 주제가 하필이면 엄마라서요. 이게 다 엄마 때문입니다. 엄마, 엄마 때문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단면 하나하나의 뿌리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결국 엄마로부터 그 원인을 찾곤 하는 거 같습니다. 내가 공부를 못 하는 것도, 내가 공부를 잘 하는 것도, 내가 가진 이 버릇도, 내가 가진 이 취미도, 내가 이런 성격이 된 것은, 내가 이런 것을 결심한 것은, 내가 이런 음식을 좋아하는 건, 그러니까 엄마 때문이라고요. 


제 경우에 최근 엄마 때문에, 로 시작하는 생각은 직장생활이었습니다. 얼마 전 조금 다쳐서 병가를 냈는데, 저희 어머니가 이래도 회사 안 잘리냐고, 정말 집에서 쉬어도 되는거냐고, 회사에 폐 끼치지 말라고 절 볼 때마다 진지하게 걱정(잔소리)를 하셨거든요. 아니 엄마, 내가 누구 때문에 악착같이 회사를 다니는데! (지금도 뭐라고 하시네요. 왜 잠을 안 자고 노트북 두들기고 있냐고. 아니 엄마,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니까. 불 끄지 마!!)


 주변의 여성 지인들의 경우 요맘때쯤- 해서 육아휴직과 함께 회사를 그만 두는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죠. 어떤 친구들은 엄마가 어릴 때 옆에 없어서, 혹은 옆에 너무 항상 붙어있어서 이러저러했던 불만들을 얘기하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자그마했던 시절의 그 불만들을 돌이켜보며 다시 자신의 자그마한 아이들을 봤을 때, 내가 지금 이 아이 옆에 있어줘야 하는지, 혹은 잠시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겨도 되는지를 고민할 것입니다. 


 제 경우에는 어릴 때 어머니가 밖에서 일을 하시면서 좋다고 생각한 부분이 많았기에, 나 역시 계속해서 소득이 발생하는 형태의 노동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결심한 케이스입니다. 요즘 부쩍 이렇게까지해서 매일 아침 사무실에 기어가야하는지 약간 고민되는 순간들이 있긴 하지만요! 그리고 왜 그 고민을 엄마들만 하는지에 대한 불만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건 지금 얘기할 주제는 아니니까 일단 제낍시다. 


 아무튼, 저는 어머니가 밖에서 일을 하시는게 참 좋았습니다. 엄마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엄마가 내 옆에 있을 때와 내 옆에서 멀어졌을 때의 베리에이션들이, 그리고 그 사이사이 자그마하게 숨겨왔던 어린 나의 자잘한 비밀들이, 참 좋았습니다. 지금은 직장생활을 하고 밖에서 소득을 올려오는 소위 워킹맘들이 많지만, 예전에는 그런 엄마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엄마가 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청나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빠에겐 미안하지만 아빠의 직업은 딱히 뭐라 자랑한다거나 어떤 식으로든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만, 엄마의 직업은 늘 저의 자랑이었습니다. 여자라서, 아기 엄마라서, 로 시작하는 문장을 쓰기에 앞서서 여자도, 아기 엄마도, 라고 시작하는 문장을 쓸 수 있는 중요한 롤 모델이었습니다. 


 요즘 저는 부쩍 직장에서의 저의 생존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렇게 회사에 폐를 끼치다가는 잘린다는 엄마의 일갈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은 저도 조금 불안합니다 팀장님...?) 이제 조금 있으면 40대에 접어드는데, 아기를 대학을 보내려면 60세가 넘어서도 일을 해야 하는데, 60세는 커녕 50세가 넘은 여성 직원을 본 적이 있어야 말이죠. 점심시간에 비슷한 얘기를 했더니 남자들도 똑같다,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공포가 있다며 뭐 이런 걸 다르게 고민하냐는 투의 핀잔을 들었습니다만, 글쎄요. 제가 설명을 잘 못한 것 같아요. 저는 잘리지 않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그룹과, 애초에 실제 예시가 없는, 일말의 가능성조차 꿈꿔도 되는지안되는지 모를 그룹은 조금 다르게 느끼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저의 어머니는 60세가 넘은 지금도 직업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세상에는 이미 출근하지 않는 엄마나 할머니가 많으니까, 엄마도 일하고, 할머니도 일하는 집 하나 정도는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엄마와 할머니가 함께 출근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제 딸은, 저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아 역시 저는 회사를 그만 둘 수가 없네요. 이게 다 엄마 때문입니다. 


추신: 그러니까 사장님, 절 자르지 말아주세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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