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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ne Jul 19. 2018

아플 때 하는 약속은 치사한 것이라던데

바다 건너서 혼자 살던 적에 한 번은 아주 아팠었다. 어느 날 저녁, 갑자기 열이 오르고 전신의 근육이 뒤틀리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끙끙 앓기 시작했다. 아마도 흔한 풍토병- 누군가는 물갈이라고도 하는-이 아니었을까. 바다를 건너겠다 다짐했을 때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고 연인에게는 냉정한 결별을 했기에 건너와서 뭘 잘했다고 아프다 울며 연락을 할 염치는 없었다. 설령 연락을 한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었을까. 그들이 당장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핸드폰을 손에 쥐고 하릴없이 메세지함을 쭉 내렸다. 누군가 내게 따뜻한 메세지 하나라도 남겼다면 위로가 될 것 같아서. 하지만 나는 예상하지 못한 안온함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나는 또한 본의 없는 껍데기같은 겉치레 메세지조차 불편한 사람이었다.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희뿌연 새벽빛이 스며드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퍽이나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의 나는 어린 애처럼 울었던 것 같다. 엄마, 아파, 아빠, 나 물 좀. 그 때의 나는 엄마도 아빠도 부를 수 없었고 내 손을 잡아줄 미인도 곁에 없었고 이마에 찬 수건을 올려줄 안온한 그 누군가 하나 없었다. 저녁부터 올랐던 열은 새벽이 지나 아침이 완연한 창가가 되었을 때까지도 나를 끓이고 있었다. 이것이 내가 만든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에 문득 서글픔이 몰려왔다. 오롯이 홀로 서는 삶을 만들려고 여기까지 왔던가. 그래서 결심했던 것 같다. 이제부터는 너를 사랑하겠노라고. 허울같은 말이라도 내뱉겠다고. 


그 결심이 여기까지 흘러와 너는 단어 하나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작은 아이가 되어 내 옆에 누워있구나. 너에게 들끓는 열 한 줄기라도 내게 옮겨달라 신에게 애원하면서 나는 밤을 샌다. 아플 때 하는 약속은 치사한 것이라던데 그래서 그랬나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렇게나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나보다. 그러니까, 모든 손해는 내가 다 떠앉겠으니 신열에 들뜬 병균과 바이러스는 날 먹고 그 자리에서 펑, 하고 터졌으면 한다. 너와 나의 체온이 겹쳐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너 또한 어느 날 이렇게나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구나, 자조하겠지. 우리는 그 때 밑지는 장사를 하겠노라, 맹세를 한거란다. 


 쌕쌕 숨을 쉬는 아이 머리맡에서 네가 아플 때를 기회삼아 너에게 밑지는 장사를 하나 제안하고 싶다. 언제나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채 잠이 들기를. 네 머리맡에 앉은 나에게 아무런 부채감을 갖지 말기를.  너와 내 사이의 재무제표는 구멍 뚫린 모래시계처럼 너의 자산만 잔뜩 불리고 나의 부채만 구름처럼 안개처럼 공기처럼 쌓여오르길. 네가 누군가에게 밑지는 장사를 해도 아프지 않도록, 장사 밑천이 두둑하기를. 이런 나의 소망을 혀 끝에 고이접어 올려놓고 사탕을 빨듯 고이 물고 잠들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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