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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irette Mar 17. 2020

2008 일본 자전거 노숙 일주 #6

일본을 자전거로 관통하던, 그 여섯째 날.

상처는 인내를 기르고




어제밤의 사건으로 인해서 좀 늦게 일어났습니다.
그래도 개운하게 잘 잤군요. 

오늘은 드디어 버너 코펠세트를 이용해서 라면을 끓여보고자합니다.

라면을 4개나 가져왔는데, 무게도 줄일겸 해서요.

하지만 버너의 부싯돌이 맛이 갔는지 불꽃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또 열심히 달려서 라이터를 사오는 에피소드도 있었네요.

나른합니다.

산책하시는 할아버지들이 말도 거시고 하는군요.

쪼그리고 앉아서 멍하니 기다립니다.


어젯밤 사둔 계란도 톡 까넣고,

반값 닭다리와 맛있게 먹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라면, 맛있었어요.

정리하고 다시 달립니다.

섬이 굉장히 많네요.

세토 내해에 접어들었나봅니다.

엄청나게 큰 다리입니다.

가이드북을 뒤져보니 세토오하시로군요.

혼슈와 시코쿠를 잇는 다리인데,

섬 5개를 잇는 6개의 대교랍니다.

그 중 하나인듯 싶네요.

무더운 날씨의 라이더를 위한

안에서 솟아나는 원기!

홍삼드링크를 쭉 들이킵니다.

슈퍼드링크 히마와리라는 드러그스토어인데, 정말 싸군요.


10시도 안되었는데 한낮 같습니다.

그저 땀이 줄줄줄 흘러요.

시골길에 접어들 무렵, 민가에 들러 물을 얻어봅니다.

친절하게도, 바나나에 콜라에 얼음물까지 주시는군요.

연신 고개를 숙이며, 휴식을 취합니다.

역시 민심은 도시보단 시골이 좋아요.

가끔 이렇게 자전거 도로가 사라지거나, '있으나마나'인 구간이 있는데요,

저런 곳은 노면상태도 안좋고 해서 왠만하면 달리지 않습니다.

힘낭비에 자전거 내구도만 상하죠.


그냥 도로로 달려도 일본 차들은 쪼그매서 공간이 나오는 편이고,

게다가 운전자들이 알아서 잘 피해달려주니 그저 고맙죠.

거대한 트럭만 조심하면 된다는 거.

신칸센입니다.

정말 빠르군요.

찍자마자 바로 사라집니다.

후쿠야마라는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대충 점심때도 다 되어가는 것 같으니 쉬어가야죠.


역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마트입니다.

사람들이 많네요.

맛있는 벤또도 있습니다.


하지만 잠을 자야 하는 관계로 저렴한 맥도날드 100엔 메뉴로 때웁니다.

마트 안에 있는 맥도날드라 그런지 어수선한게

푹 자도 알바가 깨울것 같진 않습니다. 럭키!

잠을 괜히 잤나봅니다.

온 몸에 힘이 빠졌어요.

더워서 달릴 수가 없습니다.


가이드북에는 오카야마에서 7월 마지막 토요일에 하나비가 있다고 합니다.

놓칠 수가 없지요.

하지만 이 상태로는 오늘 안에 도착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후쿠야마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기로 합니다.

역시나 예상대로 절대로 자전거를 가지고 탈 수 없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지요. 결국 분해쇼를 펼쳐야 하는 겁니다.


하아...동물원 원숭이가 된 느낌이에요.

제껀 분해가 쉽게쉽게 되어서 금방 가방에 넣었는데

친구 녀석 자전거가 또 말썽입니다.

이래서 오래된 자전거는...아이고오


도중에 몽키스패너가 한번 망가지기도 하고

100엔샾을 뒤져서 스패너 사와서 분해하기까지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렸군요.

역 앞 풍경입니다.


화려한 색의 유카타를 입고 있는 걸 봐서는 오늘 축제가 있는게 분명해보입니다.

계획대롭니다. 모든 것은 계산 안에 있어요.

포장이 끝났습니다.

이젠 이 무거운 자전거와 짐을 들고 뻘뻘거리며 승강장까지 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기억도 하기 싫네요. 정말이지.

그래도 이 분을 만난건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하루에도 몇 천명 이상이 전철을 타고 내리는데
만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으시고 저리 시원한 그늘을 찾아서 주무시는 모습.
우리는 이 분을 이번 여행의 사부님으로 모셨습니다.
맥도날드에서도, 공원에서도, 길가에서도 사부님의 가르침을 생각하면서
얼굴에 철판을 깔았더랬죠.

오카야마까지 우리를 이끌어 줄 신쾌속 선라이너입니다.


자전거는 대충 출입문 옆에 세워둡니다.

통로를 좀 막긴 했지만

사람 다니는데는 문제없습니다.

그러고보니 일본 기차는 처음 타보네요.

광고물이 정말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네요.

아...포근합니다.

땡볕에서 열심히 페달을 밟을 시간인데, 이렇게 편안한 오후는 정말 오랜만이군요.

기차여행도 꽤나 해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런 걱정없이 그저 창밖을 바라보고만 있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한국 지하철보다 별 빠를 것도 없는 신쾌속이지만,

신칸센을 탄 것 보다도 훨씬 풍경에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신칸센을 타본적은 없지만서도요 ㅋㅋ

느긋합니다.

오늘 밤에 있을 하나비를 향해서 기차는 달립니다.


구라시키도 꽤나 역사와 전통이 있는 도시입니다만,

다음 기회에 들러보기로 합니다.

일단은 축제에요. 흐흐


화려한 불꽃, 그 불꽃처럼 화려한 유카타들,

유카타보다도 화려한 아리따운 여인네들 생각에

일본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리면서 자세히 읽어보니

이 열차는 세토해안가를 달리는 열차인가봅니다.

승차감 괜찮았어요.

자, 선라이너 안녕. 우린 이제 축제보러간단다.

일단 역내 한 구석에 이렇게 자전거들을 세워두고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관광안내소로 갑니다.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겠죠.


엥? 오늘 축제가 없다고요?!!

이건 무슨 소리일까요. 명색이 관광안내소 직원인데

도시에 있을 축제도 모르다니.


다음주 토요일 하나비 광고 전단지를 애써 무시하면서

이리저리 물어봅니다.

하지만 없는건 없는거에요.


아...가이드북에 낚였습니다.

정말 철저히 믿었었는데...


새삼 기차값으로 지불한 약 900엔이 아까워오기 시작합니다.

절망스럽네요.

그래도 한창 하나비 시즌일테니,


근처 어딘가에선 있을거라 생각해봅니다.

일단 지도를 보고 지리를 익혀둡니다.

가이드북 지도와는 반대로 되어있군요.

자전거를 합체시키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끙끙거리는 도중에 어떤 젊은 분과 대화를 나눕니다.

한국타이어에서 일한다나 어쩐다나.


오늘 하나비가 있긴 있는데, 그곳까진 자전거로 한시간이라고 합니다.

오오, 그 소식을 기다렸어요.

재빠르게 역에서 나와서 열심히 달려봅니다.


하지만 도중에 가는 장소 이름을 까먹고야 말았네요.

기억상 비슷해 보이는 나미란 곳은 80km로군요.


허탈합니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서 이 허탈감을 좀 채워보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잡지들을 뒤적거리면서 하나비 정보를 찾아보지만

역시나, 근처엔 없군요.


패배감을 안고 오카야마역으로 돌아갑니다.

분명히 오늘 유카타를 많이 본 기억인데, 왜 축제가 없을까요.

관광안내소에 가서 근처에 무언가 축제가 없는지 물어보니,

구라시키에 나쯔마츠리가 있다고 하더군요. 아놔 진작 말하지


그러니까 후쿠야마에서 본 유카타무리들은 오카야마가 아니라

구라시키로 갔던 것이었습니다.


아아...차라리 자전거로 이동했더라면.

도중에 들르게 되는 구라시키에서 지금쯤 축제를 즐길 채비를 하고 있었을텐데.

여기서부터 거리는 20Km. 재빠르게 달려가면 한시간 정도.


나쯔마츠리는 30분 남았고, 2시간 정도 진행.

좋아, 달려볼만합니다.


당장 역을 박차고 나와서 전력질주 합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아가씨들을 생각하니 속도가 절로절로 붙는군요.


그나저나 친구가 자꾸 뒤쳐집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돌아가보니 바퀴가 이상하다고,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친구 뒷바퀴가 멈췄습니다.


아예 돌아가질 않았어요.

답답합니다.

이리저리 분해하고 합체해보고 하지만

그러다가 전방 후레쉬도 다 나가고 하는 사건도 있었지만

뒷바퀴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아...저 고개 너머 멀리선 폭죽소리와 행사 진행자의 마이크 소리가 들려오는데

우리는 어두운 길가에서, 공중묘지 옆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있습니다.


친구는 마구 짜증을 내고 있고

저도 시계를 바라보며 한숨만 내쉽니다.


결단의 시간인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죠.


친구 자전거를 버려두고 떠난다던지 하는.

하지만 여기서 물러선다면 패배자가 될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작 뒷바퀴때문에 자전거를 버린다는 것도, 좀 에러네요.


그래서 대충 길가 세탁소건물 뒷편에 친구 자전거를 놓아두고

일단 마트에 들러서 밥을 먹습니다.

제 자전거에 친구짐까지 싣고 오느라 고생했어요.

이미 친구는 거의 탈진 직전입니다.


저도 땀도 많이 흘려 힘들지만, 일단 친구 상태가 걱정이에요.

짜증과 절망이 속에 쌓이면 그거야 말로 독이지요.

그래서 오늘은 큰 맘 먹고 시원한 데서 자기로 합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수면을 보장할 수 있는 곳, 바로 PC방입니다.

이 PC방은 우리나라의 것과는 조금 개념이 다릅니다.

그래서 PC카페라고 부르죠.

열심히 여권을 보여주면서 회원가입을 합니다.

외국인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지, 꽤나 놀라는 표정들이네요.

제 박스석입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가장 싼 패키지로 주문했는데(DVD실)

가장 비싼 박스석을 줬더군요. ㅡㅡ

컴퓨터를 하러 온게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역시나 인터넷은 느립니다.

그래도 감지덕지지요.

대충 사람들과 안부를 나누고

뉴스도 좀 살펴봅니다.

오늘도 여전히 명박씨는 글로벌 호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군요.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삽질은 그만했으면...하고 혀를 좀 차준뒤에

구경하기위해서 돌아다녀봅니다.

말로만 듣던 음료수 무제한 제공서비스로군요.

미닛메이드만 미친듯이 먹은 기억이 납니다.


워낙 냉방이 잘되어 있는 터라,

이렇게 제공해 주는 담요를 덮고 자는 것이 낫습니다.

한국에서 재밌게 보고 있던 마크로스 프론티어,

일본에서도 인기가 있나 봅니다.

대작은 대작이었어요. 그래픽도 쩔고.

다만 스토리라인이 눈에 뻔한게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슬러쉬도 있네요.

너무 많이 먹어 배탈나는 일은 없도록 합시다.

신간들로 가득한 서고.

특이하게도 소년만화, 청년만화 이렇게 구별되어 있더군요.

역시 일본입니다, 만화 강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즐겨보던 만화인 블리치도 한국보다 몇권이 앞서서 나와있고요.

호기심에 야한책도 좀 보면서 긴장을 풀어봅니다.

박스석은 가려져 있으니까, 부끄러울거 없어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죠.


샤워실에서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어서

오늘 밤은 깊게 잠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자전거가 말썽이지만

내일 걱정은 내일 하도록 하고,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잠이 듭니다.   



미하라 → 오카야마


Distance  - 50km?

(모르고 다음날 리셋을 해버려서...기차를 탔기 때문에 대충 이정도일듯)


[오늘의 숙박]

클럽 몽 블랑(Club Mont Blanc)

숙박지수 : 4
장점 : 일반 비즈니스호텔보다 싸면서도 마실 것, 볼 것들이 넘친다. 샤워시설도 있고.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다. 인터넷도 사용 가능.

단점 : 의자가 좀 뒤로 젖혀졌으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노숙에 비하자면 역시 가격이 소모.
메모 : 여유있는 자전거 여행자라면 애용해주자. 하루 밤 지내는데 2000~3000엔.

          도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게스트하우스 이용이 힘들거나, 갑작스런 컨디션 저하일 때 이용하면 나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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