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자전거로 관통하던, 그 첫째 날.
본 글은 2008년 여행 직후의 입대 기간 동안 작성한 것으로, 당시에는 자전거 여행 카페에 올린 여행기이기에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주는 스타일로 작성되어 있습니다.그 때의 풋내를 살리기 위해 수정은 최소한으로 이루어졌으니 양해 바랍니다.
안녕하십니까.
일본을 가야지가야지 하다가
1년을 그렇게 침대 위에 누워서 공상에만 빠져있다가
이래선 안되겠다 외치고 방학이 시작하는 동시에
겨우겨우 알바해서 푼돈모아 일본을 다녀온
헝그리 정신이 투철한 자취생입니다.
이런 저런 정보를 많이 모았었죠.
여행정보가 가득 담긴 책도 보고
매일같이 일본 여행기들도 읽어보고
이런 저런 계획도 세워보다가
역시 가격대비 효율성에는 자전거만한 것이 없겠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여사에 물어물어 가면서 자전거 등을 구매했었죠.
한강변 좀 타보던 실력으로
일본을 돌아다닐 수 있을까 싶었지만
'젊음' 하나만 가지고 일본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참고한 자료는 수 많은 분들의 여행기와
여행책과 일본 전국 도로지도(요게 핵심!) 이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 알찬 정보와 생활의 지혜가 가득한
(헝그리&노숙)여행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제 고향이 마산인 관계로
부산에서 배를 타고 출발하기로 계획을 세웠었지요.
출발일이 21일 인데 고향에 내려온 날은 20일이었기에
부모님이 조금 서운해하셨습니다.
그래도 부디 제가 다녀올 때까지, 잘 지내시길.
아직 덜 마른 옷들도 패니어에 쑤셔 넣으며 허겁지겁 도로로 나갑니다.
흥분되는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ㅎㅎ 너무 좋아요.
초보 여행자답게 무식하게 담긴 짐때문에 속도가 잘 나진 않지만
그래도 힘이 절로절로 납니다. 룰루랄라
지금 보니 정말 무거워 보이는군요.
이러니 뒷바퀴가 휘죠.
물론 이 때만해도 코펠이며 책들이며 다 필요할줄 알았죠.
'이정도면 나도 여행자 포스가 나겠지' 이러면서 좋아하고 있었답니다.
때마침 함께 가기로 한 친구의 어머니께서 부산까지 태워주신다는군요.
오, 이렇게 운이 좋을데가.
애초에 예산이 넉넉지 않아서 돈은 아낄 수 있을만큼 아껴야되거든요.
무엇보다 맛있는 점심도 얻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요. ㅎㅎ
물론 이건 친구에겐 비밀입니다.
날씨가 조금 흐리군요.
그래도 비는 안온다던 기상청을 믿어봅시다.
아, 그런데 친구 녀석이 오질 않는군요.
제가 작년 겨울에 꼬셔서 여행을 같이 가기로 한 친구인데
이 녀석 준비가 얼마나 안되어 있던지 제가 여행 내내 개인 가이드 역할만 ㅜㅜ
전화로 압력을 좀 넣으니 도착하는군요.
간만에 고향에 내려왔는데 마창대교가 개통되어 있군요.
꽤나 멋진 다리입니다.
높기는 무식하게 높아요.
시원하기 그지 없는 광경입니다.
잘 만들었군요.
이렇게 잘 빠진 길들을 달려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고프군요. 친구 어머님의 친구분께서 마중 나오셔서 밥을 사주셨습니다.
맛있었는데, 솔직히 가격이 후덜덜했었습니다.
가게가 매우 크고 품격 있더군요.
어쨌든 잘 먹었으니, 이제 국제 여객선 터미널로 출발해야죠.
달리는 도중에 이야기를 하다보니
친구가 학생증을 안가져왔군요. 답답하게스리
일본에선 학생할인이 매우 중요한데 말이죠.
배 예약이 학생으로 되어있어서, 이거 잘못하다간 친구는 돈 더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이게 좋은것 같아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나 돈 없긴 마찬가진데,
유독 우리 나라만 학생할인에 대학생을 잘 넣어주지 않더라구요.
부산 국제 여객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정문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매우 센스가 있군요.
한국 전통 기와를 살려서 멋스럽게 만든 것이 보기 좋습니다.
오사카행 팬스타가 출발하려고 하는군요.
저도 괜히 들떠서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카멜리아호를 찾아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는군요.
성희호도 있고 딴 배는 다 있는데 유독 카멜리아가 보이지 않는다니...
출항할 수 없는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요?
터미널 안에 가서 물어보니 5시 반까지 오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안심하고 환전이나 하러 갔다오기로 했습니다.
뒷날 이야기지만, 저는 카멜리아 호가 부관훼리처럼 배 두척이
왕복하는 건줄 알고 있었는데,
막상 돌아오는날 저녁에 출발할 줄 알았던 카멜리아 호가 대낮에 출발한다는 소리에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카멜리아 호는 한 척입지요. 한국에서는 밤에 출발,
일본에서는 낮에 출발.
이 생각을 못한 탓에 후쿠오카 관광을 못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아직도 카멜리아 선상에는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제 계좌에 있는 돈 탈탈 털어 엔화로 바꾸어봅시다.
여행자 보험 가입하고 나니 6만 5천엔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7천엔은 친구한테 돈 갚아야되요.
결국 예산은 5만 8천엔.
과연 살아돌아올 수 있을까요? ㅎㅎ
하루에 천엔이면 58일이라는,
매우 순수하고 귀여운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자전거 여행'은, 천엔 치 열량으로는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을
첫날부터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은행 앞에서 자전거를 묶을려고 주머니를 뒤적거려보니,
아뿔싸, 4관절 락 열쇠가 없는 것입니다.
집에 두고 온 듯 싶어서
'이 무거운 자물쇠를 쓸데없이 한달간 들고 다닐까,
아니면 버려버릴까, 아니 돈이 얼만데?' 고민하다가
일단 환전할 때는 은행에 있는 예쁜 경찰 누님께
자전거 좀 지켜봐 주십사 부탁을 하고
부산 시내를 뒤적뒤적거려 겨우 5000원짜리 자물쇠 하나 삽니다.
손대면 톡하고 끊어질것만 같은 그대~♬
싸구려라 부르리~♪
뭐 없는 것 보단 낫겠지요.
그리고 4관절 락은 뽀대용으로 달고다니기로 합다.
친구는 일본에서 듣기 위해서 이어폰을 사러 갔습니다.
전 터미널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사람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이런 짐가방, 저런 짐가방 등등...
학생들이 많이 있더군요.
한줄로 서서 기다리는 걸 보니 조금 불쌍하더군요.
잘 알지도 못하는 곳, 가고 싶지도 않은 곳을
이리저리 끌려다녀야되고
제가 보기엔 그들이 가는 것은 '여행'이 아니라
단순 '관광'인듯 싶습니다.
그래도 부러운건 사실입니다.
제가 학생때 가장 멀리 간 곳이 제주도에 불과한데,
일본으로 친구들이랑 다같이 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다는게
세월 참 좋아졌습니다.
늦게 와서 제가 쓴 걸 허겁지겁 베끼고 있는 친구 녀석.
다행스럽게도 제 학생증만 보고 배 티켓을 끊어주더군요.
돌아오는 표는 곱게 가방에 넣어줍니다.
거침없이 달려서 올라갑니다.
비록 패니어를 양손에 들고 있어서 무거워 돌아가시겠지만
고작 그런 무게로는 일본으로 향하는 나의 마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조금 걱정 되는군요. 출국 거절이라도 되면 어찌될지.
친구랑 서로 농담따먹기를 해가면서 기다립니다.
"사진을 보니 외교상 마찰을 유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군요. 이경태(친구이름)씨, 한국에 계셔줘야 겠습니다."
적절하게 긴장을 풀어줘야 할 필요가 있었죠.
요거 대놓고 찍다가 혼났습니다.
보안구역이라서, 찍으면 안된다네요.
뒤로는 면세점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가격들이 '춋토 후덜덜데스네'
면세점을 뒤로 하고, 배로 오릅니다.
일단 짐을 놓아두게 선실로 후다닥 달려갑니다.
제일 먼저 도착해서 그런지 텅 비었더군요.
친구가 좋아서 쪼개는군요 ㅎㅎ
이때는 여행 초기라 바보같이 제 카메라론 친구를 찍고
친구 카메라로 저를 찍고 그랬습니다.
막상 다녀오니까 친구는 학교다닌다고 사진받기 힘드네요.
저도 저렇게 바보같이 찍혔을까요? ㅋㅋㅋ
여기저기 배를 둘러봅니다.
자판기가 일본어입니다. 오오
그러고보니 일본에서 가장 많이 본 건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받으면
주저없이 자판기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군요.
항구의 풍경입니다.
이 풍경을 보니 다시한번 더 배를 타보고 싶습니다.
카멜리아 호에 탑승하는 승객들.
저희가 얼마나 재빠르게 배에 탔는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점점 어두워 집니다.
배 안을 구경해보기로 합니다.
흠...개인적으로는 이런 곳을 이용할 마음은 없지만
그래도 부러운 마음은 감출 수가 없지요.
저같이 헝그리한 라이더는 일본에서 쓸 돈도 빠듯하기에
2등실 바닥에서 자도 그저 만족입니다.
이 계단을 몇 번 오르락내리락 했는지 모릅니다.
사진정리를 하다보니 배 사진이 너무 많더군요.
의외로 출항 시간이 늦어서(10시 반)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배 안에는 레스토랑도 있고, 가라오케도 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곳은 욕탕입니다.
혹시나 오해받을까봐 사진은 찍지 않았지만
아늑하고 전망 좋은 것이 정말 개운하게 목욕할 수 있습니다.
술을 즐기진 않습니다만 이런 날엔 기분상 마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사히 250엔에 치킨 앤 포테토는 무려 450엔!
그때야 돈도 많았고 무엇보다 들떠 있었던 것이지요.
역시 여행 뒤에 남는 건 사진 뿐인가봅니다.
밤이 점점 깊어지면서 야경도 더욱 그 멋을 더해갑니다.
휘영청 밝은 달을 바라보면서
첫사랑도 생각해보고, 부모님도 생각해보고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남겨둔 채, 배는 유유히 떠나갑니다.
둘다 얼굴과 피부가 밝군요.
저 때의 피부가 그립습니다. ㅜㅜ
한국에 돌아온지 한달이 다되어 가지만
아직도 제 피부는 원주민 피부입니다.
부산이 멀어지고
흔들흔들, 초점이 안맞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큰 배도 흔들림이 있군요.
많은 사람들이 갑판에 나와서 바라다봅니다.
망망대해 속에서, 그저 달빛만이 배를 이끕니다.
편안히 자고 나면 저 달이 뜨는 곳에 있겠죠.
그 곳을 바라며, 그리고 무사 평안한 항해를 위하여
기도하며 잠들었던, 시작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