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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 Mar 08. 2017

일 년에 130일 눈이 내리는 마을

겨울, 홋카이도 비에이 여행

겨울 비에이의 설경


일 년에 130일 눈이 내리는 마을.


 겨울 동안 내리는 눈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8~11미터는 족히 쌓일 거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며 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하는 시간 내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모른다. 가는 중에도 하늘은 시시때때로 변하여 해가 반짝 나더니, 금세 또 눈이 퍼붓기도 하였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세상은 이미 예전에 봤던 '나니아 연대기' 속에 나오는 겨울나라 같았다.


 삿포로에서 3시간가량을 달려 비에이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가구가 모여사는 비에이역 근처를 벗어나자 시골마을이라면 단연 그렇듯이 집들이 넓은 눈밭을 사이에 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놓여있었다. 비에이는 농업이 발달한 도시로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푸른 논과 밭, 그리고 색색의 꽃밭을 구경하러들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겨울에는 논, 밭이라고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바로 하염없이 내리는 눈 때문이다. 온통 하얗게 덮여있으니 어디까지가 길이고, 어디부터가 논이고 밭인 지 조차 구분하기가 어렵다. 길인 줄 알고 걷다가 다리가 푹푹 빠져서 깜짝 놀라고 보면 길이 아니기도 하다.








비에이의 유명한 언덕.




눈 내린 숲



 처음 이 끝도 없이 하얗게 펼쳐진 설경을 마주했을 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7년 전, 21살 때의 겨울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혼자 해외에 나가 캐나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지내게 되었는데, 너무 시골이라 이름을 말해도 캐나다 사람들도 잘 모르는 그런 곳이었다. 그곳의 겨울은 눈과 함께 시작되었다. 한겨울의 기온은 영하 40도 가까이 내려가는 곳이었다.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그곳의 추운 겨울을 무사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겨우내 내리는 눈 때문이었을 것이다. 눈이 얼마나 많이 내리는지,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하룻밤에도 여러 개의 나뭇가지가 툭툭 하고 주저앉았다. 매일 아침 문 밖으로 나서며 마주한 설경은 하루, 이틀, 열흘 그리고 한 달이 지나도 변치 않고 아름다웠다. 내 인생의 여러 계절 중에서 "아름답다"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때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눈은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어둡고, 더럽고, 무섭고, 거친 것들을 잠깐이나마 정화시켜주는 신의 선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비에이에 도착해서 마주한 설경은 7년 전의 겨울을, 그리고 7년 전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때의 나는 눈송이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던 두 볼이 붉어지던 아이였는데,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생각해보았다. 여전히 떨어지는 눈송이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햇빛에 반짝거리는 눈의 결정들이 날 설레게 만든다. 눈은 그런 성질을 가진 게 아닐까-? 눈 자체는 차갑지만 차가운 마음을 따듯하게 덥혀주는, 딱딱해진 마음을 살랑살랑 흔들리게 하는, 다 큰 어른을 천진난만 아이로 만드는 그런 성질을-. 아! 그리고, 빠르게 가는 것들을 느리게 만드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비에이의 설경에서 남편 J가 찍어준 내 모습





청의 물이 흐르던 계곡




함박눈이 퍼붓던 시공간




저멀리 아득히 멀어 보이는 나무와 남편J.



 무슨 나무라고 했던가... 이 나무를 배경으로 찍은 광고의 이름을 따서 나무에 붙인 이름이 있다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괜찮다. 나무의 이름은 중요한 게 아니다. 함박눈이 내렸다. 내렸다는 표현보다는 퍼부었다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굵기도 굵은 눈송이가 정말 온 세상을. 나와 내 남편까지도 다 덮어버릴 기세로 퍼부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저기 나무 옆에 서 있는 남편이 아득히 멀리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존재한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멀찌감치 서 있는 남편과 나무를 사진에 담으려고 마주 서서 바라보고 있었던 그 순간이 마치 영원한 순간인 듯 기억에 존재한다.




비에이의 시목인 자작나무.
눈사람이 되어보겠다.





빛과 눈.





이제, 겨울을 툭툭 털어내고 봄으로 가자.






숲 속 요정들이 사는 마을



닝구르 테라스



안녕 홋카이도-! 안녕 겨울-!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숲 속 요정들이 사는 마을에 들렀다. 어느 유명한 드라마 작가가 연출한 공간이라고 했다. 정말 요정들이 숨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곳이었다. 어둑해진 숲 속에서 자그마한 통나무집들이 소곤소곤 빛나고 있었다. 한 통나무집 카페에 들어가 구운 우유를 한 잔 주문해 마셨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짧게만 있다가 나왔지만, 몇 시간이고 가만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밤의 설경을 바라보고 싶었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화목난로의 장 소리를 들으며-



따듯하고, 좋은 겨울 여행이었다.


홋카이도 여행의 기록.











제주 모슬포 낮고, 자그마한 옛집. 

활엽수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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