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을 보고
00:00 - Intro
떠남의 끝에 닿았던 뉴욕에서의 열흘은 무척이나 삭막했다. 공장에 틀어박혀 부품인지 밤낮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시커멓게 일만 했던 디트로이트에서의 생활보다 더욱. 아무리 새로운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도, 아무리 멀리 떠나보려 해도 42번가 어느 한 축을 기점으로 일정하게 진동하는 무게추처럼 끝내 중심부로 향하며 회귀하고야 마는, 아무도 부정한 적 없던 긍정하기 어려운 나 자신의 물리적 원리를 발견하고 울그락불그락 당혹해하던 꼴이 어찌나 우습던지. 그동안 나는 무엇을 향해 떠나왔던 걸까.
00:13
수십개의 문장들이 금새 떠올랐다가 이내 휘발된다. 불안에 대한 통제감이 약해지는 때문이리라. 떠오르는 것, 휘발되는 것, 어느 쪽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무엇에 대한 불안인지도 분명치 않다. 파헤치는 일은 별 도움이 되질 않는다. "명상이 도움이 되겠군요." JS님의 조언이 말씀처럼 몇 년 동안 아득하게 맴돈다. 고마움을 표하는 일이 밀린 숙제처럼 남아 있다. 그것이 곧 죄책감으로 엉뚱하게 부풀어 가는 건 '타인 때문인 나의 문제'다. 가만히 앉아서 고치지 않고 내버려 두는 보통의 일이 내게 얼마나 고통인지 너는 미처 모를 거야.
00:17
행복해지는 법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 어느 시절을 생존해내었던 최대치의 뾰족한 나와 견주지 않아도 괜찮다. 사소하고 꾸준한 것들이 나를 구성하며 결국에는 나의 골조를 기초하기 마련이다.
00:20
일본 첫 여행으로 택한 초록색 섬, 365일 중 370일 비가 내린다는 야쿠시마. 한국인을 실제로 처음 본다는 얼굴들로 가득한 영어가 통하지 않는 섬. 태풍으로 트래킹과 배가 전면 취소된 속에 걱정하던 기억. 정확한 사정을 얻을 수가 없다.
원령공주의 모티브가 된 시라타이운스이쿄 협곡. 터지지 않는 데이터와 엉거주춤한 바디랭귀지. 버스에 반대로 올라타서는 한 시간 여를 달려 엉뚱한 곳으로 갔다가 돌아온 탓에 굵은 빗줄기를 맞으며 몇 시간을 뛰어 오르던 산길. 정상에서 행운처럼 쏟아지던 햇살.
지구의 유산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보를 풀지 않는다는 yakushima.or.jp의 고니시상. 거북이를 너무 좋아해서 기후대학에 진학한 소녀 사키짱. 일본의 고마움을 소중히 여기는 이설씨. 야쿠시마에 한국어 간판을 늘려주겠다던 너무너무 귀엽고 포악한 할머니 아케미상. 야쿠시마 구석구석에 푹 담궈준 오사카 출신 레이서 나오꼬상. 함께 낯선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던 밤의 멤버 하루나, 마호, 나나미, 미카. 시작을 잃고 끝을 되찾은 오사카 어르신과 승현 형님.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로 틈틈이 잔을 채워주던 멋진 동생들.
사진기와 신용카드 분실. 태풍. 파란만장한 여행.
여행의 매력은 일어나는 일을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서 받아들이는 태도를 가르쳐 준다는 것. 길을 걷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대한 이야기.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 나는 돌아가서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가.
일본인은 헤어질 때 '아리가또 고자이마스'라고 하더라. 그 사람과의 오늘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00:25
규칙 없이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었다. 사랑 후에 규칙이 쌓이기를 바랐다. 규칙 없이는 사랑이 쌓이지 않는, 규칙 위에서만 사랑이 오고가는 관계도 있더라. 나도, 그도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각자의 세계는 서로의 세계 안에서 서툴 수 밖에. 그에게는 난데 없는 사랑타령, 나에게는 지긋지긋한 규칙 타령. 애꿎은 침묵만 새벽처럼 겉돈다. 같은 대화가 밤새, 어린시절 내내 맴돈다.
00:28
어렸을 적 꿈은 '화가'라고 적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또 어떤 날에는 멋진 밴드의 보컬이 되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장래희망 란을 채워야 하는 공식적인 날이 오면 곧장 '화가'를 써넣고는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어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하얀 도화지가 다 '고쳐질 때까지는'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그 곳에 가만히 머물러도 괜찮았습니다. 합의되지 않는 언어들이 폭력적으로 떠다니는 공간을 견딜 필요도 없었고, 옳고 그른 것을 간단히 해체하고 편의대로 재조립하는 커리큘럼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만큼은 그것 자체인 시간이었습니다. 종이 칠 때까지 '고치는 일'을 무한히 반복하는 동안 나는 불안을 견디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00:41
장군이를 데리고 성북천으로 산책을 나왔다. 밤공기와 은행나무, 밝은 달. 바닥을 한참동안 킁킁대던 장군이가 멈췄다. 장군이는 엄마 생각을 했고, 나도 같은 여자를 생각하느라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00:49
타인을, 혹은 무엇인가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일은 본인으로부터 시작된다. 뜻대로 결과를 통제하거나 소유하지 않고는 본인을 견디지 못하는 비극에 나는 근본적으로 중독되어 있다. 비극은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은 계속 미워져야만 한다. 미움을 알아차리는 일은 매번 늦어지고, 이제와 나를 수식하는 건 무엇을 좇고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오래되고 해묵은 감정공식과, 특정한 시절을 생존해내면서 훈장으로 얻은 무용하고 고루한 방정식과 규칙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00:53
손 가는대로 클릭한 곳으로 떠났다. 예약해둔 쏘카를 취소해도 좋을 정도의 인구 100명 남짓한 작은 섬이었다. 허름한 시골민박에 인심좋은 나물 가득 백반시켜 둘이서 나눠먹고, 목줄 없이 마당에 장군이와 누룽지를 풀어 놓고는 연휴를 체크리스트 없이 그대로 흘려보낼 요량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듯한 기분을 위해 다소 억지스럽더라도 경쟁과 셈이 없는 시골 특유의 미쟝센이 필요했다. 여행자니까 그 정도 사치는 부려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서울 출신이었다. 세련된 폰트로 '카드환영' 이라고 써있는 민박집의 시그니처는 아메리카노와 프렌치 토스트였고 백반은 일인에 무려 만원이었다. 섬에 하나 있다는 슈퍼가 3박4일 내내 꽉 잠겨 있어 어쩔 수 없이 비상식량으로 가져온 라면을 잔뜩 먹었더니 도시인의 상징인 역류성 식도염이 다시 올라왔다. 서해 한가운데에서는 데이터가 빵빵하게 터져서(어째서?) 이메일과 슬랙이 수시로 울렸다. 남의 집 현관문에 자꾸 오줌을 갈기는 탓에 아이들은 집에서보다 목줄을 더 오래 메고 있었으며, 짙은 초록색 산을 자유롭게 뛰놀던 아이들은 수천마리의 진드기에 물려 도시에서 약물목욕 후 격리입원 중이다.
그래도 거기 바람이 참- 좋았다.
풍요로운 섬 '풍도'에서
01:00
4년 전 제가 18장 편지로 고백했던(으악) 여자와 9월 1일 오는 토요일에 결혼합니다. 혹 시간 되시면 편하게 들러 축하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상근, 아리솔 올림
01:07
오감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풍광 앞에서 우리는 겸손해진다. 압도적인 장면의 자연에는 그런 기능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두려울 정도로 아찔한 절경 앞에서 아내와 나는 지금의 느낌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자. 모든 순간에 대한, 결국 단 한 순간에 대한 이야기.
01:15
넷이서 소금물인지 빗물인지 모르는 해변을 한참동안 철벅철벅 뛰어다녔다. 누룽지는 죽은 생선을 몰래 주워먹고 그날 밤 15번 정도 토를 했고 탈수가 와서 동물병원에서 링겔을 맞는 것으로 여행은 종료되었다.
01:18
이사온 지 이주일째. 주변에는 녹지가 매우 많다. 아파트 쪽문은 야트막한 뒷산으로 이어져 있고 정문 아래로는 자그마한 천이 천천히, 멈추지 않고 졸졸졸 흐른다. 며칠 전 동네에 눈이 내렸고 여기 이곳은 내내 새하얗게 멈춰있다. 색상이라고 할만한 건 새로운 집과 그 주변 산책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쉼없이 뛰어다니는 장군이와 누룽지 정도. 아내와 마주앉아 맥주 한 모금을 꿀꺽 삼키며 이 동네에 앞으로도 쭉 머물러 살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때에 꼭 아이슬란드 북부로 한달 여행을 떠나리!
01:24
우연히 만난 분수는 그 규모가 컸다. 고즈넉하게 내려앉은 노을 때문인지 진부하게 흘러나오는 가사가 마음에 갑작스럽게 와닿아서 한참을 넋놓고 바라보았다. 새끼를 위해 쉬지 않고 잠수해서 먹이를 먹이는 오리 가족의 귀한 장면을, 자연 속 날 것의 장면을 본 것도 무척 좋았다. 밤에는 괜찮아진 줄 알았던 공황이 다시 찾아왔다. 분수처럼 우연히 마주한 일이기에 사전에 준비해 둔 기대치가 없어 오늘은 다소 좌절감이 있었다. 위산을 역류시키지 않기 위해 지켜내었던 몇 가지 사소한 원칙들을 대단스럽게 쌓아온 시간에 대한 의문이 일었기 때문이리라. 정해둔 기대치가 없으면 마음은 음으로 양으로 쉽게 흔들리는 법이다. 좋은 일과 고통스러운 일을 함께 겪은 귀한 하루였다. 오늘은 무리지만, 내일이 되면 다음과 같이 퇴고할 것이다. '어제는 뜻깊은 하루였다.'
01:31
생애 처음으로 멈추어 본 뜻깊은 한 해. 자각 없이 끼기긱 멈추어 가고 있던 나를 다시 움직이기 위해 오히려 완전히 멈추었던 경험. 오래된 습관들이 내구성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포용하고 체질개선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한 해. 가족과 사랑에 대해 느꼈던 바가 많았던 한 해.
01:37
좋아하기 쉬운 것은 싫어하기도 쉽다. 갈망하지 않는 것은 혐오할 수조차 없다. 나의 세계는, 세계가 나의 해석 속에서 흘러가지 않음을 이해함으로써 비로소 성장한다. 갈망하고 혐오하는 일은 나의 해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01:42
우리는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타인을 이해하려고 성실히 노력합니다. 사실을 얘기하자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서 우리는 타인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경청하는 일이 두려워서, 여자를 잃을 것이 두려워서 남자는 진실을 지나칩니다. 두려운 것은 나의 이해 속에 가두지 못하는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 모퉁이를 돌자마자 날 것 그대로의 나와 맞닥뜨리는 일이지요. 깊은 고요 속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세세한 불안이나 상처 따위를 반듯하게 앉아 경청하고 진실을 그대로 받아쓰지 않고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무척 고통스러울테지요. 하지만, 다시 한 번 사실을 얘기하자면, 타인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생물학적으로도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타인을 잃느냐 혹은 자신을 영원히 잃어버리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렇게 진실된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고 슬퍼하고 고통받다 보면 생의 끝에서야 비로소 우리는 기쁨과 환희에 가득 차 얌전히 죽을 수 있을 테지요.
01:54
피카소는 라파엘로처럼 그리는 데에 4년이 걸렸지만 어린아이처럼 그리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고 했다. 무척 애정하는 말이다.
01:47
우연히 멈춘 갓길의 끝에서 마주한,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아무렇게나 지어서 전해 내려온 것 같은 이름의 '송천'. 항상 긴장해 있는 장군이가 서툴지만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나고 자란 땅을 누비듯 넓직한 계곡 사이사이를 거침없이 뛰어다녔다. 구름이 걷히고 쨍한 여름 해가 계곡 구석구석을 집요하게 비추었고, 아내와 나는 각자 시커멓게, 시뻘겋게 탔다. 물살이 무척 날카롭고 투명했다.
02:00
장군이가 떠났다. 눈을 뜨면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면서 조심스레 커다란 얼굴을 부벼대는 장면이나 특유의 거친 숨소리와 냄새, 혹은 가만히 뚫어져라 바라보는 눈빛 같은 것들이 아직 생생하다. 어떤 날에는 부드러운 햇살에 장군이를 추억하며 미소짓다가 또 어떤 날에는 텅 비어버리곤 하는 일이 반복된다. 뭐랄까, 어느 한 켠이 보통의 일상과는 달리 제대로 흘러가지 않고 멈춰있는 기분이다.
02:05
걱정과 불안은 '지금 여기'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과 '생각'은 내가 아니다. '나'는 없다.
02:06
다시금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바르지 않은 자세와 명확하지 않은 움직임은 지금 짊어져야 할 현재를 회피해 온 세월의 흔적이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02:13
안타깝게도 성공은 운이며, 지름길은 없다. 미래에 빠르게 닿으려는 절박한 성실함이,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완고함이 현재를 붕괴시킨다. 미래에 대한 소유나 통제가 아니라, 현재에서 위험(특히 기회비용 낭비의 위험)을 감수하고 꾸준히 시행착오를 짊어지며 거시적인 흐름을 '알아보아야' 무한히 팽창하는 확률분포에 '실제로' 영향을 줄 수 있다. 운은 따라온다. 의사결정은 원하는 결과를 미리 셈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떤 위험을 얼마나 감수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이다. 결과는 내 손을 떠난다. 그러니 어차피 할거냐 말거냐의 문제라면 쾌속하게 '의사결정' 해야한다. 흥미를 가지고, 작게 기본을 직접 실행해보고, 그 곳에 빠져 허우적거려도 보고, 쏟아지는 사건을 감내하면서 성실히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해내다보면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게 되며, 곧 현재에 오롯이 머물 수 있는 집중력으로 이어진다. 원하는 것을 '관찰'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쉽다. 비로소 허무주의적 낙관론자가 되어 상상하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올해에는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일'로 이어졌고 이전보다 더 공식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일견 엉뚱한 결말 같아 보이지만 오랫동안 나는 무언가를 정의하는 일, 예술을 염원해오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아마 나만 모르고 있었나 봄). 자신을 남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지나치게 소모하고 있다는 말로부터 이제야 조금씩 자유로와지는 것 같다.
02:24
결혼 8년째로 접어들었고, 2세 계획을 실행 중이다. 쉽지 않은 과정이다. 좋은 소식이 있으며 좋고, 아니어도 어쩔 수 없지. 그대로 다 좋다. 아내가 남긴 편지에 적힌 몇 개의 문장들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생이라는 짧은 착시 속에서 아내를 만나고 사랑하는 일이, 일상을 함께 하는 매 순간이 감사하다.
02:27
각자의 세계 자체는 외부에서 접근할 수 없으며 세계 외부와의 상호작용은 의미 있는(useful) 잡음(noise)에 가깝다. 뇌는 자신의 생성형 모델과 상충하는 외부의 잡음에 끊임없이 반응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잡음은 필요하기도, 불필요하기도 하다. 그저 각자의 고유 세계는, 인생은 지독하게 고독하다. 그 사실을 수용할수록 자유로와진다. 현재가 똑바로 보이고 하루가 더 소중해지고 아내와의 관계는 돈독해진다. 삶은 보다 더 아름다와진다.
02:32
모든 주어진 상황을, 일어나는 사건들을 내가 온전히 선택한 것처럼 기꺼이 받아들이고 살아가자.
오래전부터 나는 틈만 나면 떠나야겠다 생각하곤 했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 느닷없이 자전거를 몰고 서해바다를 보러 한강을 나서는 일도, 남녀의 헤어짐에 뚜렷한 사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적정한 시기에 고개 숙여 헤어짐을 고하는 일도, 창밖으로 벚꽃이 피어오르면 벌떡 강의실을 나가 사진기를 메고 홀로 고속버스에 몸을 싣는 일도, 녀석들의 오래된 애정에서 비롯된 비난과 욕설에 대하여 구태여 변명않고 무리를 미련없이 떠나버리는 일도 모두 떠남의 면면에 대한 설명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는 타인의 말에 길들여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것이 정말로 다른 이들에 비해 더 길들여진, 혹은 길들여짐을 강요받았던 형태였는가에 대해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보면 눈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자신은 없지만, 내멋대로 해석한 나의 세계 속에서 나는 언제나 내 것보다는 타인의 준거를 빠르게 배우고 실용함으로써 보편원리(라고 멋대로 해석한 무언가)를 추구하려 애썼으며 스스로도 그런 종류의 일에 능숙했다고 자찬했었기 때문에 늘상 외부의 평가에 노출되어 있는 기분에, 이를테면 일종의 가짜가 되어버린 기분에 멋대로 젖어버리곤 했다.
한밤중까지 차곡차곡 쌓여 가는 결과물과 그 진행에 한참 도취되었다가도 텅 빈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늘어갔고 무언가를 잔뜩 애정하고 집착하며 갈망하다가도 진공상태가 되기 일쑤였다. 어느 날 목구멍 끝까지 그것이 우웩, 차오르면 나는 지체없이 몸을 일으켜 떠나곤 했다. 멀리 여행을 떠나거나 밀린 관계를 종료하기도 했고, 엄청난 양의 텍스트를 읽거나 혹은 쓰기도 했다. 보편원리가 아닌 개별의 고유성을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너는 어딜 향하고 있니. 어디쯤이니.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더욱 완벽하게 통제(overfit)하려 애씀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퇴적되는 불안과 공허를 내버려두고 다음으로 떠나가는 법(anti-fragile)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또한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틈만 나면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습관들이 내구성에 문제를 일으킨 시기도 있었지만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한번도 입밖으로 꺼내어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고 영원히 떠나가라고 말씀하셨다. 사소한 하나하나를, 과정을 집요하게 통제하고 규칙과 규격을 부과하고자 하셨지만 나의 결정과 그 결정에 따르는 결과를 온전히 감내하는 과정을 언제나 침묵으로 지지해주셨다. 절대 돌아오지 않고, 고향을 그리워하지도 않으며, 계속해서 떠나렴. 본인의 업보와 굴레에서 한 걸음 벗어나려 한 적이 없던, 시칠리아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했던 어머니가, 더 이상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전해주고 싶었던 필름 조각들은 무엇이었는지, 그것을 전하는 당신의 방식은 또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매 순간 떠나는 존재다. 이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과거의 어느 순간에서 현재의, 미래의 어느 순간으로. 매 순간 계속해서 떠나야만 하는, '지금 여기'에만 머무를 수 있는 존재다. 고로 매일 쓰는 그때의 모든 기록, 그때의 필름조각은 유서인 동시에 삶에 대한 증명이다.
세계는 딱히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희극도 비극도 또한 마찬가지다. 세계는 오로지 나의 해석 속에 있다. 내가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틀림이 없으며, 때문에 우리는 타인과 외부세계에 대하여 각자의 세계 속에서 절대적으로 고독하다. 서로의 털 끝 하나 이해할 수도, 당연히 소유할 수도 없으며 시공간을 축으로 계속 떠나가야만 하는 세계에서 '매 순간에 온전히 머무르는 일'은 그렇기에 무척 값진 일이다.
각자의 고독한 여정에 최선을 다하고, 최선의 행위들이 우연히 닿아 때로는 관계를 만들고, 그것이 견고해지면서 애정하고 행복해하고 고통받고 미워하고 상실하고 다시 일어서는 순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해야할 일은 뜻대로 소유하지 못하는 타인을, 본인을 미워하는 일이 아니라 우연히 무언가가 일어나는 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떠나가는 것. 시간이 걸리겠지만 분명 우리는 자신을 용서하고 온전히 떠나감으로써 '단 한순간이자 모든 순간'에 머무르는 일에 수렴할 것이다.
02:39 - Outro
아등바등 살 것 없어. 다들 왔다가는겨.
누구보다 치열하고 불성실하게 살아왔던,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굳게 믿는 윤직장님의 말은 디트로이트의 폐허가 된 길고 넓직한 하늘 구석에 고루하게 남아서 하얀 눈이 수평선을 따라 고요하게 내려앉을 때면 엉뚱하게도 지독스레 추웠던 뉴욕이 그리워지곤 한다.
희망찬 허무주의자여.
**설명
<시네마 천국>은 모든 누군가의 인생에 건네는 선물처럼 느껴졌던 영화입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아빠를 절대로 떠나보내지 않으려 애쓰던 '머피'가 할머니가 되어 병실에서 '쿠퍼'에게 '아멜리아'를 찾아 길을 떠나라 전했던 장면을 잊지 못합니다. <시네마 천국>도 비슷한 종류의 여운이 있었습니다. 스스로에게 항상 되뇌이는 문장과 장면들이기도 하구요. 그래서 오랫동안 썼던 글뭉치들을, 이런저런 계정과 플랫폼들을 뒤적거리며 조각들을 긁어 모아 자신에게 선물하는 <시네마 천국>을 구성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