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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령 Oct 10. 2021

불안한 3년차 이하 주니어를 위한 생각들

어떻게 처음을 보내는 것이 좋을까

3년 넘게 머무른 회사를 정리하면서 눈에 밟히는 주니어들에게 Verbal로 해줬던 꼰대 발언들을 잠깐 모아봤다.  

주니어, 특히 비기술 직군의 주니어는 필연적으로 회사의 수준에 본인의 수준이 종속된다. 좋든 싫든 회사는 노동법 지키고 급여 안밀리면 본인에 대한 책임은 다 한거고 본인 인생은 본인이 챙겨야 한다. 회사와 함께 성장한다는 건 다르게 말하면 회사 수준이 낮으면 본인도 그런 수준이 된다는 거고 그래서 첫 회사 잘못 고르면 큰일난다는 거다. 나중에 사이드 프로젝트 같은 걸로 메꾸기 힘들다. 돈 받고 딜리버리 한 거 아니면 시장에서 기본적으로 안 쳐준다. 한창 일하는 동안엔 모르지만 시장에 실제로 나가려고 하는 순간 알게 된다. 본인이 물경력이라고 느낄 정도면 이미 시장에서는 하자품이고 어떻게 면접까지 가도 일단 본인의 말에 소위 말하는 히마리가 없다.


비슷한 일 하는 업계 선후배들과 만나서 얘기해볼 기회 어떻게든 만들어야 한다. 그럼 본인이 경험하거나 아는 것들이 달라지고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는 걸 알게 될거다. 거기서부터 의지가 생기고 기회를 찾게 되는 거니까 빠를 수록 좋다. 특히 자기가 다니는 회사보다 이미지나 수준이 더 높은 회사의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꼭 들어보라. 의외로 일 자체의 수준보다 일을 둘러싼 시각과 전략의 수준에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3년차 미만은 한 가지라도 똑바로 할줄 알면 어떻게든 된다. 한 가지라도 잘 하면 유관 분야로 전환하는 것도 쉽다. 그런데 한 가지도 제대로 못하면 그건 나중에 큰일난다. 대부분의 사람은 첫 3년때 알게 된 걸 근본으로 깊이를 높이거나 범위를 늘리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짤 수밖에 없다. 결국 나중 가면 도전하고 싶다고 해도 안 받아준다.


10년차 이상 시니어들이 3년차도 못되는 주니어들 상대로 나이스하게 하는 건 본인이 핸들링 안하는 입장이거나 다른 팀이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굳이 진지하게 뭔가를 판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 생기면 실제로는 평가 냉혹하게 하는 게 시니어다. 주니어들이 모르는 사석에서 무슨 얘기 나오는지 알면 놀랄 것이다. 결국 중간급한테 욕먹고 시니어한테 하소연해봐야 대부분 본인 평가 더 떨어진다. 물론 중간급이 엄청나게 문제인 경우도 있는데, 시니어들에게 인정받는 중간급이 본인을 가혹하게 다룬다면 그건 본인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봉은 매년 꾸준히 상승시키는 것이 중요하고 이직 때 빵 높인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무슨 동결이니 회사 사정이 어려워서 어쩌니 하면 망하는 거다. 왜냐면 그 회사가 아니라 다른 회사에서 본인을 쓸 때는 본인을 실제로 써보기 전에는 실제 실력을 모르니 결국 직전 연봉에 얼마 붙여 사인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연봉을 조금씩 높여놔야 하고,다니고 있는 회사 진짜 토나와서 비상탈출 하고 다른 곳에 갈 때 연봉 동결같은 조건까지도 감수할 수 있다. 연봉 ‘삭감’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본인의 실력에 대해 의문부호가 있는(그런데 본인이 다니는 회사보다 확실히 더 나은 여건의) 회사라면 삭감 카드 진지하게 쓸 수 있다.


팀장에 대한 의리나 동료에 대한 애정으로 본인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누르면 안 된다. 주니어의 불안감을 합리적으로 해소시키는 것이 회사 HR의 실력이고, 기본적으로 팀장에게 주니어는 경영진의 인질이다. 그래서 그 문제로 사람이 빠져야 돌아가는 시스템이 깨지고, 시스템이 깨져야 사람이 더 빠지든 조직구조가 바뀌든 어떤 식으로든 변화의 압력이 생긴다. 결국 아니다 싶으면 움직이는 것이 중장기적으로는 윗사람에게도 더 낫다. 물론 본인이 실제로 그럴 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게 하는 건지 아닌지는 지금 회사의 시스템이 아니라 시장이 판별해줄 것이다.


주니어는 처음에는 뭐가 정답이고 뭐가 오답인지 모른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마구 일을 하는데, 점점 친구나 지인들 사이에 커리어 수준의 차이가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내가 뭔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진짜로 번아웃이 오게 되고 다른 판을 짜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주니어가 이직을 위해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첫 시작이다. 그런데 이력서 쓰는 데 보면.. 그제서야 본인이 시간을 어떻게 낭비했는지 무자비하게 깨닫는다. 이력서에 쓸 말이 없고 포트폴리오 짜기도 쪽팔린다. 면접 보는데 커리어 약점 찔린다. 어떻게 넘어가서 겨우 협상 하는데 현업 평가가 어정쩡해서 동결이나 5% 제안 받는다. 그때 되면 이 모든 것들 — 나를 둘러싼 현실인식이 격변하고. 이런 얘기들이 무슨 의미였는지 그때 진짜로 깨닫게 된다. 내가 그랬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 경우는 첫번째 이직 때 ‘시장성이 없는’, 즉 지나치게 버티컬한 분야에 있어서 선택권이 없었다. 그리고 두번째 이직은 커리어를 2년이나 망치고 간신히 네트워크를 통해 빠져나오게 되었다.


회사는 회사고 개인은 개인이다. 무슨 야근이나 이런 걸 하냐 아니냐 그런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회사 일이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면(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보다 열심히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텐션이 떨어지는 거다. 보다 중요한 건 그걸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것이다. 지금 난 뭘 할 수 있나? 1년 뒤에는 뭘 할 수 있나? 3년 뒤에는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디렉터도 팀장도 없으면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다른 회사를 알아볼 때 나는 뭘 했고 뭘 잘하는 사람이라고 할까? 무엇으로 먹고 살고 무슨 경험을 더 쌓을까? 이런 고민이 있어야만 결국 노력을 정확하게 하고 잔류를 하든 어떻게 하든 자신에게 최상의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하여튼, 모든 주니어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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