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에서 월급쟁이 짓 10년 이상 하다가 CEO하신 분을 본 적이 없다. 공통된 패턴이 있는 것 같은데 깨달은 것을 좀 적어둔다.
1. 회사 경험 자체가 적은 의사결정자들은 '일을 잘한다'는 것이 어떤 타입의 사람을 얘기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사람을 쓸 때 옥석 가리기가 안 되고 에너지 레벨만 높거나(쉽게 말해 으쌰으쌰 하는 사람), 어떤 절박한 '처지'가 있는 사람(뭐든 하겠다고 외치는 사람)을 선호한다. 그런데 회사 일은 의지나 절박함은 일정 수준 이상이면 충분하고 실제로는 테크닉과 인사이트가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의지는 일이 안 풀리면 쉽게 꺾이기 때문에, 이런 걸로 실력 부족을 커버하려 들면 결과적으로 남는 게 없다.
2. 배우면서 할 일과 미리 아는 사람을 써서 할 일을 구분을 못한다. 특히 앞단 전략이나 프레이밍에 관한 문제는 적어도 몇명, 심하면 몇백명에 관련된 것들이고 '최소' 5년차 이상이 섬세하게 진행해야 출혈이 적은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의지가 투철한(사실 의지가 투철해 보이는 말을 하는) 신입이나 주니어에게 시켜놓는다. 여기에 억지 무대뽀 정신이 결합하면 환장의 콜라보가 된다.
3. 실제 시행착오는 해본 사람들이 아는 거고 시행착오와 태도(또는 실력)의 부족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의사결정자가 회사 경험이 작으면 본인의 진취성과 자존심 때문에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운다는 말을 쉽게 하는데, 문제는 실제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합리적으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시행착오가 나면 시행착오가 아니라 태도나 실력의 문제라고 착각하고 엉뚱하게 조져서 조직 분위기를 박살내게 된다.
4. 회사 내의 투명성에 대한 기괴한 집착이 있다. 회사 일이라는 게 매사가 투명하다고 좋은 게 아니고 알아야 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것을 적시에 알면 된다. 그리고 슬랙 다 오픈해 놓는다고 투명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 걸 투명하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슬랙 대신 카카오톡이나 텔레그램이나 담배타임으로 진짜 어두운 얘기가 오가고, 오히려 투명성에 대한 기괴한 집착이 실제 문제를 더 찾고 해결하기 어렵게 만드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5. 일을 벌이는 걸 일을 추진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마무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른다. 일이 '흐지부지'한 것만큼 나쁜 상황이 별로 없는데 자꾸 흐지부지된다. 그 결과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는 말이 나오고 사람들 전체의 에너지 레벨이 낮아지며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대응하지 않는' 보수주의가 조직을 장악하게 된다.
6. 실무와 전혀 상관없는 - 무형의 '스파크' 내지는 '융합' 같은 식의 개념이 들어간 조직개편을 자주 한다. 대부분 1년에 2번 이상 하고, 심하면 분기에 한번 꼴로 조직개편을 해서 실제 조직개편이 갖는 무게가 깃털이 되고 조직과 전혀 상관없는 일처리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7. 지금까지 언급한 1~6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실제로 일 좀 하는 사람들이 조직에 애정을 잃기시작한다. 동시에 이 문제들을 매니저 중 누군가를 칼잡이로 내세우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든다. 결과적으로 단도리를 쳐야 하는 매니저는 당근이 없고 채찍만 있는 상황에 빠지고 사장만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래봐야 소용이 없고 오히려 매니징까지 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