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10대 중반부터 20대 후반까지 이따금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이럴 때는 신문이나 뉴스를 봐도 누군가 자살했다는 소식만 가득하다. 잠들기 전 눈을 감으며 내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떠한 긍정도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들지 못한다. 그러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살고 있는 내가 보인다. 나는 죽을 용기가 없어 살고 있는 겁쟁이였다.
대학원 시절, 한 방송사의 ‘시민영상 아카데미’에서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 기획은 ‘내가 하고 싶은 건 뭘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그 나이에 사는 대부분의 청춘들이 하는 고민이었다.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임용된 친구를 만났다. 그녀는 살면서 시험이나 취직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교사 임용 시험을 준비하면서 지역 선택을 고민하거나 탈락을 걱정한 것이 전부였다. “스스로를 믿고 사랑해라.” 내 질문에 대한 친구의 대답이었다.
이 얼마나 초등학교 교사다운 대답인가. 긍정을 이야기하는 어느 책에나 있는 말이다. 영상의 마지막을 친구의 대답으로 편집했지만 방송용이었다. 그녀가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좋은 대학을 나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다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난 도저히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었다. 어디 예쁜 구석이 있어야 사랑스러울 것 아닌가. 취업이 걱정이라 ‘굶는과’라는 별명을 가진 학과를 졸업했다. 교육대학원을 선택했지만 중등교사 임용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다. 지방의 작은 국립대를 나와 임용에 합격했다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반드시 교사가 되어야 하는 특별한 포부도 없었다. 중학교 국어 교사가 되고 싶은 이유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이기 때문이었다. 교사의 길을 포기하고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첫 직장에서 사표를 냈다. 특별한 경쟁 없이 추천으로 들어간 기숙사 조교 자리였다. 다른 사람들과는 잘 지내면서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까칠한 5급 사무관에게 대들고, 직장 동료와 다투기도 했다. 논문을 쓰지 못해 대학원 석사 수료 상태였다. 7급 계장님 책상 위에 사표를 놓고 퇴근해 버렸다. 3일 동안 붙잡던 분들을 설득한 끝에 겨우 그만둘 수 있었다. 간절히 원하던 퇴직이었는데, 집에만 있다 보니 또다시 병이 도졌다. 겨울 내내 죽고 싶다는 생각과 씨름하다 봄을 맞이했다.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이름을 바꿨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논문을 썼고, 딱딱한 석사논문 표지에 새 이름 석자를 박았다.
-관계 맺기 연습
대학원 졸업장을 받고 조교를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학과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탓에 선후배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대학 선배들과 술잔을 기울인다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엉망이었던 대학 생활을 다시 만들겠단 생각으로 덤볐다. 지옥에 다시 들어가지 않고서는 그곳을 낙원으로 바꿀 수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만 하는 성격이 문제였다. 학사 지도, 행사 기획, 예산 사용, 학생 민원 처리, 교수 관련 업무 등 대학 조교가 해야 하는 일을 다양하고 많았다. 다른 사람과 나누거나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다. 많은 일을 혼자서 완벽하게 처리하려고만 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짐을 잔뜩 짊어진 채 완벽이라는 유리 상자 속에 제 발로 들어간 꼴이었다. 8개월을 그렇게 지냈다.
네 계절을 보내고 주위를 둘러보니 유리 상자에 문이 생겼다. 도와주겠다는 후배들, 난 이렇게 했다며 조언하는 선배들이 들어왔다. 사람들이 점점 늘자 문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든 함께 이야기하고 도움을 청했다. 거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마움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작은 것이라도 나누고 함께 웃었다. 어느덧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소통의 즐거움이 지옥을 천국으로 바꿨고 내 가슴을 뛰게 했다.
가슴 뛰는 일을 해야 청춘이라 믿었다. 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치열하게 물었다. 20대의 끝자락에 답을 찾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닌 ‘어떻게 하느냐’에 있었다. ‘어떻게’의 답은 ‘소통’이었다. 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통했다. 실수나 상처도 있었지만 견디는 과정에서 더 단단해짐을 느꼈다.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연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관계은행계좌의 잔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Stephen R. Covey) 박사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감정은행계좌’에 비유했다. 감정은행계좌는 신뢰의 정도를 나타낸다. 다른 사람과 좋은 감정을 쌓았을 때 늘어난 신뢰 잔고를 실망했을 때 꺼내 쓴다. 신뢰가 두터울 경우 관계 회복이 쉽지만 잔고가 없으면 조그만 실수에도 크게 실망하게 된다.
이를 통해 나를 중심으로 한 ‘관계은행계좌’를 생각했다. 내가 가진 관계 계좌는 매우 다양하다. 잔고가 많은 계좌도 있고, 잔고가 적은 계좌도 있다. 어떤 관계는 높은 이자를 주지만 낮은 이자를 주는 관계도 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관계은행계좌’에 얼마의 잔고를 가지고 있을까. 가슴이 뛰고 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는 내게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관계은행계좌의 잔고가 많아야 행복할까? 그렇다면 그렇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 나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 사이에서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이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마이너스 계좌를 갖지 않으려면 자신에 대한 사랑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관계 맺기가 즐거운 요즘은 나를 마음껏 사랑하고 있다. 난 내가 참 좋다. 이런 생각의 힘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발전하는 중이다.
내 생각에 공감한다면 모두들 ‘관계은행계좌’의 잔고를 살펴보길 바란다. 아니, 그전에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부족하다면 방법은 있다. 유리 상자 안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면 된다. 아주 작은 눈짓이라도 좋다. 어느 순간 삶이 즐거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