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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리아 Jan 22. 2024

나의 어두운 밤을 밝히며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을 읽고

책을 처음 펼쳤을 땐 좀체 몇 장을 읽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새비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렇게 삼천이와 그녀의 병들었던 어머니와 그를 돌봤던 새비네와 아픈 새비를 돌봤던 삼천이와 그녀의 딸 영옥, 영옥의 딸 미선과 미선의 딸 지연에 이르기까지 백 년이 넘는 세월 속에 담긴 엄마와 딸을 읽었다.




나에게도 엄마와 딸이 있다. 나의 엄마는 계모다. 비슷한 말로 의붓어머니나 새엄마가 있다. 그런데도 뭔가 비속어처럼 들리는 것은 계모라는 단어에 전래동화 속의 악녀들이 숨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녀에 대한 기억은 내가 일곱 살 때부터다. 일곱 살의 여자아이에게 새엄마는 마치 계모와 같은 존재였다.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마을의 아낙네들은 나를 볼 때마다 나쁜 아버지와 계모, 불쌍한 생모와 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일곱 살의 어느 날, 나는 마루에 기대 부엌일을 하는 계모에게 물었다. ‘엄마는 나를 몇 살에 낳았어?’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내게 말했다. ‘스물세 살.’ 그날 밤, 나는 할머니에게 이르듯 이야기했다. ‘할머니, 아빠가 데려온 그 여자가 나한테 거짓말을 했어. 나를 낳았대. 스물세 살에. 안 낳은 거 다 아는데.’ 내가 그녀에게 가한 첫 번째 폭력이었다.

새엄마는 김밥을 참 맛있게 쌌다. 초등학교 첫 소풍날, 내게 김밥을 싸 줄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엄마가 둘이냐고 수군대는 동네 친구들은 아무래도 괜찮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새엄마는 내게 그 정도였다. 낳은 사람은 아니지만, 엄마처럼 나를 챙겨주는 존재. 가끔은 내 생을 억울하게 하는 존재. 사춘기 시절에는 속이 상할 때마다 일기를 썼다. 산골의 아낙네들에게 들은 불쌍한 생모와 나, 나쁜 아버지와 계모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지어낸 일기가 수첩 한 권을 채웠다. 어느 날 그런 일기가 있다는 걸 들켰다. 내가 그녀에게 준 두 번째 상처였다.

그녀는 남편인 나의 아빠와 자주 싸웠다. 남편에게 맞는 와중에도 그녀는 낳은 아이와 낳지 않은 아이를 지키기 위해 팔을 벌려 아이들을 안았다. 어릴 땐 그저 싫기만 했던 그 전쟁은 사춘기가 지나자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어쩌다 저런 남자를 만나게 된 걸까. 그녀는 벗어나고 싶지 않은 걸까. 그의 딸인 내가 밉진 않을까. 대학생이었던 어느 날, 그녀에게 물었다. ‘재미있지만 가끔 폭력적인 남자와 무뚝뚝하지만 가정에 충실한 남자가 있어.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어떤 남자와 살 거야?’ 그녀의 대답은 굉장히 의외였다. ‘난 너희 아빠처럼 재미있는 남자랑 살 거야. 술만 안마시면 가정에도 잘하잖아. 재미없는 건 싫어.’ 그녀는 나의 아빠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 사랑으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나를 키웠던 거다. 그녀는 내가 듣고 읽었던 동화 속의 계모가 아닌, 사랑으로 가득 찬 한 여인이었다.




결혼한 나는 이란성 쌍둥이를 임신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 어떻게 쌍둥이가 생겼냐며 친정엄마인 그녀가 가장 기뻐했다. 임신 6개월, 쌍둥이 중 한 태아가 곧 죽을 거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할지 몰라 병원 로비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이대로는 아이가 죽을 건데 O 병원에 태아 복수 전문의가 있으니 원하면 의뢰서를 써주겠다 했다고. 의뢰서를 받지도 않고 나왔던 내게 엄마는 가만히 있지 말고 어서 무엇이든 하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 정신이 들었다. 아픈 아이를 낳아 수술시키고, 병원에 다니는 동안 그녀는 나와 함께했다. 패혈증까지 견딘 아이가 집에 돌아왔다. 이제 나 혼자 두 아이를 돌봐야 했다. 짐을 꾸려 현관을 나서던 엄마는 나를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아픈 아이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온전히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너 고생해서 어쩌니...’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가 낳은 진짜 딸이 된 기분이었다. 그날부터 그녀는 나의 생모가 되었다.

‘-맛이 좋아요. 아즈마이.’(최은영, 『밝은 밤』, 문학동네, 2021, 64쪽) 백정의 딸로 살아온 삼천이에게 새비가 건넨 말이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새비가 삼천이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 것은. 그 누구도 삼천이가 만든 밥을 먹으며 맛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백정의 딸인 그녀를 피했을 뿐이다. 삼천이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란 생각이 사춘기의 나를 외롭게 했다.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는 시간은 이십 대에도 계속됐다. 그러던 내가 서른셋에 아이를 낳고 온전히 나를 걱정하는 말을 듣게 됐다. 나의 계모에게. 그날부터 그녀는 내 생의 기둥이 된 것 같다. 언제라도 기댈 수 있는 가장 튼튼한 기둥. 외로운 사람에게 진실한 한마디 말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나의 딸은 조금 일찍 태어났다. 태아 20주부터 발견된 작은 종양이 손쓸 수 없이 커진 탓이다. 종양으로 부풀어 오른 배는 수술 후 납작해졌고 몇 번의 생사를 오간 뒤 온전히 퇴원할 수 있었다. 아픈 아이를 낳으며 슬픈 것도 없었다. 걱정이 가득 차올랐다가도 아이의 상태가 괜찮으면 안도하는 하루가 계속됐다. 아기는 열심히 먹고 잘 잤다. 작은 아이가 제게 주어진 생을 살아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었다. 과거에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날들을 살았던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딸아이가 얼마 전 심장 시술을 받았다.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좌심방과 우심방 사이에 작은 구멍을 막는 일이었다. 5년 9개월을 살아낸 아이는 세 번째 중심정맥관을 뚫어야 했다. 아이의 가슴과 배에 자리한 선명한 수술 자국에 이어 하나의 상처가 더해졌다. 주치의는 이 상처들을 자랑스러움이라 불렀다. 병마와 싸워 이겨낸 승리의 흔적. 나는 딸에게 늘 이야기한다. 이 상처들은 네가 용감한 아이라고 말해주는 증거라고. 너는 대단하고 용감하다고.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고.




언젠가부터 나는 내 어두운 밤에 대해 꼭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 밤이 있었기에 나의 엄마와 딸을, 그리고 나를 사랑하게 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왜 그런 어두컴컴한 밤을 굳이 이야기하느냐고, 부끄러운 상처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럼 난 내 딸에게 말해왔듯 얘기할 거다. 살아보니 그 어두컴컴했던 밤에 달과 별이 반짝이더라고. 그 밤이 너무나 밝은 밤이었더라고.

소설을 펼치지 않은 지 오래다.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만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밝은 밤’을 읽고 나서, 영옥이 삼천이를 얘기하듯 나도 내 엄마를 얘기하고 싶어졌다. 미선과 지연이 상처를 극복했듯, 나도 그렇게 내 어두운 밤을 밝혔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조심스럽고 용기 있게 나의 밤을 밝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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