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리아 Apr 24. 2024

건기와 우기

길고 긴 번아웃 속에서...

브라질 북동쪽에 '렌소이스 마라넨지스'라는 사막이 있다. 이 사막에는 1월부터 6월까지, 엄청난 폭우가 내린다. 일 년의 절반인 우기 기간에 내리는 비가 수천 개의 물웅덩이를 만든다. 이 호수에는 물고기와 파충류도 사는데, 건기가 찾아와 호수가 말라버리면 생물들이 모두 사라진다.




마흔이 시작되고 긴 머리를 잘라버렸다. 이 결심도 아마 충동적인 감정에서 나왔을 거다. 3월부터는 엄청난 번아웃이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5분이 마치 1시간처럼 흘렀다.
.
좋은 생각만 해보려 노력했다. 나를 인정하고 격려했다. 아주 숨차게 아이들만 바라보며 8년을 달렸으니 좀 쉬어도 된다고 토닥였다. 지금 필요한 건 나보다는 아이들의 성장이다. 나는 한 가지씩 잘하는 사람이니 아이부터 하나씩 잘해나가면 된다. 나는 그다음에 생각해도 된다.
그런데도 자꾸 내게 욕심이 생겼다. 뭔가 더 잘 해내는 나를 만나고 싶었다. 마음은 자꾸 미래로 내달렸고, 생각을 따라갈 수 없는 나는 조급해졌다.
.
밖으로 나가보려 노력했다. 일주일에 한 번 도서연구회 수업을 신청했다. 아이들 하교 시간에 망설이다 동화작가 수업도 저질렀다. 사람들과 지내보려 애썼다. 작은 영감의 조각이라도 주워보려 애썼다. 작은 생각이라도 붙잡아보면 글이 될까, 내가 될까 싶어 끙끙댔다.
그런데도 잡힐 듯 말 듯, 잡히지 않았다. 동화를 써보고 싶다는 소망은 필력 없는 밑천을 내보였고, 아무것도 아닌 나를 알게 했고 절망으로 밀어넣었다.
.
병원의 도움을 받았다. 나의 예민한 감각들을 편평하게 다독거리는 과정들. 줄었던 약이 다시 늘었다. 오르락내리락 거리며 널을 뛰던 감각들이 일렬로 늘어서 침착해지는 과정. 아이들에게 크게 소리치지 않고 한번 참아내어 말로 표현하기 위해, 참다 참다 무너져 엉엉 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무작정 밖으로 도망치지 않기 위해 나는 병원을 찾았다.
일렬로 늘어선 감정선이 팽팽해져 어느 순간 툭. 끊겨 버리는 건 아닐까. 감정의 양 끝엔 누가 있을까. 누군가의 엄마이고 아내고 며느리이고 딸인 한 여자와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내가 서로 팽팽하게 줄을 당기고 있는 걸까. 이건 서로 내 인생이라며 욕심부리는 중일 지 모른다. 내가 너무 탐이나서.
.
'나'이고 싶다는 생각은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 말도 쓸 수 없게 했다. 4월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봄빛은 찬란한데 내 마음은 극심한 황사로 앞이 보이지 않는다.




모래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브라질 어느 사막의 건기. 메말라가는 나의 오늘이 그 사막의 건기와도 같단 생각이 들었다. 건기를 버티며 비가 언제 오려나 기다리는 모래 속 작은 물고기(호수에 사는 생물들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와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
아주 오래 참아왔던 작은 빗방울 같은 생각 한 조각을 써내려 본다. 나의 우기를 기다리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