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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수 May 15. 2018

내 이름이 파도와 같다면

2010, 인터라켄


온화한 물가. 내 이름의 뜻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딱히 좋지도 싫지도 않았다. 그저 ‘온화할 민’에 ‘물가 수’를 붙여 완성된 ‘민수’라는 이름에 ‘이’라는 성까지 더해져 너무 흔하고 무난한 이름이지 않나 싶은 아쉬움이 조금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이름이 싫어졌다. 아마도 그동안 연애 진입에 실패했던 순간들의 기억이 누적되면서 생겨난 싫음이리라. 이름 덕분인지 이름 때문인지 잔잔한 물가와 같던 나의 마음은 한마디 말에도, 순간의 표정에도 요동치기 일쑤였고, 헷갈리게 하는 사람은 없지만 헷갈리는 나는 있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온화하던 마음이 한 번 요동치고 나면 ‘이 또한 언젠가 지나가기라’의 그 언젠가가 오기 전까지 나의 마음은 그저 어지럽고 괴로운 물가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저 잠깐 이야기 나눴고, 순간 웃었을 뿐인 무고한 사람들이 온화한 물가를 흔들어 놨다는 누명을 쓰고서는 물결이 잠잠해질 때까지 부담을 느껴야 하는 부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게 다 ‘이민수’ 때문인 것이다.


그렇게 나의 연애하지 못함에 대한 이유를 또 하나 만들어냈다. 나의 마음은 마치 나의 이름처럼 온화한 물가와도 같아서 너무 쉽게 일렁인다고. 그래서 나의 마음은 항상 앞서 나가고 또 그만큼 어긋난다고. 그렇게 나의 이름을 탓한다.


그러다가 생각한다. 만약 나의 이름이 이민수가 아니라 ‘이파도’나 ‘이홍수’ 같은 것이라면 어땠을까. 잔잔하게 있다가 작은 빗방울, 희미한 바람에도 일렁이는 온화한 물가가 아니라 비가 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물결을 반복하는 파도나, 비가 오면 오히려 제 갈길로 더욱 세차게 나아가는 홍수였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나의 마음이 쉽게 일렁이는 일도 없거니와, 그런 작은 일렁임 하나하나에 마음이 어지러워 괴로워하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무고한 사람들이 부담을 느껴야 하는 부당한 상황도 없지 않았을까.

나의 이름이 파도와 같다면 어땠을까. 물론 알고 있다. 이름 탓이라도 할 수 있음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사실을.


2014,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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