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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수 Oct 07. 2019

추억 장소로의 여행

어쩌면 나는 어떤 추억의 장소에 갈 때의 내가 대단히 차분하고 정적이며 사색적인 동시에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가 추억의 장소에서 예전 그대로의 변하지 않은 모습들을 보게 되면 차분하고 정적이며 사색적인 동시에 감수성이 풍부한 시선으로 음미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추억의 장소에서의 내가, 스스로 음미라고 여기는 그런 감상만을 차분하게 이어갔던 것은 아니다. 그 감상의 중간중간의 어떤 시점에 이르러서는 입술 사이로 마지못해 새어 나오던 감탄사들 사이에 은근슬쩍 추억에 대한 감상평을 한 마디씩 내뱉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목을 가다듬기 위한 헛기침도 없이, 주의를 끌기 위한 헛기침도 없이, 사람이 감출 수 없는 것이 마치 가난과 사랑과 기침, 그리고 감상평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 감상평은 내가 스스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감출 수가 없어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것일 뿐이라는 것처럼 말한다.

“이야... 여긴 그대로구나.”

그리고는 마음에 대단한 평안함이라도 얻은 것처럼 숨을 깊게 들이쉬고서는, 아무래도 깊게 들이쉰 숨이라는 것은 많이 들이쉰 숨일 수밖에 없다 보니 숨을 내뱉는 데에도 한참의 시간을 들이면서는 그런 것을 여유라고 생각한다. 마치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촌각을 다투며 치열하게, 뒤를 돌아보기는커녕 옆을 볼 시간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로 여유라고 규정한 그 순간을 음미하려고 든다.

“이야 여긴 정말... 그대로구나.”

그렇게 추억의 장소를 ‘그대로인 곳’이라고 끝없이 선언한다. 이곳이 그대로라고 말할수록 나는 이곳에서 지낼 때의 나와 어딘가 달라진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런 느낌에 취할수록 이곳의 그대로임이 더 잘 보이는 것만 같다. 추억의 장소에 오는 일, 그 한결같은 모습을 보는 일,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 모여 좋은 여행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편안한 마음이라는 것이 언제까지고 계속되지는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대로인 모습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다음 그대로인 모습을 찾기 전까지의 공백이 길어지자 그 틈으로 그대로이지 않은 모습들이 파고든다. 달라진 것, 없어진 것, 새로 생긴 것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채우자 편안했던 마음은 더 이상 편하지가 않았다. 그리고는 깨닫는다. 지금 이곳에서 가장 그대로인 것은 나였다.

“이야 정말 그대로구나...”

지금의 이 도시에 진행된 발전이라는 것을 보고 있으면, 발전은커녕 변화라고 칭할 것조차 없는 것 같은 나의 모습도 보인다. 그대로이지 않은 이곳의 모습들과 대비되어서인지 나의 그대로임이 더욱 선명하게 부각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언가를 한다고 하는데도 도달하기를 원하는 모습에는 가까워지지가 않는 것을 보면 마치 누가 정해놓은 안전거리 같은 것이 있기라도 해서 원하는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언제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게 싫어서인지, 나만 변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싫어서인지 때가 되면 아득바득  추억의 장소를 찾아가고, 아등바등 그대로임을 찾아낸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옛 모습이 그립다며 차분하고 정적이며 사색적인 동시에 감수성이 풍부한 시선으로 진해를 둘러본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든 옛 모습을, 변하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려고 아등바등 애를 썼던 것 같다. 우아하게 물 위에 떠있기 위해서 물 아래에서는 열심히 움직여야 하는 어떤 새처럼, 마음의 편안함을 위해서는 추억 장소의 그대로임을 열심히 찾아야만 했던 나였다. 변하지 않은 것은 나 뿐만이 아니라고, 이곳의 그대로임에 비하면 나는 변했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차분하고 정적이며 사색적인 것보다는 보다 적극적인 아등바등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지금은 다만 그대로임이 눈에 잘 들어오는 시기일 수가 있다. 추억의 장소에 처음 도달하였을 때 그곳의 그대로임이 눈에 잘 들어왔던 것처럼, 살아가는 과정에도 그런 시기가 있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닐 수도 있다. 이제는 점점 변화라는 것이 실제로 어려운, 굉장한 아등바등이 아니고서야 그대로일 수밖에 없는 시기일 수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어떤 추억의 장소에 갈 때의 내가 대단히 차분하고 정적이며 사색적인 동시에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몰라보게 달라져서, 그것에 비하면 추억 장소의 그대로이지 않음은 너무 작은 차이라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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