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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ynthia Apr 26. 2020

코로나 시대의 여행법

상상력 넘치는 작가들을 통해 발견한 새로운 '여행법'의 가능성

하늘길이 막혀버린 지금, 낭만과 설렘의 공간이었던 공항마저 검역의 현장으로 변해버린 지금, 마치 상상도 못했던 미래에 다다라 있는 듯 하다. 마음만 먹으면 비행기를 타고 주말을 이용해 외국을 다녀올 수 있다는 여유를 가지며 살아왔는데, 그건 이미 외계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듯 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사람들은 미디어의 홍수에 빠져버렸다. 넷플릭스의 주가가 상승세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류의 오랜 유산이자 영감의 원천력 '책'에 주목했다. 많은 영화나 드라마들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누군가의 편집과 기획에 의해 시각적으로 발현되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기는 하나 아쉬운 점이 반드시 존재한다는 점을 깨달을 뿐이었다.


포르투갈과 폴란드를 여행하며 새로운 시각의 '여행'을 알려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후에서야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로 자리잡은 페르난도 페소아는 남아공 더반 유학시절을 제외하곤 평생을 포르투갈 아니 리스본 밖으로 나가본 적도 없었다고 하는데, 그는 '이명(異名)'의 가면을 쓰고 '상상의 힘'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신개념 여행법을 발명해냈다. 그의 유작 <불안의 책>에서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을 할 필요 없이, 상상만으로 세계 곳곳을 여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행이라는 행위는 시간과 돈 낭비일 뿐이라고 주장한 그는, 이른바 '여행극혐자'이기도 했다. 얼마나 여행을 극혐했으면 리스본에서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는 바닷가나 근교 도시로의 여행도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폴란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무려 3명이나 배출해낸 문학강국이기도 하다. 2018년 노벨 문학상과 맨부커상을 수상한 올가 토가르추크의 <방랑자들>을 늦게나마 구해다 읽어보았다.


이 두 작가가 전해주는 새로운 여행법의 가능성에 눈을 떴다. 타의에 의해 여행이 금지되어버린 코로나 시대에 발견한 새로운 여행법, 생각보다 너무나 흥미롭고 재밌는 경험이었다.


<불안의 서> - 여행 극혐론자의 '상상 여행법'

리스본을 방문한 목적 중 하나가, 페소아의 이야기와 그가 몸담았던 도시 곳곳의 스팟들을 찾기 위함도 있었는데, 정작 그가 '여행 극혐론자'였다는 것을 알고는 약간은 허망했다. 이렇게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리스본의 매력을 알린 그가 실상은 여행자로 북적이는 리스본의 모습을 혐오했다니.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어쩌면 그게 페소아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열몇시간의 비행이면 지구 반대편으로 떠날 수 있는 시대, 어쩌면 우리는 상상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서 '브라지레일리아' 커피숍 앞에 앉아서 페소아 동상 옆에 앉아본다든지, 페소아가 말년에 살았던 집을 방문해 본다든지. 사실 어쩌면 그런 경험은 사실 페소아의 정신에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리스본의 거리를 걸으면서 약간의 죄책감 같은 것도 들었다. 허물어지는 벽, 낡아버린 집들로 가득한 알파마 지구의 골목, 밖에 늘어놓은 남의 집 빨래들, 포르투갈 사람들은 그렇게 늘어놓은 빨래가 비에 홀딱 젖어버려도 말려서 그대로 입는다는 tmi까지. 도시의 속살을 알아간다는 즐거움도 묘한 미안함에 이내 사그라들기도 했다.


여행지에서 만났던 친구는 '그러려고 1박에 2유로씩 도시세 낸 거니까 맘편히 즐기라'는 말을 듣고는 약간 안도감이 들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여행객으로 보는 여행지의 모습은 일정 부분 재단되고, 편집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일 뿐이니까. 

 *리스본에서는 숙박시설 체크인 시 1박에 2유로씩 도시세를 지불해야 한다.


리스본 시내에서 전차로 불과 1시간(지금은 자동차로 무려 20분!)이면 갈 수 있다는 신트라와 카스카이스 해변도 그는 상상으로 여행했다. 그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여행 자체를 혐오했다기보다 이동수단이나 이동시간에 대한 반감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근교 도시뿐만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인도양까지, '페소아'가 아닌 다른 자아의 입으로 다녀온 여행기를 들려준다. 


어떻게 보면 약간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의 자아를 갖고 비행기에 올라 실제로 그 땅을 밟고 여행기를 쓴 것이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자아를 만들어내어 상상으로 여행을 한다고? 페소아의 '이명놀이'는 꽤나 치밀하고 섬세했기에,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부분이 많이 남아있다. SNS로 부계, 삼계를 파서 멀티 자아 놀이를 할 수 있는 21세기. 시대를 몇십년이나 앞서갔던 페소아의 자아놀이와 우리의 멀티 자아는 어쩌면 닮아있지 않은가?


페소아가 즐겼던 브라지레일리아의 커피 또한 대서양을 건너 브라질에서 온 원두로 만들어졌다는 것! 결국 현대사회는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을 감내해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겠다는 여행자를 막을 수도 없고, 또 그 여행수익을 통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이다.




<방랑자들> - 스쳐가다가도 어느 순간 교차하게 되는 여행의 마법

백여명이 넘는 화자들이 각각 자신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이야기는 아주 길기도, 어떤 이야기는 반페이지도 되지 않는 분량이다. 곳곳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라 약간 정신이 없다. 


아까 나왔던 이야기와 이어지며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듯, 이어서 계속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첨에는 뭔소리지? 싶다가도 아 아까 이야기하던 그 사람이 이 사람이네?왜 여기 있는거지?어쩌다 저기까지 간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할 때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여행지에서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과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도, 그 사람 또한 목적지를 가지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을 테고, 그 사람에게도 나는 그런 존재일 것이다. 여행지에서의 스침, 돌고 돌아 어느 지점에서는 다시 만나는 듯한 이상한 기분까지도. 여행지에서 느꼈던 신선한 교차의 순간들을 <방랑자들>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가본 적도 없는 크로아티아와 그리스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단순히 그 곳의 풍경이나 경치를 그려내는 것 이상으로, 여행지에서 일어났던 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여행지의 인상이 더욱 생생하게 남는다. 각 화자들의 이야기는 마치 추리소설을 읽는 듯, 한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백여명의 화자가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니, 그럼 이 책이 하나로 엮일 필요가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올가 토가르추크의 마법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각 이야기를 하나의 수필이나 소설로 엮어냈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여러명의 화자가 교차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서술을 통해 마치 여행을 하면서 기차 옆에 앉은, 비행기 옆에 앉은 낮선 사람의 여행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처럼 호기심과 흥미를 증폭시킨다. 굉장히 부끄럽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나올 때는 남의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보는 흠칫한 기분이지만, 어쩌면 화자는 이런 지점까지도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함에서 이야기를 풀어놓았으리라, 하는 아이러니도 발견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여행을 하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도 돈도 부족할 것이다. 여러 여행자가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만들어 내는 궤적들을 추적하다보니 이야기가 더욱 풍성하고 활발해지는 느낌이다. 구글맵을 옆에 켜놓고 화자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추적해 본다면, 아마 더 재밌어질지도...?




두 나라에서 각각 발견한 작가들이 알려준 신개념 여행법을 통해, 코로나 시대 이러한 '상상 여행', 그리고 '입체 여행'이 어쩌면 뉴 노멀시대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SNS으로 멀티 자아를 만들어서 각 자아들이 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여행이라든가. 시간적/물리적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된 여행기를 쓴다든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그 사람의 입으로 여행기를 풀어낸다든가....


워낙에 인터넷과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이 잘 되어있고 인터넷엔 각종 여행 정보와 사진이 넘쳐나니, 어쩌면 불가능한 이야기만은 아닐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남에 걸 보고 쓸 때 저작권은 조심해야겠지만...!). 기술이 워낙 발달해 VR로 여행을 다녀온 듯 여행지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고 하니, 이러한 상상 여행, 입체 여행의 가능성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도 머지 않은 일인것 같다.


떠나지 못해 갑갑한 이 시기, 두 권의 책을 통해 두 작가들이 들려주는 새로운 여행의 가능성에 귀기울여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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