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란>, 소설 <철도원> 속 <러브레터>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영화 <파이란> (2001)을 본 게 벌써 몇 년은 더 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영화부터 보게 됐는데, 나중 가서야 원작소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 <철도원>속 단편소설 <러브레터>를 언젠가 꼭 읽어보겠다 맘먹은 것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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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인즉, 위장결혼으로 돈 몇 푼 받고 호적에 이름 석 자 올려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이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서류상의 아내 파이란이 병으로 죽자 주인공 다카노 고로(영화 파이란에선 배우 최민식이 분한 강재)가 ‘남편’으로서 장례를 치르면서 겪게 되는 감정의 파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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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면부지’ 아내의 주검 곁에서 다카노 고로는 오열하는데, 수행원으로 따라나선 사토시(영화에선 배우 공형진 분)는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리둥절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시체를 부둥켜안고 진정 그럴 수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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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도 파이란은 상당한 미모를 지닌 여성으로 묘사되고, 영화에서도 파이란의 역할을 젊은 날의 장백지가 맡았으니 그것 또한 적잖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그 통곡의 근원은 고작 ‘하찮은’ 병으로 죽은 파이란을 향한 동정이었다가 종국에 가서는 어디가서 감히 발설하지 못했던 일종의 자기연민의 발로였으리라 결론을 내리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소위 양아치로 살아온 그의 끝 페이지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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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980년대 일본 시티팝의 대표곡 중 하나인 마츠바라 미키의 <Stay with me>를 듣고 ‘우리는 때로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못내 그리울 때가 있다’고 소회를 전한 바 있다. 영화 <파이란>에서 배우 최민식이 누워 있는 장백지를 보며 오열하는 장면이야말로 이 문장을 오롯이 담아낸 부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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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여름의 초입, 무엇이 이토록 그리운 이들에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