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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원 Jun 06. 2023

우리는 때로 겪어보지 못한 것이 못내 그리울 때가 있다

영화 <파이란>, 소설 <철도원> 속 <러브레터>

최민식, 장백지 주연의 영화 <파이란> (2001)을 본 게 벌써 몇 년은 더 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영화부터 보게 됐는데, 나중 가서야 원작소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 <철도원>속 단편소설 <러브레터>를 언젠가 꼭 읽어보겠다 맘먹은 것이 그때였다.

내용인즉, 위장결혼으로 돈 몇 푼 받고 호적에 이름 석 자 올려준,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이자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서류상의 아내 파이란이 병으로 죽자 주인공 다카노 고로(영화 파이란에선 배우 최민식이 분한 강재)가 ‘남편’으로서 장례를 치르면서 겪게 되는 감정의 파고를 담았다.

‘생면부지’ 아내의 주검 곁에서 다카노 고로는 오열하는데, 수행원으로 따라나선 사토시(영화에선 배우 공형진 분)는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리둥절하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시체를 부둥켜안고 진정 그럴 수 있는 건가?’

소설 속에서도 파이란은 상당한 미모를 지닌 여성으로 묘사되고, 영화에서도 파이란의 역할을 젊은 날의 장백지가 맡았으니 그것 또한 적잖이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그 통곡의 근원은 고작 ‘하찮은’ 병으로 죽은 파이란을 향한 동정이었다가 종국에 가서는 어디가서 감히 발설하지 못했던 일종의 자기연민의 발로였으리라 결론을 내리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소위 양아치로 살아온 그의 끝 페이지도 이와 별반 다를 게 없을 것 아닌가?’

얼마 전 1980년대 일본 시티팝의 대표곡 중 하나인 마츠바라 미키의 <Stay with me>를 듣고 ‘우리는 때로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 못내 그리울 때가 있다’고 소회를 전한 바 있다. 영화 <파이란>에서 배우 최민식이 누워 있는 장백지를 보며 오열하는 장면이야말로 이 문장을 오롯이 담아낸 부분이 아닐까 싶다.

6월 여름의 초입, 무엇이 이토록 그리운 이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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