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ena Petkova
나와 그녀의 이야기_
앞서 니콜의 도움을 받아 집을 이사하고선, 곧 함께 살 플랫 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혼자서 집을 쓰기에는 값도 비쌀 뿐만 아니라 방도 2개나 됐기 때문이었다. 베게게죽트(WG-Gesucht: https://www.wg-gesucht.de/en/)라는 유명 사이트에 집 소개를 올려두니 금세 50명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맨날 방을 구하던 입장에서 내가 사람을 뽑으려니 왠지 모르게 설레기 시작했다. 보내온 자기 소개서를 꼼꼼히 읽은 후 마음에 드는 5명을 추려 답장을 보냈다. 그리곤 다음 날, 2시간씩 시간을 나눠 그들을 집에 초대하였다. 맨 처음이 도착한 사람이 류보, 불가리아 출신의 몸집이 매우 큰 아마추어 배우 겸 DJ였다. 함께 차를 마시며 은밀하게 서로를 탐색하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다시 연락을 주겠다며 다음 사람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렇게 네 명이 더 왔다 갔지만, 류보의 선한 인상과 상냥한 말투가 계속 생각났다. 또 하나, 그의 커다란 덩치로 혹시 모를 도둑도 잘 막아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류보는 나의 플랫 메이트가 되었다.
이사 당일 날, 짐이 별로 없다던 류보는 큰 트럭에 5명의 친구까지 태워 집 앞에 등장했다. "이 자식 좀 봐라"싶던 찰나 그 친구들이 우르르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몰골이 멀쩡치 못했던 나는, 그저 어색하게 미소만 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 "와, 너 꼭 토토로에 나오는 단발머리 여자애 같아! 난 밀레나야. 우리 친하게 지내자~"라며 대뜸 어떤 여인이 날 꽉 안아 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어색했던 분위기는 눈 녹듯 녹아버렸다. 이처럼 거침없이 화끈하고도 한없이 포근한 그녀를 나는 이 후 류보보다도 더 따르게 되었다. 특히 그에 대한 사소한 불만을 서로에게 장난스레 토로하며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류보 왈 "너네 그만 좀 붙어 다녀라. 아님 나 좀 껴 주든가!"
Milena Petkova
불가리아의 흑해 근방에서 태어나 수도 소피아에서 건축을 공부한 후 우연히 교환 학생의 기회로 베를린에 오게 되었다. 졸업 후 베를린에 남아, 현재 프랑스계 건축 회사에서 건축가로 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클럽 DJ로 변신, 칼라풀한 베를린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8년 차 베테랑 베를리너다.
템펠호프 공원
긴 겨울이 끝나고 베를린에 봄이 찾아오면 수 많은 사람들이 별 이유도 없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 등 취미를 즐기고, 햇볕을 쬐며 책을 읽고, 야외에서 커피를 마시고 혹은 바비큐를 즐긴다. 그중 베를린 남쪽에 위치한 템펠호프 공원(Tempelhofer Feld)은 단연 인기 장소로 꼽힌다. 사방을 둘러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이 공원은, 한 가운데 철새도래지가 있을 정도로 넓어도 너무 넓다. 원래는 베를린의 주공항으로 쓰이며 1927년부터 2008년까지 제 역할을 다하다 5년 전 베를린 외곽에 새 공항이 지어지면서 폐쇄되었다. 현재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변신, 베를린의 허파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공원을 빼놓고선 나의 베를린이 완성되지 않는 느낌이야. 마침 내가 베를린에 살기 시작한 무렵 생기기도 해서 더 애착이 가기도 해. 지난여름에 베를린시가 한 아파트 건설 회사에 이 땅을 팔려고 했는데, 시민들의 거센 반대로 다 없던 일이 되었어. 정말 다행이지 뭐야!" 인터뷰 시작 전부터 해 줄 이야깃거리가 한 가득 이라며, 온몸에서 흥분된 기운을 감추지 못하고 들어서는 밀레나였다.
벙커 보로스
건물들의 재탄생
베를린에는 이 템펠호프 공원처럼 쓰이지 않는 혹은 버려진 공간과 건축을 재활용하는 일이 매우 흔하다. 흘러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를 보존하려는 독일인의 특성이 도시 곳곳과 건물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듯하다. 가장 좋은 예가 바로 벙커 보로스(Bunker Boros)다. 한 건물에 담긴 역사로 책을 쓸 수 있을 정도로 그 용도가 다양하게 변모해왔다. 히틀러 시대(1943년)에 지어진 이 벙커는 종전 후에는 포로수용소로, 동독 공산주의 시절에는 과일 저장소인 ‘바나나 벙커’로, 그리고 통일 후에는 베를린 테크노 붐과 함께 클럽으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크리스티안 보로스(Christian Boros)라는 아트 컬렉터가 건물을 구입하여 자신의 미술 컬렉션을 보관하고, 소개하는 용도의 미술관으로 쓰고 있다. "베를린 건물들에는 이처럼 역사가 생생히 숨을 쉬고 있어. 또 그걸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절대 부수려고 하지 않아. 반면 불가리아는 슬프게도 공산주의 시대의 유물들을 지금 모두 없애려 하고 있어. 당장의 개발과 수익에만 목적을 두거든. 바로 이런 차이 때문에 내가 건축가로서 베를린에 더 머물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몰라."
행복한 건축가, 되기
밀레나가 졸업 후 처음 일하게 된 베를린의 자그마한 건축 사무소는 무척이나 특별했다. 유목민 같은 히피 사장님 덕에 언제나 사무실의 턴테이블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아이디어를 얻고자 야외 공원에 둘러앉아 회의를 하기도 했다. 한 번은 직원 모두가 각자의 카세트테이프를 들고 와 함께 음악을 듣는 파티를 연 적도 있다. "여기서 일하면서 '아, 베를린의 건축가들은 이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나이 드는구나'라고 생각했어. 이 회사를 다니면서 앞으로 내가 건축가로서 지향해야 할 자세나 삶의 방향을 찾은 듯했어.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사무소는 1년 후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게 되었고, 지금의 회사로 옮기게 되었지."
현재 밀레나가 베를린에서 몸 담고 있는 곳은 꽤 규모가 큰 국제적인 건축 회사이다. 수 많은 건축가 지망생이 모여드는 이 도시에서 이런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다는 걸, 그녀 스스로도 무척 행운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런 밀레나에게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좋은'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충분한 물리적, 심적 교류가 그녀에게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아이가 있는 안정적인 삶을 살아. 그런데 주말에 뭐했냐고 물어보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해. 그냥 집에 있었대. 마치 살기를 멈춘 듯한 느낌마저 들어. 사실 난 내가 그렇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워. 지금도 앞으로도 결코 이런 안정적인 삶만을 원해서 건축가가 된 건 아니거든." 때문에 밀레나는 요즘 들어 건축가로서 품었던 자신의 이상이 의심스러울 만큼, 현실의 불편함을 느끼곤 한다. "창의적인 동시에 생산적일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어서 건축을 택했어. 하지만 내가 지금 일하는 곳은 너무 기술적인 면만 강조하고, 주로 아파트나 콘도 같은 사업성과 수익성에만 목을 매. 그러다 보니 건축에 대한 내 열정이 조금씩 깎이는 듯한 느낌이야. 내가 과연 계속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친구들과 함께
한편, 이런 밀레나를 위로해 준 건 다름 아닌 음악,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이었다. "새로 들어간 건축 회사 일에 잘 적응하지 못할 때(지금도 물론 고민 중이지만, 하하), 휴가까지 써가며 CTM 음악 페스티벌*의 자원봉사를 신청했어. 그때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족같이 지내고 있어. 나는 어떤 사람의 음악적 취향을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5분만 얘기해 보면 내가 이 사람과 잘 맞을지 아닐지에 대한 판단이 들어. 건축만큼이나 음악은 나에게 무척 중요한 삶의 요소니까." 지난여름, 밀레나는 친구 셋과 함께 클럽 음악의 본 고장인 미국 LA를 여행하기도 했다. 온전히 '음악'에 포커스를 맞춘 여행이었다. 또한 최근, 밀레나는 이 친구들의 응원 덕에 취미로만 여기던 DJ 믹싱을 종종 소규모의 베를린 클럽에서 틀기 시작했다. 때문에 낮에는 건축 사무실에서, 밤과 주말에는 클럽에서, 요즘 밀레나는 하루의 1분 1초가 부족할 지경이다.
*CTM Festival(행사 부제_실험적인 음악과 예술을 위한 페스티벌_http://www.ctm-festival.de)은 일렉트로닉, 디지털, 익스페리먼털 뮤직을 주제로 베를린 사운드와 클럽 문화, 그리고 예술적 액티비티를 어우르는 베를리너들의 큰 연례행사이다.
귀신의 집
부지런한 밀레나의 또 다른 취미는, 베를린의 버려진 건물들을 탐색하는 일이다. 나 또한 밀레나의 강력한 추천으로 지난여름 베를린 외곽 베엘리츠(Beelitz)를 함께 방문하기도 했었다. 이 곳에는 오랜 기간 동독의 병원으로 쓰이던 건물이 하나 있는데, 현재는 아무도 관리하지 않아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상태이다. 현존하는 '귀신의 집'을 처음 본 나로서는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전쟁에서 부상당한 이들, 그렇게 이 병원에서 죽어간 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밀레나는 아랑곳없이 이곳저곳을 오가며 카메라에 건물을 담기 바빴다. "소문을 듣기론, 여러 건축 회사들이 시에 입찰을 넣기 위해 애쓰고 있는 중 이래. 가장 유력한 건, 아티스트들을 위한 레지던시 겸 콘도로 바꾸자는 의견인데,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니? 여기서 숨만 쉬어도 멋있는 무언 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아."
행복한 건축가
밀레나에게 건축은 세상을 조금 더 좋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도구이자 수단이다. 제일 처음 몸 담았던 사무실처럼, 음악이 늘 함께하고 사람과 자연, 그리고 역사가 어우러지는 그런 건축물을 짓고 싶다. "어제 친구 생일파티에서 에너지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내일 콜롬비아에 간대. 그곳에서 태양열 에너지판을 지어주는 봉사 프로젝트에 참가한다더라고. 나도 이런 일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 어딘가 도움이 필요한 곳에 가서 학교를 짓거나 병원을 짓는 그런 건축 사무실에서 일하는 거 말야. 절대 도전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은 되지 않으려 해. 지금처럼 이 일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 그리고 그 마음이 굳어질 때 내 스스로가 거리낌 없이 박차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래. 행복한 건축가가 되고 싶고, 또 그렇게 살고 싶어."
밀레나는 인터뷰 다음 날, 전에 일하던 건축 사무소의 '히피 상사'를 만난다며 한 껏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너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 것 같아. 고마워. 아마도 조만간 나 떠난다!라고 알려올지도 몰라.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