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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리 Nov 26. 2015

3_베를리너란?

이히 빈 아인 베를리너!

1963년,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서베를린을 방문했을 때 남긴 유명한 문장 하나가 있다. "나는 베를린 사람입니다"라는 뜻의 "이 히 빈 아인 베를리너(Ich bin ein Berliner)"가 바로 그것. 케네디는 당시 동독이 세운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섬처럼 고립되어 버린 서베를린의 시민들을 격려하고자 했고, 자유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을 '베를리너'로 지칭하면서 이에 더욱 힘을 실었다. 현재까지 케네디의 저 문장은 숱한 유머와 패러디를 양산할 만큼 자주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실상 그 이유를 알고 보면 웃음이 터져 나온다.


원래 독일어로 베를리너(Berliner)는 과일잼이 필링으로 들어간 구멍 없는 도넛을 지칭한다. 케네디가 저 단어를 사용하기 전부터 베를리너는 이 곳 사람들이 즐겨 먹는 간식 이름으로 널리 쓰여왔다. 때문에 당시 독일 사람들이 저 문장을 들었을 때 도넛이 먼저 떠오른 건 당연지사. 우스꽝스럽게도 당시 케네디는 아주 힘차게 "나는 하나의 도넛이에요"라고 말한 꼴이 되어버렸다. 베를린 기념품 가게에 가면 케네디의 얼굴과 저 문장, 그리고 뽀얀 도넛이 함께 그려져 있는 엽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베를리너 입니다!


50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의 베를린은 참 많이도 변했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동베를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통일 직후의 90년대, 무정부 상태 와도 같았던 혼란의 시기를 거쳐 현재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찾고 있는 유럽의 인기 관광명소가 되었다. 반대편 베를린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무장 군인들의 삼엄한 검문 검사를 받아야 했던 브란덴부르크 문은 이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서성이는 관광객들로 붐비고, 동독 사람들이 생사를 걸고 넘어가려던 베를린 장벽은 이제 그 일부만 남아 한가로운 강변공원의 풍경이 되었다.


여전한 건  베를리너뿐. 지금도 독일의 빵집에 가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 도넛은 흔히들 상상할 수 있는, 특별할 거 없이 달콤한 도넛 맛이다. 하지만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묘한 매력을 지녀 오랜 시간 독일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다. 당시 케네디의 예언처럼 21세기의 베를린에는 자유를 찾아 몰려든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자국의 경제 혼란을 피해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서, 물가가 싸고 놀기 좋아서, 예술하기 좋아서, 대학 학비가 싸서. 이렇게 저마다의 이유로 모인 '뉴' 베를리너들인 셈이다.


우리가 앞으로 소개할 19명의 젊은 베를리너들 또한 어찌 보면 이 도넛의 맛처럼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든 속을 봐야 아는 법, 이제 그 속에 담긴 수북한 필링을 하나하나씩 맛 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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