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나리 Apr 23. 2016

19_베를리너_사진_사진작가/암벽등반가_플로리안

Florian Bongkil Grosse

나와 그의 이야기_

플로리안(이하 플로)은 나와 수민, 그리고 나탈리가 야심 차게 '책 론칭 파티'를 열었을 때 처음 만난 친구이다. 목표로 했던 인터뷰이의 숫자를 하나하나 채워갈 때쯤 그리고 수민이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올 때쯤, 우리는 뜬금없이 파티를 열기로 했다. 그동안 베를린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인터뷰했던 사람들, 그들의 지인들까지 몽땅 초대해서 나름 성대하게 계획한 행사였다. 수민 또한 베를린에서의 지난 3개월 동안 사귄 사람들을 초대하였고 그중 게임 업계를 통해 알게 된 은해라는 지인도 포함되어있었다.


처음 플로는 친구 은해 옆에 서서 멀뚱멀뚱 우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서툴게 한국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의 책에 상당한 관심이 있어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하니, 고마움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또 즉석으로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 사람, 점점 궁금해진다. 그렇게 우리는 제대로 날짜를 잡고선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한 후 헤어졌다. 근데 이쯤 되면 우리 셋, 인터뷰 중독인 건가...  

> 사진작가/암벽등반가 _ 플로리안 <

Florian Bongkil Grosse

독일의 중소도시 보훔 출신. 고향을 떠나 10년을 함부르크에서 상업 사진작가로 일하다 본인의 사진 작업에 집중하고자 베를린으로 옮겨왔다. 5년의 베를린 생활 동안 자그마한 사진전을 진행했고, 사진집 또한 출판하였다. 사진을 찍지 않을 때는 암벽 등반을 하는 데 취미가 일이 되어 산업 암벽등반가로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참고) http://www.bong-kil.net / http://bongkil.tumblr.com


봉길-플로리안

"내 이름은 봉길입니다." 쭈뼛쭈뼛 서투른 한국말로 수줍게 인사를 건네는 이 남자. 이름을 듣자마자 우리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세어 나왔다. 그런 반응에 익숙하다는 듯 봉길은 무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독어로 말을 건네자마자 부끄러운 소녀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금세 차분하면서도 진중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의 고아원에서 날 봉길이라고 불렀대. 내 양부모님의 배려 덕에 지금까지 중간 이름으로 쓰고 있는 거야. 편하게 플로라고 불러." 플로리안 봉길 그로세는 한국 대구에서 출생했다. 그의 범상치 않은 이름은 사실 누가 지었는지도 모른다. 2살 무렵 독일로 입양되어 왔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어릴 적 기억 또한 전혀 남아있지 않다.


암벽등반  

플로는 현재 베를린에서 사진작가 겸 산업 등반가(industrial climber)로 활동 중이다. 한국에서도 한창 인기몰이중이라는 암벽등반. 15년 간 꾸준히 이 운동을 해온 플로리안은 불끈 솟은 그의 등 근육을 뽐내며 암벽 이 곳 저 곳을 날아다녔다. 반면 처음 도전한 우리는 몇 번 올라가지 않았는 데도 비처럼 쏟아지는 땀을 닦느라 소란스러웠다. 정말 전신 운동으로 제격이었다. "이 운동이 나와 여러모로 잘 맞는 거 같아. 혼자 묵묵히 목표를 향해서 나아간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들어. 줄곧 취미로만 여겨왔는데 요새는 이걸로 돈을 벌기도 해. 일석이조지." 산업 등반가라는 이 생소한 직업은 로프 같은 장비를 사용해서 높은 건물의 잘 닿을 수 없는 곳들을 보수하는 일을 한다. 플로리안은 일 년 전부터 이 일을 하며 베를린에서의 생활비를 충당한다. "돈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상업적인 사진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돼서 좋아. 나머지 시간을 내 작업에 쏟을 수 있으니까."


                                  그의 프로젝트 중 하나 'Blindwalk', 2011 @ 출처 _ 플로 홈페이지

카메라와의 만남

어릴 적부터 카메라는 플로리안의 단짝이나 다름없었다. 집에 암실을 만들어 둘 정도였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과학, 미술에 유독 관심을 보였던 그이기에 사진학과로의 진로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나 다름없었다. "막상 대학에 입학하고 나니 기술적인 면만을 깊이 다루니까 점점 흥미를 잃어갔어. 그렇지만 사진을 계속 찍고 싶다는 마음에 대한 확신은 늘 갖고 있었어. 다만 어떤 사진인지를 스스로가 찾지 알지 못했던 거지." 플로리안은 결국 1학년 과정을 마친 후 미디어 시티로 유명한 함부르크로 옮겨 갔다. 사진을 보다 실전에서 배우고자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 후 그 도시에서 장장 10년 간을 머물며 광고 사진이나 패션 사진 등의 사진을 찍었다. "좋은 경험이었지만 줄곧 나에겐 맞지 않는다고 느꼈어. 그래서 내가 진정 찍고 싶은 사진을 찍고자 베를린이라는 또 다른 변화를 택한 거야."


플로리안이 처음 베를린을 방문한 건 16살 무렵 이었다. 친구들과 함께 무임승차로 기차를 타고 무작정 이 도시로 향했다. "통일됐을 때 어린 내 눈에는 티비 속의 베를린이 마치 마법의 세계처럼 보였어.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파티가 끝나자마자 이 곳을 향했어. 도착했을 때는 아침 10시였는데 당시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걷고 또 걸었었어. 잠을 자지 않았었는데도 너무 흥분해서 전혀 피곤하지 않았지. 당시 길가에서 음악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는데 정말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 한 새 세계가 펼쳐지는 느낌이었어. 그래서 나중에 꼭 이 도시에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줄곧 갖고 있었지."  


플로의 사진집 '한국' @ 출처 _ 플로 홈페이지

한국과의 인연

플로리안은 마침 보여줄 것이 있다며 책 하나를 꺼내 들었다. 7년여를 공들여 이제 막 완성한 뜨끈뜨끈한 책, 바로 사진집 '한국'이었다. 아련한 파스톤 칼라로 묘사된 한국이 우리가 그동안 익숙하게 여기던 그 풍경과 사뭇 달랐다.

                                                      사진집 중 일부 @출처 _ 플로 홈페이지


"중학교까지만 해도 주변 친구들과 내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 보통 그 나이 때는 무리를 벗어나고 싶지 않을 때니까 다른 아시안을 보면 괜히 더 거리감이 생기곤 했어. 그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남는 시간에 한국어 수업을 듣게 됐고, 그렇게 한국계 입양인 친구들을 사귀게 됐지.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자연스럽게 생겨 8년 전 처음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어." 플로는 한국에 오자마자 대구를 찾았다. 하지만 그가 물어물어 찾아간 보육원에서는 아무런 정보도 찾지 못했다. "기관에서는 파일이 없어졌다는 말만 반복하는데 괜히 복잡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 존재를 감추고 싶어 하는 건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뭐 할 수 없었지." 꽤나 덤덤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플로. 과장 없는 그의 말과 표정이 우리에게는 되려 더 묵직하게 다가왔다. "사실 이 카메라가 8년 전 나를 처음 한국에 가도록 이끌었어. 아는 사람도 전혀 없는데다가 단지 관광하러 그 멀리까지 가고 싶진 않았었거든. 그래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사진을 통해 만나는 게 나한텐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지."


그가 본 한국의 이미지들 @ 출처 _ 플로 홈페이지

'한국'을 말하다

플로리안은 이 '한국'프로젝트를 위해 7년 동안 네 번에 걸쳐 한국을 방문했고, 매 번 6-8주간을 머무르며 꾸준히 작업했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울산 등의 도시를 부지런히 방문하며 카메라와 함께 걷고 또 걸었다.  "보통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편이야. 사진 찍는 날의 컨디션, 만나는 사람과 그 날 먹는 음식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도 해. 그러다 보니 나중에 사진을 편집하다 보면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 했던 신기한 결과물이 나와." 보통 우리는 한국 하면 진한 색동의 색을 떠올리곤 한다. 하지만 플로리안이 포착한 한국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왔던 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아주 옅은, 다소 창백하기까지 한 분홍과 파랑의 색이 주를 이뤘다. 우리는 동시에 "이게 한국이야?"라며 신기한 듯 사진을 바라보았다. 예쁘고 아름다워 서가 아니라 못난 및낱이 드러나서가 아니라 그냥 너무나도 달랐다. 플로리안 덕에 20년 이상을 살면서도 전혀 보지 못 했던 한국을 발견하게 된 듯했다. "이방인이 아님에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그의 복합적인 감정이 이처럼 독특한 시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이 작업을 하면서 비로소 나만의 언어가 생긴 것 같았어. 내 모든 작업에서 공통적으로 짚어낼 수 있는 그런 이미지를 구축한 거야. 물론 독일 사진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동시에 아시안적인 혹은 한국적인 면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



새로운 프로젝트, 베를린

플로는 현재 또 다른 프로젝트를 계획 중에 있다. 이번에는 베를린이다. "알다시피 이 도시만의 성격이나 분위기를 딱 몇 가지의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어려워. 하지만 왜 내가 베를린에 끌렸는지, 그 면면들을 꼭 짚고 싶었어. 이 도시를 떠났을 때 당시의 기억과 이미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거에 후회가 남을 것 같아서 지금 시작하기로 마음먹었지." 그렇게 그는 현재 베를린을 걷고 또 걷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서 한 번 걸은 길을 표시하고, 되도록 다른 길을 택하는 식으로 진행 중이다. "한국은 엄연히 이방인으로서 바라보는 시각에서 담은 거라 한국 사람들과는 다른 시선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어. 근데 베를린은 어찌 보면 나에게 있어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이니까 되려 어려운 것 같아. 그래서 나도 이 프로젝트가 끝날 때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되어 있을지 궁금해. 자연스럽게 나 또한 조금 변하겠지? 그래서 부지런히 걷고 있는 중이야."

                                                플로의 베를린 @ 출처 _ 플로 텀블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