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참 어려운 것
대화는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소통이 잘 되는 대화는 짧게 해도 관계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주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대화는 길게 해도 관계를 더욱 멀어지게 하죠. 소통의 뜻은 이렇습니다.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한다'는 것, 서로의 말과 마음을 이해했다는 것이 되겠죠?
소통은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요. 라디오를 하면서 많은 청취자와 대화를 나누는데 소통이 되는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은 때가 있습니다.
우선 소통을 하려면 열린 마음부터 필요합니다. 이 사람과 대화를 나누겠다는 마음. 그래야 무슨 말을 해도 대화가 이어질 수 있겠죠? 제 라디오를 자주 듣는 청취자들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줍니다. 제가 어제 떡볶이를 먹었다고 하면, "저도 떡볶이 좋아해요"로 떡볶이로 이어질 수 있고 "저는 어제 된장찌개 먹었어요"하고 식사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죠. 그렇지만 대화에 상관없이 딴 이야기를 하면 대화가 이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이야기를 한참하고 있는데 한 분이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니 졸리다"라고 하면 갑자기 '졸리다'고 하는 것에 뭐라고 말을 받아칠지 몰라 "아-졸리군요"하고 말할 때도 있습니다. 뭔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았다면, "내일 일찍 일어나서 뭐 하세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어떤 말이든 듣는 상대방과 마음이 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전에 제 지인 중에 자동차를 좋아하는 분이 있었는데요. 저는 자동차를 타는 것만 좋아하지 자동차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고 그런 건 궁금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분이 자동차 장치 관련 이야기를 하셔서 "그게 뭐예요?"라고 모르는 이야기를 해서 관심을 가져보려고 했는데 너~무 길게 자동차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들으면 들을수록 잘 모르겠고요.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대화하다가 또 자동차 장치 이야기를 해서 참다가 저도 모르게 "아니, 그 얘기를 왜 자꾸 하시는 거예요"라고 했어요. (거의 30분을 이미 하셨는데, 또!) 이것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전달이잖아요. 듣고 싶지 않고 관심도 없는데 계속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건, 학생 때 좋아하지 않는 과목 수업듣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라디오를 하면서 뭔가를 많이 말하고 싶어하는 청취자들도 있어요. 아침 라디오 같은 경우는 대본이 준비되어 있어서 흐름에 맞게 대화를 할 수밖에 없지만 저녁 라디오 개인방송 같은 경우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거든요. 초반 개인방송 플랫폼에서 라디오를 할 때는 청취자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디제이와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그래서 청취자가 적은 방송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답니다.)
그런데 청취자분들이 많아지고 채팅창이 많아지면 한 분의 긴 이야기를 다 들을 수는 없잖아요. 그것에 서운해서 '나가겠다', 또는 '다음에 오겠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아직은 인지도가 많지 않아 청취자분들의 모든 메시지에 대화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거든요. 그렇다고 1대 1로 대화하는 건 아니잖아요. (통화 앱도 아닌데)
가끔은 청취자가 적은 제 라디오가 대화 상대가 되어주는 '심심이 어플'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어떤 분은 제 라디오 방송을 나가기 전에 "줄리님 저의 심심풀이 상대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듣고 뒷목을 잡았습니다) 물론 라디오는 청취자들의 일상의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가 될 수 있고, 친구같이 편안한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듣는 쪽보다 말하고 듣는 비율이 1대 1이어서 '심심풀이 상대'로 보인 것 같습니다. 조금 씁쓸은 하더라고요. 이것이 라디오인지, 낯선 상대와 채팅하는데 저 혼자 말로 하고 낯선 상대는 채팅을 치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습니다. 너무 소통이 잘 됐던 것인가요? 알고 보니 그 개인방송 플랫폼은 라디오 듣는 걸 좋아하시는 분이 거의 없었고, 실시간 채팅을 쓰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분위기여서 더욱 그랬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라디오를 하면서 제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청취자분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고 대화를 그쪽으로 맞춰서 말합니다. 가끔은 청취자분들 중에 제 라디오를 듣다가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줄리님은 진심으로 소통하시는 것 같아요"라고요. 저는 그 말이 되게 의외였습니다. 모든 분의 이야기를 받아주진 못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어떻게 진심으로 소통하는 게 느껴졌지,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의 뜻을 온전히 알진 못했어요. 왜냐면 제 라디오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없으니까요.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가 그러는 거예요.
"줄리야, 라디오 들어보니까 너 정말 사람들하고 진심으로 소통하더라"
그래서 제가 물어봤죠. "어떤 점에서 진심으로 소통한다는 게 느껴진 거야?" 그랬더니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청취자들의 채팅을 읽으면서 대충 받아주는 게 아니라 저는 그때 이랬어요, 하면서 그 말을 진심으로 받는 것처럼 느껴졌어." 청취자의 메시지만 읽은 것이 아닌, 그 메시지에 담긴 마음도 읽으며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 소통이 되었나봅니다.
소통, 물론 쉽지는 않습니다. 모든 사람과 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가끔은 저와 다른 성향의, 다른 관심사를 가진 분들과의 대화가 어긋날 때도 있습니다. 소통이 되지 않을 때는 오해가 생기고, 마음이 엇나가며 이상한 방향으로 행동을 불러오기도 합니다. 채팅창을 모두 읽으니 보란 듯이 저를 괴롭히는 말을 쓰신다거나 싫다는 표시를 어떻게든 표현하려고도 하고요. 모든 사람과 소통이 될 수 없다는 전제도 알지만, 마음이 맞지 않아 감정만 긁는 오해는 힘이 빠지는 건 맞습니다.
아침 라디오를 할 때는 낮에 잠깐의 낮잠을 자는데요. 자려고 하는 찰나에 옆집에서 벽을 쿵쿵대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망치로 뭔가를 두드리는지 쿵쿵 소리가 계속 나더라고요. 보이지 않으니 그 소리가 마치 벽에 못을 박는 것처럼 들려 그런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끝나겠지, 싶었는데 계속 망치로 두들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겁니다.
말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망치 좀 그만 두들겨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조금 있으면 안 하겠지 생각해서 잠을 청하려고 했지만 계속 망치 소리가 나서 옆집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초인종을 3-4번을 눌렀는데도 아무도 안 나오더라고요. 나중에 보니까 작업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공사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이거 꼭 지금 해야 해요?"라고 물었는데, 물이 새서 지금 그걸 알아봐야 해서 잠시만 소리가 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가보니 옆집 사람이 망치로 못을 박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집안에 문제가 있어서 원인을 찾으려고 공사를 하는 중이었더라고요. 생각과 다른 현실이었죠.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와 낮잠은 자지 못했지만 오해는 풀렸습니다.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혼자 옆집 사람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싫어했을지도 모릅니다. 오해로 우연히 옆집 사람을 마주쳤을 때 '시끄럽게 망치질하셨던 분'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잖아요. 오해가 풀려 일단 다행이었고, 또 하나 소통이 되지 않을 때의 상황도 깨달았습니다.
쿵-쿵-쿵 옆집에서 들리는 소음은 제 낮잠을 계속 방해하긴 했습니다. 모른 척 무시를 하려고 해도 소리가 계속 나니 무시가 안 되더라고요. 옆집에 있는 사람들은 어찌 됐든 본인들의 상황에서는 해야 하는 일이고, 제가 느끼기에는 그 행동과 소음이 제 일상을 방해하는데 안 보고 노래 크게 틀어놓는다고 해도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건 맞았습니다. 그렇다고 같이 소리를 내도 좋은 건 하나도 없고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죠. 잠시 밖에서 볼일을 보고 오면 소음을 안 들어도 되고, 잠잠해졌을 때 내 생활을 하면 되는 거니까요.
어떻게도 마음이 맞지 않는 상황의 소통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는 잠시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나만의 방법도 찾을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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