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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아름다움 그리고 인정

연상호 감독 원작만화 <얼굴>을 읽고

by 잠바

눈을 감고 검은 세상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주변의 목소리들이 들리고, 소리마다 상상되는 색이 떠오른다. 이미지도 떠오른다. 나의 시각에 의존하지 않아도 좋은 것, 불편한 것이 마음에 나뉜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88 올림픽이 서울로 개최지가 정해지고, 개발을 위한 명목으로 정부는 서둘러서 거리를 정비했다. 미관상이라는 이유로 노점상들을 몰아냈다.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드러눕는 애순이의 모습이 나온다. 우리는 개발과 성장 그리고 성장의 1차원적인 결과 "미관"이라는 것에 집착한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던 급속한 경제 성장과 나라 발전이던 시기였다.


연상호 감독의 <얼굴>은 이 지점에서 메시지를 구체화해나간다. 시각장애를 가진 아버지를 취재하는 장면으로 만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아들의 시선으로 작품은 전개된다. 엄마의 시신 발견 소식으로 이야기는 그 과거를 파헤치며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비밀과 반전이 주된 이야기로 꽤 흥미롭다.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동력이고 곧 전체이다. <얼굴>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생각해 볼거리는 던져준다. 그리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가 <불편함>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 불편함을 참 잘 쓴다. 연출에 있어 대비는 극의 흐름에 독자로 하여금 몰두하는 중요한 장치다. <미>와 <추>의 대비가 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고 있고, 그 대비 안에서 독자는 불편함을 느낀다.


88 올림픽의 성공을 위해, 미관을 위해, 더러운 것으로 규정한 것들을 정리하는 과정이 있었다면, <얼굴>에서도 성장하는 70년대, 80년대 고도성장기의 대한민국에서 살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멸시> 받지 않기 위해 잔인해지는 인간의 모습이 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하고, 나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는 위선도 있다.


하지만 그 인간의 모습이 사실은 가장 <추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돌아오고, 아름다움을 가장한 추함과 추해보이는 아름다움 중 어느 것이 진짜 아름다움인지 생각하게 한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에서 콰지모도는 못생긴 꼽추라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성당에 갇혀 살아간다. (작가의 다른 소설 <웃는 남자>의 그윈플렌도 떠오른다.) 낭만적 이야기로 완성된 노트르담의 꼽추가 대한민국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로 재해석된 이야기가 연상호 감독의 <얼굴> 아닐까. 성장과 아름다움 그리고 인정을 위해 사람사이에 <사랑>이 없어져 가는 대한민국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스포일러 때문에 글을 쓰며 조심스럽게 적게 되어 두리뭉실한 글이 되었다. 영화가 아닌 만화 원작을 보고 글을 남겨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연출에 대한 언급은 할 수 없다. 영화도 보러 가야 할지 고민이다. 보이는 것이 아닌 <사람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가장 아름다운 것> 임을 생각해 본다.


* 특별히 이번 글에는 원작을 공유해준 친구에게도 감사를 전하고 싶다


사랑은 맹목적이다. 그것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오직 느낄 뿐이다.
<노트르담의 꼽추, 콰지모도 대사 중>
잔인한 곳 무자비한 곳
목구멍 풀칠해
버텨내 살아내는 것도 벅차
세상은 잔인한 곳

쎄빠지게 개처럼 일해
한두 푼 벌어도
물가도 치솟고 빚만 늘어가

딸린 입도 늘어가
먹고 먹히는 거지 같은 세상

잔인한 세상
하지만 살아내야 해

뮤지컬 웃는 남자 중 <세상은 잔인한 곳>
Instagram @jamba_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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