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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샬뮈 Dec 23. 2020

독산동이 들려준 이야기

코끼리가 웃는다 <독산 여러분>

장소 이동형 공연인 <독산 여러분>은 금천가족예술축제 일환으로 10월 10일과 11일에 걸쳐 이틀 동안 진행되었다. 독산동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별빛남문시장과 독산동 일대가 무대가 되어 관객과 주민들이 만났다. <독산 여러분>은 우리가 무심하게 지나가는 동네 곳곳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성실하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관객들은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공간을 이동하면서, 블루투스 헤드폰을 통해 독산동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별도의 음성해설을 제공하고, 공연에 음성해설 오퍼레이터가 동행했다. 장소 이동형 공연의 특성상 관객들이 진행자와 거리에 따라 이야기를 전달받기 어려운 상황을 헤드폰이라는 장치를 통해 해소한 점이 관객으로서 만족스러웠다. 나의 경우는 난청이 있어 공연에서 대사나 진행 상황을 전달받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독산 여러분>에서는 온전하게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공연의 장애인 접근성을 고민하고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모습도 굉장히 좋았다. 70분에 걸쳐 동네를 이동하는 가운데, 메인 진행자를 맡은 배우(한기장)는 장소에 맞게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였다. 시장에 물건을 배달하는 택배기사부터 미용실 파마 손님까지 준비된 여러 모습으로 관객들의 보는 즐거움을 채워주면서 공연에 극적인 재미를 끌어올렸다.

<독산 여러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산동의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독산동의 익숙한 장소를 허투루 지나가지 않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고리를 만들어 이야기로 전달한다. 관객이 처음으로 만나는 이야기는 벽화에서 시작된다. 벽화에는 고저가 명확한 곡선 위에 말이 뛰놀고 있다. 이는 소와 염소가 풀이 자라는 족족 뜯어먹고, 사람들은 땔감이 필요해 나무를 캐가서 민둥산이었던 독산동의 역사를 담고 있다고 한다.

<독산 여러분>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한 축은 구로공단과 중국 동포로 이어지는 과거와 현재이다. 벽화가 있는 거리에서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2층짜리 단독주택과 신축 빌라가 모여 있는 공간을 마주한다. 오래된 나무들과 화분들이 자라고 있는 단독주택들 초입에는 ‘월세방 있음 010-xxx-xxxx’ 글귀가 눈에 띄게 보인다. 1960년대 구로구와 금천구에 걸쳐 구로공단이 조성됨에 따라 공단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했던 곳으로 현재는 중국 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시장 어귀에서 담배를 피우는 동포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중국 동포들에 대한 차가운 시선 때문에 경로당에 가지 못하고 거리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별빛남문시장에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금은방 가게인 ‘보금당’이 있는데, 대부분의 고객이 중국 동포라고 한다. 중국 동포들이 시장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주고 있다. 태극권 동아리분 들도 공연에 참여하여 관객을 만났다.
이처럼 현재의 독산동을 서서히 채워가는 중국 동포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사라져가는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 있다. 한때는 봉제 기술자들로 북적였지만,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사라져가면서 현재 독산동에는 과거의 사람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금천우리동네오케스트라의 ‘사계’ 연주를 따라간 뒤 마주한 여공들의 이야기는 고고댄스에 열광하며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해맑은 에피소드로 시작된다. 소녀였던 여공들은 세 여자아이들의 연기에 실제 주인공 목소리를 덧입혀 연출했다. 소녀들은 자라서 노동운동을 하는 청년이 되고, 지금은 독산동 작은 가게에서 묵묵히 재봉틀을 다루는 듬직한 어른이 되었다. 소녀와 청년, 그리고 어른은 배우(서현성, 박지현)들과 어울려 고고댄스를 추었다. 동네 사람들도 신기한 듯 나와 힐끗 구경을 하기도 했고, 관객들도 박수와 응원으로 화답했다.

공연의 다른 한 축은 별빛남문시장의 상인들 이야기로 채워진다. 빌라를 지나면 정면에 별빛남문시장 입구가 보인다. 맨 처음 만난 가게는 생선을 파는 ‘어사출또’였다. 별빛남문시장에서 가장 젊은 상인이라고 하신다. 사장님은 고등어를 손질해서 손님에게 파는 중에도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눈을 맞춰주셨다. 이어서 향한 곳은 ‘신선마켓’이다. 사장님 내외분께서 공연 의상을 세트로 입으시고 감자 저글링까지 선보이셨다! 감자 저글링이라니 야채가게 바이브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신선마켓을 지나면 ‘신발나라’와 ‘상미패션’이 마주 보고 있는 곳에 트롯 5인방이 등장한다. 매일 2천 원씩 모으는 계모임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다고 한다. 활기찬 트롯 5인방의 무대에 지나가시던 할머님도 흥겹게 노래 부르고 춤추시며 즐거워하셨다. 트롯 5인방을 만나고 들른 ‘한양축산물류센터’에는 ‘열심히 하자’는 좌우명이 큼지막하게 보인다.
슬그머니 등장한 배우(메삭 루이마 미첼 마얀자)가 열심히 하자는 좌우명으로 라임을 짠 힙합스타일 곡으로 짧은 공연을 했다. 좌우명의 주인공인 상인 두 분은 고기를 손질하시면서 무심함과 부끄러움 사이에서 관객을 수줍게 만났다. 정육점을 지나면 시장이 있던 곳에 물길이 있던 시절부터 자리를 지키는 ‘보생약국’이 등장한다. 약사 할아버지는 관객들과 다정한 인사를 나눠주셨고, ‘위해위반점’ 사장님은 관객들에게 사탕을 선물했다.

이름은 달라도 우리가 나고 자란 ‘동네’의 모습은 닮아있다. 커다란 놀이터 같았던 동네는 사라지고 우리는 점점 고층건물 속에 각자의 방공호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동네를 이야기하고, 이웃을 돌아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고 소소하지만 특별한 경험이 된다. 공연은 독산동에서 가장 오래된 집 옥상에서 동네를 바라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공연을 함께 즐기는 관객과 주민도 있었고, 생활의 영역이 무대가 된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주민들을 만나기도 했다. 모두가 일상의 순간이 공연으로 바뀌는 상황을 반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굴러다니는 고철덩어리와 목적지를 향해가는 주민들 모두가 출연진이 되었던 공연 <독산 여러분>은 관객과 주민 제작진 등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각기 다른 모양의 기억으로 남았다. 독산동의 어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 기억은 오늘과 내일로 이어져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사진 제공: 코끼리가 웃는다]  


독산 여러분일자 2020.10.10. ~ 2020.10.11장소 독산동 빈집프로젝트 3家연출 이진엽 작가 배해률 음악감독 지미 세르 의상 및 소품 김경인 무대감독 김동우 음악 오퍼레이터 설재환 출연 한기장, 서현성, 메삭 루이마 미첼 마얀자, 박지현 시각장애인 음성해설 윤예은 시각장애인 음성해설자문 이해은, 정대춘 시각장애인 음성해설 오퍼레이터 이재호 건축자문 심영규 영상감독 박수환 공연진행 조성훈, 공민정, 구민정, 조수빈, 김효진, 유미르 함께 하신 분들 강명자, 김용자, 권영자, 정의금, 표영숙, 장립봉, 김용철, 금천우리동네오케스트라(음악감독: 황진/ 예술강사: 이회원, 채미헌/ 단원: 김민영, 김도희, 김시윤, 이가람, 유정민, 이지아, 박소은, 심금비), 다사랑 운동본부 태극권동아리, 41동 어르신들, 별빛남문시장 상인들 도움 주신 분들 독산3동 주민센터, 독산3동 주민자치회, 독산3동 통장협의회, 강준하, 고창용, 공병권, 김경태, 김성회, 김윤영, 신오장, 안옥자, 양덕자, 오정근, 윤두선, 장미순, 조미자, 최순향, 허정아, 황해권, 이춘자, 김정화, 별빛남문시장상인회, 지그재그 봉제클럽-바늘 가는데 실간다, 중국교포분들 주최 금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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