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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 Sep 11. 2020

시선기록 #2 내가 생각하는 '좋은 캘리그라피'

리하캘리그라피



20대 초반, 내가 참 어렸던 어느 날에  홍대의 한 카페에서 황경신 작가님이 직접 쓰신 엽서를 보았다. 지금 다시 봐도 정말 좋은 책의 문장과 글씨가 담긴 엽서였는데, '한글도 저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구나', '손글씨를 통해서 문장의 내용과 감성, 감정을 다 담아낼 수 있구나'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그 엽서가 지금까지도 내게는 베스트 작품이다. 다음 해쯤, 업무차 경복궁 역을 가게 되었다. 경복궁역 지하철역에는 복도식 전시장이 있는데, 전시장에서 우연히 조용연 작가님의 한 작품을 만났다.  짧은 문장에 흩날리는 잎이 그려진 여백의 미가 살아 있는 작품이었는데, 당시 내 심정과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놓은 것 같아서 크게 위로받았다. 그래서 한참을 작품 앞에 서있었다. 서예처럼 먹물로 한지에 쓴 것 같은데 전통 서예는 아니었고, 대체 이런 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내가 본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 한참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지만, 당시에는 별 소득이 없이 그저  혼자서 글씨 연습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친구를 통해 '로트링 펜'과 '캘리그라피'를 알게 되었는데,  내가 보아왔던 글씨들을 '캘리그라피'라고 부를 수 있겠구나! 하며 발견의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답답함이 해소되었다.  나만 몰랐을 뿐, 이미 세상에는 '캘리그라피'가 수없이 저마다의 존재를 뿜어내며 존재하고 있었고,  내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나는 캘리그라피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고, 활동하는 작가분들의 글씨, 책, 수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때와는 달리 요즘은 캘리그라피가 정말 많이 흔해져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캘리그라피가 무엇인지, 사전적 의미를 다시 찾아보자.





캘리그라피의 사전적 의미


캘리그라피(Calligraphy)란 '손으로 그린 문자'라는 뜻이나, 조형상으로는 의미 전달의 수단이라는 문자의 본뜻을 떠나 유연하고 동적인 선, 글자 자체의 독특한 번짐, 살짝 스쳐가는 효과, 여백의 미 등 순수 조형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한다. 

서예(書藝)가 영어로 캘리그라피(Calligraphy)라 번역되기도 하는데, 원래 calligraphy는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Kalligraphia에서 유래된 전문적인 핸드레터링 기술을 뜻한다. 이 중에서 캘리그라피(calligraphy)의 Calli는 미(美)를 뜻하며, Graphy는 화풍, 서풍, 서법, 기록법의 의미를 갖고 있다. 

즉, 개성적인 표현과 우연성이 중시되는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아름답고 개성 있는 글자체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캘리그라피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손으로 그린 문자, 아름다운 서체이며 문자로 하는 예술. 즉 캘리그라피는 개개인의 개성이 중요하기에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기호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생기는 등 주관적인 면이 매우 강하다. 이전에는 이 주관성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이렇게나 주관적이라면 사람들의 글씨를 그 누가 판단할 수 있는 걸까? 왜 잘 쓰고 못쓰고 가 판가름 날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노래'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쉬웠다. 노래처럼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가 있듯 많은 사람의 마음을 끄는 글씨가 있고 소수의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글씨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스타일은 취향에 따라 갈리지만, 발성부터 음정, 박자 등 판단의 척도가 되는 요소들로 곡의 완성도를 판단할 수 있다.


가독성  |  내가 생각할 때 글씨에서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첫 번째로는 '가독성'이다. 판단에 있어 확실한 것은 '못 쓴 글씨'는 있다는 것이다. 읽는 사람이 알아볼 수 없는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씨이다. 가독성은 캘리그라피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이다. 가장 기본으로 지켜야 할 요소이다.

글씨를 쓰면서도 회사 생활을 해야 하니 몇 년을 캘리그라피에만 몰두해 온 것은 아니기에 최대한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한참 펜을 잡지 않을 때면 종종 글씨 쓰는 감이 떨어져 못난 글씨를 쓰거나, 글씨에 내 마음과 감정이 잘 표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펜을 놓지 말고 꾸준히 써야 한다. 

글쓰기와 글씨, 그 밖의 어떤 일일지라도 꾸준함이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표현력  | 두 번째로는 '표현력'이다. 위에서 노래 이야기를 했는데, 완성도 있는 노래라고 해서 반드시 사람의 마음을 잡아 끄는 것은 아니듯이, 글씨 또한 그런 것 같다. 완벽하고 멋있게 썼다고 해서 꼭 마음에 와 닿는 글씨가 아닐 수도 있다. 어수룩하게 쓴 어린아이들의 글씨가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캘리그라피는, 가독성을 살리면서도 글씨에 마음을 담고, 느낌과 감정을 담은 글씨이다. 그저 화려하게 보이도록 멋 부린 글씨가 아니다. 내가 쓰는 문장 속 의미를 잘 전달하면서도, 글을 읽고 느낀 작가의 감정을 함께 담아내고 싶다. 캘리그라피를 보고 읽은 사람이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다면 작가와 독자가 감정과 감성을 공유하는 셈이며 그것보다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내가 쓴 글씨를 읽고 나와 같거나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내 의도와 전하고 싶은 마음을 파악해준다면 나 역시 원하는 것을 잘 표현했다고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물론 사람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고 다른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나는 내가 쓴 글씨로 인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과 희망, 혹은 위로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쓴 글씨와 그 안에 담긴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려면 일단 정확히 읽을 수 있는 글씨를 써야 한다. 가독성이 첫 번째로 중요한 이유다. 가독성을 살리면서도 나만의 개성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나는 이런 생각을, 내 글씨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며 글씨를 쓴다. 

때론 게으르기도 하고, 꾸준하지 못할 때도 있으며, 노력하는데도 잘 써지지 않아서 괴로울 때도 많지만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내 글씨를 만들어갈 것이다. 많이 보고, 듣고, 느끼면서, 관찰하고 공부하고 배움으로써 나의 내면을 풍부하게 채워서, 나눌 수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캘리그라피'에 대해 쓰고 정리하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고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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