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가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
오늘은 꺼져있는 모니터들 (왕보스가 출근을 안했당)
내가 앉아있는 자리는 보스들 자리 바로 앞이다. 덕분에 내 자리 앞에는 커다란 모니터 2개가 벽에 떡 하니 붙어있는데 여기 회사 전체를 구석구석 보여주는 CCTV들이 화면을 16분할하여 32개의 네모난 박스로 실시간 녹화를 진행한다.
처음에 씨씨티비에 찍히는 내 모습을 보면 신기하긴 했지만 이내 곧 뭐가 그렇게 못미더워서 우리를 감시하려고 기를 쓰는구나 싶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할텐데.
나중에 보스에게 들어보니 생산라인의 사람들이 야근을 하거나 토요일에 나와서 물건을 가져다 두고 하는 '척'하고 동영상을 보거나 일은 안하고 잡담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불량률도 많았고 실제 작업량도 많지 않았단다. 그래서 씨씨티비 설치 후 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잘랐다고 (...)
다른 회사에 대한 경험이 그리 많지 않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딴 짓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처음에 회사에 들어오면 할 수 있는게 제한되어서 종종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업 회사 특징 상 매일 매일 일들이 주어지고 그 일들이 끊이지 않는 것은 물론 쌓인 일들도 한가득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일을 한다.
물론 예외도 있는 법. 내 옆에 회계팀 동료는 나와 같이 한량이다. 작은 노트북을 쓰고 화면 밝기를 제일 어둡게 해서 어느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보면 뭘 하는지 절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회계일을 안하는 것은 아니다. 4년차 회계팀 답게 주어진 일을 하긴 하는데... 여기까지
내 위치는 불행하게도 보스가 고개를 내 쪽으로 돌리면 바로 보이는 자리에 위치한다. 전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서 일을 다 하고 무료하게 보내다가 가끔씩 딴 짓을 해도 잘 몰랐겠지만 이젠 보스 방 바로 앞에 있는 책상에 커다란 모니터가 덩그라니 놓여져 있어서 딴 짓을 하면 확 티가 난다. 따라서 대놓고 딴짓을 하지는 않고 가끔 보스가 없거나 뭔가에 한참 바쁠때는 오른쪽에 엑셀을 켜두고 왼쪽엔 작은 크기로 리사이징 해서 종종 브런치 글들을 읽거나 블로그에 글을 쓰곤 했다.
물론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친구가 재밌는 링크를 보내주어 한번 읽다가 걸리고 댓글을 읽다가 걸리고 하긴 하지만 내 업무 중 한국어로 블로그 포스팅 하는 일도 있어서 그렇게 몇 번 넘어가곤 했다 (그냥 봐준 것 같기도…)
한편 이 자리 덕택에 내 모니터 뒷편에는 씨씨티비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토요일에 나오거나 보스들이 퇴근하면 좀 자유롭게 일하는 편이다. 내 마음이 삐뚤어져서 그런지 감시가 있는 경우는 일을 해도 괜히 신경이 쓰이는데 감시가 없으니 유유히 인터넷을 하다가도 일을 해야겠다 맘 먹고 일 하면 훨씬 더 많은 양의 일을 해낸다. 일반 오피스 아워 8시간반동안 할꺼 토요일에 나와서 3시간도 안돼서 더 많은 일을 하는걸 보면.
문제는 어제 터졌다. 들어온지 두 달 정도 된 회계팀 보조업무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회계팀 일이 많이 밀렸다고 몇 주 전부터 계속 야근 하라고 종용했었다. 하지만 시니어 회계사분이 어시스턴트가 할 수 있는건 딱히 많이 없다고 그냥 집으로 자꾸 보냈었다. 그래서 어제 아침에 오자마자 딱 붙잡고 '오늘 야근 해'라고 해서 할 수 없이 야근을 했었다.
5시반부터 6시 15분정도 까지 하고, 야근수당 신청을 위해 15분이 더 필요한 상황.(30분씩 끊어서 계산하는데 주말에는 30분부터 신청이 가능하지만 평일은 1시간 이상 일해야 신청이 가능하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인터넷 서핑을 했는데 제일 높은 보스가 회계팀 사람들한테서 자꾸 웃는 소리가 들리니까(보스 방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다) 씨씨티비로 줌인을 해서 다들 뭘 하나 확인을 한 후 이 친구 모니터를 확인한 뒤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로 우리 보스한테 얘기를 했고 우리 보스는 회계팀의 다른 친구한테 메세지를 보냈다.
내가 뭐라고 보냈냐고 알려달라고 하자 스샷 찍어서 보내준 동료
그 메세지를 받고 분노한 회계팀 친구들은 다들 어이가 없어했지만 일단 메세지를 전달하고 퇴근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전해들은 어시스턴트 친구는 내게 연락을 해서 어떻게 우리를 감시할 수 있냐고 일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일 다 끝나고 10분 남아서 그 잠깐 시간에 이메일 확인한 것 가지고 놀고있냐느니 떠들고 있냐느니 이야기할 수 있냐고 수많은 ㅋㅋㅋㅋ들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나도 처음 듣자마자는 좀 충격.
오늘 도착해서 어제 있었던 상황에 대해 다른 말레이시안 동료들한테 들어보니 얘네도 적잖은 충격을 받은 듯 했다. (심지어 이 친구들은 야근수당도 안나오는데 자발적으로 회사를 위해 일을 했다!) 나 역시 평범한 직원 중 한 명이라 그런지 싱가포르에선 직장 내에 씨씨티비를 달아놓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줌인하며 확대할 수 있는지 개인정보 침해가 아닌가? 하며 좀 너무하는데 라는 마음으로 싱가포르 법에 대해서 궁금해서 찾아보니
http://www.lawgazette.com.sg/2003-1/Jan03-col2.htm
이런 글이 있어서 대충 읽다가 포기. 옆에 있는 나이 지긋하신 회계사 분에게 여쭤보니 가능하다고. 화장실에 씨씨티비 설치하는 것이랑, 화장실을 얼마나 자주 가는지 체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가능하다고 하지만 자기도 그동안 일 해오면서 단 한번도 이런 경험은 가져본 적이 없다고... 그래서 내가 '어딜 가던지 여기보단 무조건 좋겠네' 하면서 다같이 웃고 넘어갔다.
사장의 마인드와 직원의 마인드는 분명 다르다. 사장들의 입장에서는
'네가 여기서 일하면서 경력을 쌓고 실력이 커지고 너의 커리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준다'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난 그 말이 틀리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말을 하기 전에 회사는 '회사가 운영되기 위해 그 필요에 따라 그에 맞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 앞에 나와야 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사람들이 일을 해주는 것이고 그에 따른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다. 앞의 이 전제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니 직원들이 귀하지 않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숫자로 보니 '너희들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다'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짤이 쓰고 싶은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내 생각이 짧아서 그럴수도.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회사에서 각 직원들에게 초콜릿 몇개와 작은 프링글스 하나씩 돌렸다. 그리고 난 정말 너무 실망했다. '왜 줘도 지랄이냐 안주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냐'라고 혹시 물어보신다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이렇게 주고 나서 분명히 '우리 회사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서 직원들을 위해 이렇게 챙겨주는 좋은 회사'라는 생각을 가질까봐. (싱가폴에서 크리스마스는 설날과 함께 1년중 가장 기념비적인 행사다)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선물 받고 좋아하는 직원은 없는 것 처럼 보였다.
이 생각은 Chinese New Year, 즉 설날에 확실해졌다. (싱가포르도 설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