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섭 60년사(史) 2

뭔지 모르겠지만 대단한 무언가의 탄생

by 이현승

이대섭은 1960년에 태어났다. 어머니인 정순은 대섭을 낳기 전에 뭔가 대단한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등장인물은 용 쯤 되었던 것 같다. 자식을 여덟이나 낳은 정순이 유독 대섭의 임신과 출산을 기억하는 이유는 가장 강렬한 태몽 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우리집에 대단한 일을 해줄 것 만 같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대섭은 유명인이나 재벌이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직장에 들어간 뒤 월급 상당수를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렸고 집안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다.


대섭은 8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여기저기를 돌며 사업을 하는 아버지 복락과 아이들을 돌보느라 바빴던 어머니 정순 사이에서 태어난 세번째 아들이었다. 대섭은 몸집이 크게 태어난 형과 누나들 사이에서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 이었다. 형과 누나들은 대섭을 아꼈다. 아버지 복락이 장터를 돌다 닭집에서 못 파는 늙은 닭 수 마리를 싼 값에 가져오는 날이면 형제들이 모두 모여 그것을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형과 누나들은 그럴 때 자기들 먹느라 바쁠 뿐 아니라 어린 대섭도 잘 챙겼다.


대섭의 아내인 경희와 딸 현승은 친가에 대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라고 기억하지만, 대섭은 그렇지 않다. "먹고 살 만큼은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인 복락이 사업을 하고 다니면서 8남매가 적당히 먹고 입을 정도로 돈을 벌어왔다. 대섭이 유년기를 보내던 시절에도 가난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다만 대섭이 학교에 들어갔던 70년대에 집안에서 옷 사업을 해보겠다고 뛰어들었다가 석유파동을 맞은 것이 가세를 위태롭게 했다. 집 한 채가 통으로 날아갔기 때문에 그것은 이씨 가문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대섭은 미술을 좋아했지만, 어쨌든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했다. 장학금을 주는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에 만든 금오공고에 원서를 넣은 것도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대준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돈을 벌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전국의 가난한 수재들이 몰려들어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했던 금오공고는 결국 합격하지 못했고 차선으로 선택한 곳이 유한공고 였다. 대섭은 이 학교의 장학생 으로 3년을 보냈다.


대섭은 공부를 죽을 만큼 열심히 했다. 좀처럼 스스로의 좋은 부분을 말로 내놓지 않는 성격이지만, 공부 만큼은 "정말 많이,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딸인 현승이 "밤을 세워서 공부를 하면 오히려 능률이 떨어진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대섭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햇다. "하룻밤? 며칠 밤 연속으로 세본 적도 있는데. 그때는 그렇게 공부해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대섭은 밤잠을 줄여 공부를 해 서울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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