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은재 Jun 04. 2023

잘 도망쳐야 한다.

이러다 다 죽어!


잘 도망쳐야 한다. 


살다보면 여러가지 유혹, 또는 저항, 배신까지- 다양한 형태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아주 어릴적에는 그런 공격에 맞서야 한다고 배웠다. 또는 굴복하더라도 가능한 맞서는게 옳은거라고 배웠다. 끝까지 이겨내지 못하는 것은 한심한 짓이고. 인내하고 이겨냈을때 진정한 성공이 찾아온다고들 했다. 그리고 그런 성공공식을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참 많다. 


그런데 좀 살아보니. 잘 도망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나를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상사로 왔을때. 내가 일하는 부서가 사라질 미래가 뻔히 보일때. 지금껏 여러가지 사고를 친 멤버가 우리 팀으로 들어오려고 할 때. 번아웃이 와서 지금 다니는 회사를 더 이상 다니기 싫을때. 


나와 결이 다른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나를 인정하지 못 할 확률이 높다. 내가 하는 업무가 조만간 사라지는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설령 나의 컨디션 조절을 스스로 못해 번아웃을 겪고 있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한다고 되지 않은 일들이 세상엔 참 많고. 그것을 이겨내고 성공을 쟁취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게 그렇게까지 내가 일을 그릇친 것은 아닐 수 있다. 이제는 그런 점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요새 유행하고 있는 '조금 실패해도 괜찮아'- 라는 식의 자기 연민식 사고와는 조금 다르다. 적극적으로 도망쳐야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에 가깝다. 그래서 언제 도망칠지. 어떻게 도망칠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생각해야 한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두고두고 힘들어진다. 그 누구도 대신 생각해주지 않고, 책임져 주지 않는다. 


회사를 한 번이라도 이직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고민의 터널을 거쳤을거다. 누구나 도망쳐야 할 때가 온다. 설령 도망쳤던 곳으로 다시 돌아오더라도 말이다. 뭐- 나는 좋은 기회가 찾아왔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찬스였고. 더 도전해 보고 싶었고- 와 같이 멋진 말을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있었고. 일에 만족했고. 동료들에게 존경받고 있었다면, 그곳을 나올리 없지 않나. 우리는 도망친거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고민과. 적절한 실천을 통해서. 


그걸 버텨내고 인내하여 더 큰 성공을 쟁취한 분들께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난 아마도 인생을 살면서 몇 번 더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명히 이상한 사람을 만날거고. 그 사람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위 사람을 상처입힌다. 


나는 이제 나의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기에도 충분히 바쁘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사람을 상대 할 여력이 없다. 그래서 언제든 도망 칠 준비를 한다.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그런 상황은 마치 교통사고 처럼 찾아오기 때문이다. 술 취한 벤츠 e클래스에게 뒤를 쿵! 하고 받친거나 다름없다. 다행히 보험은 들어놨으니 괜찮다. 차를 깨끗하게 수리하고. 다시 도로로 나서면 된다.

작가의 이전글 MZ 세대들은 인내심이 부족한게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